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에게 배워 성취한 랏나까라샨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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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47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20-06-01 신문면수 8면 카테고리 밀교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필자명 정성준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 리라이터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0-06-03 13:16 조회 4,958회본문
정성준 교수의 밀교 인물史
말법시대 초심의 정진을 잃지 말라 교훈
랏나까라샨띠(Ratnākaraśānti, 970-1045)는 샨띠빠(Shantipa)라고도 하는데 11세기 활동한 스님으로 위끄라마실라사 승원대학의 주지를 맡았고, 특히 스리랑카에 불교를 처음 전한 분으로 유명하다. 특히 ‘말세의 지자’로 알려질 만큼 특출했고 후기중관파의 학장이자 밀교의 아사리로서 많은 저술을 남겨 지금도 티벳대장경에 「반야경」과 「헤와즈라딴뜨라」, 「구히야삼마자딴뜨라」, 「마하마야딴뜨라」의 주석들을 전한다. 샨띠빠는 랑달마왕에 의해 불교가 파괴된 티벳에 불교부흥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들의 스승이었기 때문에 그가 지닌 역사적 중요성은 적지 않다.
「84성취자전」에 따르면 샨띠빠는 데와빨라왕의 통치지역인 마가다출신이었는데, 당시 실론에는 불교가 아직 전해지지 않았으나 실론의 왕인 까삐나(Kapina)는 불교에 관심을 가지고 마가다의 샨띠빠의 명성을 익히 듣고 사신을 보내어 샨띠빠를 초청하기에 이른다. 당시 샨띠빠는 노쇠한 몸으로 위끄라마실라사 승원대학에서 지도하고 있었는데 사신이 전한 왕의 간곡한 요청에 마음이 움직여 건강한 2천의 승려를 거느리고 왕과 코끼리에 경전을 얹어 나란다, 오단따부리, 라자그리하, 붓다가야 등을 경유해 도착하여, 왕과 귀족의 극진한 환영을 받고 실론에서 불법을 가르쳤다.
3년이 지난 후 샨띠빠는 위끄라마실라사 승원대학으로 복귀하는 긴 여정을 시작했는데, 샨띠빠는 중간에 라마나뽀라까라고 하는 왕이 다스리는 라메슈와라라는 지역을 경유했다.여기서 똑쩨빠(Tocepa)라는 제자를 만나 가르쳤다. 샨띠빠는 마침내 위끄라마실라사 승원대학으로 돌아왔는데 당시 샨띠빠는 나이가 100세에 달해 노쇠한 몸으로 앞을 잘 볼 수 없었고 음식도 요거트와 설탕만으로 버텼으며 의식은 언제나 선정에 들어 있었다.
12년이 지나 제자 똑쩨빠는 열심히 수행하여 법신을 얻었으며 천신과 천인들은 그를 금강살타로 숭앙하였다. 똑쩨빠는 “나는 스승 샨띠빠를 만나기 전에는 토굴을 판다고 산의 땅을 팠다. 내가 성취한 다음에는 나는 마음의 산을 팠고 이윽고 나는 깨달음을 얻었다”라고 하였다. 똑쩨빠는 내가 존경하는 분은 스승인 샨띠빠 밖에 없다며 6개월의 긴 여행 끝에 마침내 스승 샨띠빠를 만났다.
샨띠빠는 처음에 똑쩨빠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대는 누군가?” 물었고, “저는 똑쩨빠입니다.” 답하자 “나는 제자가 너무 많아 그대를 잘 모르겠다.” 하였다. 그러나 대화를 주고받은 끝에 마침내 샨띠빠는 똑쩨빠를 알아보고, “제자는 공부하여 무엇을 얻었는가?” 물었을 때, 제자는 “마하무드라 수행을 하여 법신을 성취하였습니다.” 답했다. 이때 샨띠빠는 “나는 지금까지 강의는 많이 했지만 수행할 기회는 별로 없어 아직 진실을 만나지는 못했다.”며, 똑쩨빠에게 자신을 가르쳐 줄 것을 요청하였다. 똑쩨빠는 스승에게 법신을 성취하도록 이끌어 샨띠빠는 마침내 마하무드라의 최고 경지에 이르러 마침내 다까와 다끼니가 사는 정토에 도달하였다.
샨띠빠는 지금으로 말하면 제도권의 최고대학에서 존경받는 학장이었다. 어쩌면 보잘 것 없는 시골에서 이름 모를 제자가 찾아와 성취하였다는 말을 들었을 때 화를 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샨띠빠는 진실에 도달하는 길을 촌놈 제자에게 물을 만큼 말년에는 열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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