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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불공은 참회에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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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49호 발행인 법공 발간일 2003-10-01 신문면수 7면 카테고리 생활속의 밀교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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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 필자법명 법경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법장원 연구원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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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5-05 17:38 조회 1,52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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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불공은 참회에서 시작

이전에 내가 지은 모든 악업은 무시로 탐진치에 연유하여서 몸과 입과 뜻으로 지은 것이라 일체를 내가 이제 참회합니다. 염송의궤에 들어가면 총지종 도들은 금강합장을 하여 반드시 ‘참회 서원’을 한다.

이를 한역경전에서 찾아보면 ‘아석소 조제악업 개유무시탐진치 종신어의지소 생일체아금개참회’라 하고 있다.『사십화엄경』「보현행원품」에 나오는 내용이다.

우리 종단은 일반 현교와는 다른 독특한 법요를 채택하였는데, 그 하나가 바로 참회서원이다. 참회서원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육십 화엄경』「보현보살 행품」에는, ‘일체제군생 탐에치치연 아당위제멸 무량악도고’ , 즉 ‘일체 모든 중생들이 탐욕, 성냄, 우치에 불타고 있나니, 제가 마땅히 무량한 악도의 고통을 없애주리라’하였고,『80권 화엄경』「보현행품」에서는, ‘일체제중생 탐에치치연 아당실구탈 영멸악도고’라 하였다. ‘일체 모든 중생들이 탐욕 . 성냄 . 우치에 불타고 있나니, 내 마땅히 무량한 악도의 고통을 멸하게 하여 해탈 성취를 구하게 하리라.’는 뜻이다. 소아에서 벗어나 대아의 실천행을 역설하고 있다. 여기에는 대서원이 전제되어야 한다. 대서원은 먼저 진정한 참회서원에서 비롯된다. 참회를 한다는 것은 그리 쉽지가 않다.

참회는 지은 죄를 뉘우치고 다시는 범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것을 말한다.

‘참’은 죄를 용서받기 위해 참는 것 이고 ‘회’는 과거의 죄를 뉘우치고 부 처님과 보살님 또는 스승과 윗분에게 지은 죄를 고백한 다음 사죄를 구하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참회가 이루어지면 죄의 용서를 받는다고 보고 있다.

부처님이 살아계실 때 매달 보름날을 참회의 날로 정해 대중이 모여 지난달지은 죄를 참회했다; 이날을 포살일이라고 한다. 하거가 끝난 마지막 날에는 안거기간 동안 저지른 잘못을 공개 참회하기도 했다. 이날을 자자일이라 한다.

참회는 크게 이참과 사참으로 나눈다. 이참은 지은 죄의 실상을 깨달아 다시는 재범하지 않는 참회를 말하고, 사참은 부처님께 절을 하거나 독경을 하거나 참회의 진언을 외우는 등 행위와 동작 으로써 참회하는 것이다. 참회하는 방법을 설명한 논서로 당나라 선도스님이 저술한『왕생예찬』이 있다.『왕생예찬』에 의하면 상품참회는 눈 에서 피가 흐르고 몸의 털구멍에서 피가 터져 나오는 참회라 하였고, 중품참회는 눈에서 피가 나오고 털구멍 에서 뜨거운 진물이 내리는 참회라 하였으며, 하품참회는 눈과 코에서  피가 나오는 참회라 하였다.

참회란 마냥 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얼마나 무서운 결심이 수반되어야 하는 것인지를 가르치고 있 다. 참회를 하고 나면 용서되지 않을 일이 없고 원망과 수원을 가질 것도 없다. 모든 것이 연화의 세계요 불국토의 세상이다. 지난 세월 동안 이미 몸과 입과 뜻으로 수없이 지어온 죄업에 대해 깊히 참회하는 것도 중요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앞으로는 더 이상의 죄업을 짓지 않고 오로지 선업을 짓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참회는 서원과 게송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진정한 참회가 따라야 한다. 그것은 끊임없는 자기성찰과 정진 수행으로써 가능한 일이다. 절실하지 않 면 참회는 일어나지 않는다. 절실한 마음으로 염송정진을 해보자. 월초불공은 이러한 수행을 반복해서 한 단계 자신을 올려놓고 수행에 진전을 가져오게 하는 ‘특별수행기간’인 것이다. 앞으로의 월초 불공에서는 ‘참회하는 나’를 만들어 보도록 하자. 〈법경/ 법장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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