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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범은 괜찮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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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45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20-04-01 신문면수 9면 카테고리 밀교 서브카테고리 역삼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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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김정수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시인 김정수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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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0-05-22 05:12 조회 5,41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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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범은 괜찮냐?

코로나19는 삶의 일상을 바꾸어놓았다. 사람들과의 만남이나 모임, 산책까지 꺼리게 만들었다. 집 밖보다 집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훨씬 많아졌다.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외출을 삼가고, 나갈 땐 꼭 마스크를 쓴다. 확진자와 사망자 숫자가 늘어날수록 공포와 불안이 엄습한다. 요즘은 집에 처박혀 글을 쓰거나, 책을 읽거나 SNS를 통해 세상과 소통한다.

경제적으로 힘든 분들에겐 정말 미안한 이야기지만 세상과 거리를 두는 생활이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밖에서 말을 많이 하고 온 날 후회하지 않아도 되고, 씀씀이 또한 줄었다. 특히 예전에 비해 더 자주 가족과 식사를 하고, 차 한 잔 마시며 대화하는 시간도 많아졌다.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린다고나 할까.

어제 저녁식사 후, 김보일 시인의 산문집을 읽었다. 저자에게 사인본을 받고도 바빠서 읽지 못하고 잠시 미뤄놓은 책이다. 한두 페이지의 짧은 글과 직접 그린 그림이 수록된 책이라 술술 읽혔다. 코로나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는 이때 컴퓨터 바이러스와 관련된 재미있는 내용이 있어 가족에게 읽어주었다.

“286 컴퓨터로 글을 쓴답시고 여름방학 내내 낑낑거렸는데 컴퓨터가 바이러스를 먹어 하드가 몽땅 날아갔다. 완전 난감했다. 바이러스에 한여름을 송두리째 잡아먹히고 우거지상을 하고 있자니, 어머니는 내 눈치를 살피며 아내에게 묻는다. ‘아범, 뭔 일 있냐? 왜 밥도 안 먹고 저러냐?’ 아내는 어머니에게 ‘컴퓨터가 바이러스 걸려서 한 달 쓴 글이 모두 날아가 버렸대요’ 한다. 어머니는 걱정스레 ‘바이러스라고? 그럼 아범은 괜찮냐?’ 한다. 아내는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난감한 표정이다. 내가 킥킥거리자 그제야 아내도 웃어도 되는 거구나 하고 킥킥 따라 웃는다.”

듣고 있던 딸이 물었다. “아버지, 286 컴퓨터가 뭐예요?”, “응. 컴퓨터를 제어하고 데이터를 처리하는 중앙처리장치의 이름에 따라 286, 386, 486 컴퓨터라고 했지. 586부터 펜티엄이라고 하고. 지금은 컴퓨터 전원을 켜기만 하면 되지만 286 컴퓨터는 도스(DOS)라는 프로그램과 명령어·파일명 등을 알아야 사용할 수 있었어.”, “그러면 아버지도 도스 잘 아시겠네요.”, “아냐. 전원을 켜고 컴퓨터를사용할 수 있을 정도만 배웠어.” 딸은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았다.

그 시절, 다니던 회사에 286 컴퓨터가 있었다. 컴퓨터가 비싸 회사 차원에서 서너 대 구입해 회의실에 두고 공통으로 썼다. 그 후 회사를 옮기면서 퇴직금으로 386 컴퓨터를 구입했다. 원고지에서 타자기, 다시 컴퓨터로 시를 썼다. 썼다 지우고, 다시 쓰니참 편했다. 하지만 얼마 쓰지 못했다. 친구가 박사 학위 논문을 쓰기 위해 컴퓨터가 필요하다며 빌려 달라 했다. 그 친구는 논문을 다 쓰고도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컴퓨터를 돌려주지 않았다. 결국 3년 후에야 돌려받았는데, 이미 고물이 되어 있었다.

당시 저장장치는 5.25인치 디스켓이었다. 얇은 원반을 넣은 검은색의 보조기억장치. 회전판이 쉽게 구부러져 부드럽다는 뜻의 ‘플로피 디스켓’ 이라고도 불렸다. 담을 수 있는 데이터의 용량은 1.2MB, 고해상도 사진한 장쯤 담을 수 있었다. 저장용이라기보다는 주로 하드에 있는 원고를 다른 컴퓨터에 옮기는 용도로 사용했다. 그다음에 나온 것이 3.5인치 디스켓. 지금도 그때 쓴 원고가 저장되어 있는 3,5인치 디스켓 20여 개를 보관하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요즘 나오는 컴퓨터에는 3.5인치 디스켓을 넣을 수 없다는 것이다. 버리지 못하고 간직하고 있지만 무용지물이다.

컴퓨터 백신프로그램이 나오면서 원고를 날리는 일이 거의 사라진 것처럼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가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 아내의 손을 잡고 느릿느릿 봄날 천변을 걷는, 그런 평범한 일상이 그립다.


 시인 김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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