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으로 등불을 밝히기 시작, 세계인의 축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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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47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20-06-01 신문면수 7면 카테고리 봉축 기획특집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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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0-06-03 13:12 조회 4,969회본문
정성으로 등불을 밝히기 시작, 세계인의 축제로
2020년은 국민안전과 생명 보호가 우선으로 연등회 내년 기약
해마다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봉행되었던 ‘연등회’가 코로나19 감염 확산 방지 차원으로 올해는 전면 취소되었다. 5·18광주민주화운동에 따른 계엄령으로 진행되지 못했던 1980년도 이후 40년 만이다. 신라시대부터 내려오는 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인 연등회, 올해는 비록 만나지 못하지만, 그 역사와 의미를 통해 부처님 탄신을 봉축해 본다.
인도 가난한 여인의 등불
등공양을 올리는 전통은 부처님 당시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현우경』 ‘빈녀난타품’에 부처님 당시의 등공양 모습이 나타나 있다. 부처님께서 영취산에 계실 때의 일로 밤이 깊어 다른 등들은 모두 꺼졌으나, 오직 난타라는 가난한 여인이 지극한 정성과 발원으로 밝힌 등불만이 밤이 깊어도 끝까지 밝게 빛나고 있었다. 이것을 본 부처님께서 “이 여인은 그 등불공양의 공덕으로 성불할 것이며, 수미등광여래라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정성으로 등불을 밝히는 것이 연등의 정신으로 내려오고 있다.
고려시대 국가 행사로 시작
‘신라 경문왕 6년(866) 정월 15일과 진성여왕 4년(890) 정월 15일, 황룡사로 행차하여 연등한 것을 간등(看燈)하였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처음 등장한다. 불교국가 고려에서는 연등회와 팔관회가 고려의 2대 명절로 정착, 연등도감이 주관하는 국가적인 행사로 치렀다. 고려 의종 20년(1166)부터는 연등행사를 초파일에 시행하고 고종 32년(1245)에도 초파일에 연등회를 열었다는 기록이 보이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숭유억불 정책이 시행된 조선은 국가 차원의 연등회가 중지됐으나 민간 행사로 명맥이 이어졌다. 초파일 낮에는 절에 가서 공양을 올리고, 저녁에는 집집마다 자녀 수 대로 등을 밝혔다. 거리 곳곳에도 형형색색의 등을 달았으며, 밤에는 온 장안의 남녀들이 몰려나와 장관을 이룬 것을 구경하는 관등놀이를 즐겼다.
행렬에서 세계인의 축제로
1,900년대 초만 해도 서울 시내 광화문통 관장, 조선은행 앞 광장, 장충단 등에 꽃으로 장식한 탄생불을 모시고 관불을 하였으며. 집에 등을 달고 저녁에는 사찰에 공양 올린 등에 불을 켜는 관등행사를 하였다. 현대에 와서 1955년 조계사 부근을 도는 제등행렬을 한 것을 시작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75년 부처님오신날이 국가 공휴일로 제정되면서 지금의 연등회 행사로 본격화 되었다. 1976년부터는 여의도광장에서 조계사에 이르는 연등행렬을 했고, 1996년부터 동대문운동장에서 조계사에 이르는 연등행렬을 비롯하여, 전통문화마당, 어울림마당, 회향한마당 행사가 추가되어 온 국민의 축제로 발전시켰다.
코로나바이러스와 연등회
한국불교종단협의회는 지난 5월 19일 서울 종로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결정은 지난 3월 불교계가 코로나19 상황에 직면해 ‘부처님오신날’ 행사를 한 달 뒤로 변경한 것과 같이 오늘의 위기가 하루속히 종식돼 모든 국민이 평안해지기를 발원하고자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밝혔다. 연등회는 매년 30여만 명이 참여하는 불교계 최대 축제로 당초 5월 23일 토요일 서울 동국대에서 열리는 연등법회와 이후 도심으로 이어지는 연등 행렬, 24일 일요일 서울 조계사 앞 100여개의 부스가 설치되어 체험하는 전통문화마당이 예정되어 있었다. 연등 행렬과 뒤이은 축제는 예년의 경우, 수천 명의 외국인도 함께 참여해 국제적인 행사로 손꼽힌다. 연등회는 지난 2012년 국가무형문화재 제 122호로 지정됐으며, 올해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결정을 앞두고 있다. 박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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