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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이라는 병 그리고 나의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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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53호 발행인 법공 발간일 2004-03-02 신문면수 4면 카테고리 아제 아제 바라아제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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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김선미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총무국장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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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5-11 13:53 조회 1,76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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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이라는 병 그리고 나의 단상

요즘 내가 일하는 사무실은 여러 가지 굵직한 일거리 때문에 정신없이 돌아간다. 당연히 몸은 피로를 이기지 못하고 늘 지쳐있는 상태여서 수면욕의''수치가 다른 때보다 높은 편이다.

그런데도 며칠 전에는 끝없이 이어지는 상념 속을 헤매다 어렵사리 잠이든 적이 있었다. 그럴때는 으레 그렇듯 이 밤새도록 동시상영으로 이어지는 꿈에 시달리다가 아침에도 눈을 뜨기 어려워 몸을 뒤척이며 꿈과 현실을 오락가락 하고 있었는데, 그때 마치 문틈사이로 들어온 햇 살이 소방 한구석을 비추고 그걸 신기한 눈으로 지켜보았던 어릴 적 그 아련한 모습처럼 희미한 내 의식사이로 명료하게 한 생각이 파고들었다.

‘도대체 이미 지나간 일과 어젯밤 꿈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오래된 옛일, 과거의 추억들이 어 젯밤 꿈처럼, 몽롱하게만 느껴졌다. 분명 과거의 기억들은 순차적으로 일어난 일들의 기록이지만 전체적으로는 흐릿하게 묶여져 있다. 그건 나이가 들수록 더 심해져 어느 땐 실로 꿈처럼 여겨진다. 경험사실과 생각의 구분이 없어지는 시점이 문득 있는 것이다.

결국 언젠가는 무엇이 사실인지 생각인지 꿈인지 구별 하지 못하게 될 것 같은 불안감이 성큼 생겨나면서 ‘이것이 단지 기억력의 퇴화 때문일까? ’라는 생각이 일어났다.

그것은 묘한 감정의 충돌이기도 했다. 내가 몸으로 부대끼며 살고 있는 이 세계도 얼마 후에는 기억으로만 있을 뿐이고 평소에는 의심의 여지없이 확고해 보이던 내 삶의 근거지는 늘 해체 당하고 있다는 판단에서 생겨난 공포와 박탈감과 상실 감이 있는가하면 한편으로는 마음이 문득 가벼워져서 아무런 심리적인 억압과 갈등 없이 존재  근원에 대해 눈길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자각 할 때, 즉 의식이 실존을 담담하게 마주하고 있을 때 느껴지는 싫지 않은 감정이 있었다.

나는 옆으로 누운 체 다시 눈을 감았다. 학부시절 인식론 수업시간의 모습이 떠올랐다. 산다는 것의 좌표를 정하기가 그토록 혼란스러웠던 그 시절, 경험되어지는 세계와 우리의 경험자체가 얼마나 엉성한 기초 위에 놓여있으며 우리의 일상적 사고와 믿음들 또한 얼마나 허술한지를 논의하면서 인간으로 성숙해 가는 나 자신의 진화를 다행으로 여겼던 그때의 잔잔한 감동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집착이 고통의 근원이라는 것은 불자라면 누구나 하는 말이다. 하지만 누구나 그 집착을 쉽게 놓아버릴 수가 없는 까닭에 세상일에 서로 얽고 얽히며 살아간다. 나도 하루에도 수십 번 집착으로 인한 크고 작은 근심과 분노로 마음을 어지럽히며 지낸다.

그런데 집착이라는 불치병을 잘 들여다보면 그것이 단순히 감정조절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언가에 집착하는 정신현상의 이면에는 사람이면 누구 나 가지고 있는 왜곡된 인식구조라는 근본 모순이 자리 하고 있는 것이다.

즉 진리에 부합하지 않는 인식구조가 잘못된 판단을 낳고 그 판단이 수많은 감정을 일으킨다. 우리는 눈앞에 펄 쳐지는 현실세계가 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실재적이 라고 판단하기 때문에 이 세계에 강하게 집착한다. 사실 말로는 제행 무상을 읊조리면서도 무의식적으로는 현실세 계의 확고함에 대한 믿음이 깊이 박혀있다. 여기에 불자들의 깊은 고민이 있는 것은 아닐까?

출근이라는 압박감에 다시 눈을 떴을 때 현실은 여전히 거부할 수 없는 확고함으로 다가와 있었고 나의 의식은 경험된 것의 확실성을 의심해볼 겨를도 없이 벌써 그 위세에 주눅이 들어 슬그머니 사유의 끈을 놓아버렸다.

〈김선미/인드라망생명공동체 총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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