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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을 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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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47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20-06-01 신문면수 9면 카테고리 종합 서브카테고리 역삼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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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김정수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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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0-06-03 13:33 조회 5,15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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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을 내면

주말 오후, 시인들이 보내준 시집을 읽는다. 시인들이 서로 시집을 주고받는 건 아주 오래된 관행이다. 나도 두 번째 시집에 이어 6년 만에 세 번째 시집 『홀연, 선잠』을 내고 많은 시인에게 사인본 시집을 보냈다. 맨 처음 할 일은 정확한 주소 파악, 그래야 다시 보내는 번거로움을 피할 수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보내온 시집 봉투에서 주소만 잘라 보관하는 것인데, 6년 만에 시집을 내다보니 이 주소도 믿을 게 못 된다. 시인들은 생각보다 자주 이사하는 편이다. 할 수 없이 한 문예지의 발송리스트와 한국시인협회 주소록의 도움을 받았다. 그래도 모르는 시인들은 문자와 카톡, 페이스북 메시지로 주소 좀 알려달라고 요청을 했다.

사실 보내는 것도 일이다. 일일이 사인을 해야 하고, 더러는 짧은 글이나 시구를 적기도 한다. 낙관도 찍어야 하고, 봉투에 주소를 쓴 다음 봉해야 한다. 무거운 책을 우체국까지 옮기는 것도 난관이다. 대부분 몇 번 나눠 보낸다. 이번엔 내가 사인을 하면 딸이 낙관을 찍고, 아내가 봉투를 붙였다. 우체국 발송 때는 아들이 도와줬다. 가족 덕분에 한 번에 보낼 수 있었다.

시집을 보내도 대부분 답장이 없다. 받았는지 못 받았는지 묵묵부답이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나도 그랬다. 시집을 받고 잘 받았다고 답장한 경우보다 안 한 경우가 더 많았다. 특히 이름도 모르는 시인들이 시집을 보내왔을 때 대체로 그랬던 것 같다. 물론 한 경제신문에 신간시집 서평을 연재하고 있으니 써달라고 의미로 보내오는 것까지 일일이 답장하기에는 좀 어려움이 있다. 읽다가 괜찮으면 답장 대신 불쑥 서평을 들이밀기도 한다. 

기억에 남는 답장이 있다. 한 원로시인은 시집에서 마음에 드는 시 한 편을 골라 만년필로 써서 간단한 인사와 함께 손 편지를 보내왔다. 달필이다. 글씨는 사람을 닮는다. 편지 겉봉은 철 지난 달력을 재활용했다. 그 정성에 고맙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또 다른 원로시인은 시집 전체에 대한 평과 ‘이런 시가 좋았다’며 시 제목을 적은 장문의 메일을 보내왔다. 

어이없는 경우도 있다. 첫 시집을 냈을 때의 일이다. 같은 잡지 출신인지라 시집을 보냈다. 며칠 후 “왜 나한테 시집을 보냈나요.”하며 메일이 왔다. 당황스러워 아무 답장도 못 했다. 받고 가만히 있어도 될 터인데 굳이 항의 메일을 보낼 필요까지는 없었을 텐데 말이다. 그 후 어지간해선 친분이 없는 시인에겐 시집을 보내지 않는다. 

반대로 “나한테 왜 시집을 안 보내냐, 많이 서운하다”고 따질 땐 참 곤란하다. “정신이 없어 미처 챙기지 못했다”며 사과를 하고 시집을 보내주는 수밖에 없다. 그래야만 서로 감정이 상하지 않는다. 시집을 받으면 서점에서 1권쯤 사주는 게 예의지만, 그리하기가 쉽지 않다. 문제는 책을 공짜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나, 시집 한 권 달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그들은 책이 공짜인 줄 안다. 시집을 내면 출판사로부터 10~20부쯤 받는다. 초판 10%의 인세를 시집으로 받는다. 1000부를 찍는다면 100부를 받는다고 보면 된다. 당연히 나에게 시집을 보낸 시인들에게 보내기에도 턱없이 부족하다. 하여 출판사에 필요한 수량만큼 책값의 70%에 구입한다. 그런 상황에서 시집을 달라고 하면 참 난감하다.

다는 아니지만, 시집을 내면 출판기념회와 북 콘서트를 한다. 나는 두 번째 시집을 내고 음식집을 빌려 출판기념회를 했다. 한 100명쯤 왔다. 축사와 시 몇 편 낭독하고 놀고 마신다. 남은 몇몇은 2차와 3차, 노래방까지 이어졌는데, 결국 꼬박 날밤을 새웠다. 이번에는 북 콘서트를 하기로 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다 취소했다. 아쉽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다시 시집을 읽는다. 인상 깊은 구절에 밑줄을 친다. “나의 비밀은 고독했고 참회는 완전했지만 너를 죄인이게 할 고백을 위해// 아주 짧은 말 하나를 눈물방울처럼 다듬어서 간직하고 있어”(이운진, 「고백을 위해」). 그렇게 하루가 저문다.                      시인 김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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