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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빠지기 쉬운 함정 <부부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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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49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20-08-01 신문면수 10면 카테고리 문화 서브카테고리 불교와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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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김은주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작가 김은주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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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0-08-05 13:22 조회 3,78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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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빠지기 쉬운 함정 <부부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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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는 영국의 BBC 드라마 <닥터포스터>를 리메이크한 작품입니다. <닥터 포스터>의 작가 마이크 바틀렛은 주인공 모티브를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메데이아에서 얻었다고 합니다. 


이아손은 황금양털을 얻기 위해 메데이아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사랑에 빠진 메데이아는 최선을 다해서 이아손을 도왔습니다. 조국을 배신했고, 동생들의 목숨까지 이아손의 목적과 맞바꿨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메데이아와 이아손 사이엔 틈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아손은 메데이아를 배신했습니다.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서 메데이아를 버리고 코린토스 왕의 딸을 선택한 것입니다. 이아손의 배신에 분노한 메데이아는 사랑과 헌신이 깊었던 만큼 증오와 복수심도 살벌했습니다. 이아손을 파괴시킬 수 있다면 무엇이라도 할 준비가 됐고, 결국은 자기가 낳은 자식까지도 복수의 수단으로 이용했습니다. 그 정도로 마음이 황폐해져버린 것입니다. 결국 이아손과의 사이에 낳은 아들 둘까지 죽였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의 죽음에 절망한 이아손도 비참한 죽음을 맞았습니다.

<부부의 세계>는 메데이아와 이아손 이야기처럼 애정과 파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신의 모든 걸 다 내줄 정도로 지극해 보이던 사랑도 어떤 조건이 형성됐을 때는 상대를 파멸시키지 않으면 자신이 죽을 것 같은 증오심으로 돌변했습니다. 그렇다는 말은 사랑이야말로 증오심과 가장 가까운 감정인 것입니다. 


지선우(김희애)는 자신의 가정을 행복한 가정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남편 스카프에 붙은 한 올의 여자 머리카락으로부터 미세한 균열이 시작됐습니다. 남편에게 다른 여자가 있고, 그동안 남편은 자신이 번 돈으로 내연녀에게 비싼 핸드백을 사주고, 그것도 모자라 아들의 보험까지 해약하면서 자신을 속여 왔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신뢰가 깨졌어, 바이바이, 하고 헤어지면 모든 게 명료하고 간단한데,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았습니다. 


지선우에게는 새로운 감정이 생겨났습니다. 남편에 대한 사랑과 신뢰가 깊었던 만큼 그 자리를 다른 감정이 차지했습니다. 증오인 것입니다. 증오는 파괴적인 감정입니다. 너로 인해 상실감과 아픔을 겪은 만큼 그것 이상의 고통을 경험하게 해줄 거야, 하는 마음으로, 상대의 파멸을 갈구하는 부정적인 마음입니다. 그런데 이 감정이 나쁜 점이, 상대를 고통스럽게 하고 파멸시키기만 하면 되는데 그 이전에 자신을 먼저 파멸시킨다는 것입니다. 


나의 복수심과 분노가 가정 먼저 태워버리는 것은 나의 영혼이고,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나 자신이고, 가장 먼저 파멸시키는 것 또한 자신인 것입니다. 배우자에 대한 애정과 신뢰가 깊었던 사람일수록 이런 상태에 더 깊게 빠져버리는 것이 아이러니입니다.

<부부의 세계>의 지선우 또한 이런 모습을 보였습니다. 의도적으로 남편을 자극해서 자신에게 폭력을 휘두르게 하고, 그걸 아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아들과 남편의 사이에 틈을 만들려고 애썼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과정에서 아들이 겪어야 하는 상실감이나 슬픔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부모의 끝없는 싸움에 지치고, 엄마와 아빠 둘 다에게 심한 혐오감을 갖게 됐고, 그래서 아들은 집을 나가버렸습니다. 결국 그녀는 남편에게 복수한다는 목적 하나 때문에 사랑하는 아들을 잃게 된 것입니다. 이아손에 대한 복수심으로 아들을 죽인 메데이아나 남편을 망가뜨리려는 목적으로 아들의 상처 같은 건 보려고도 들으려고도 않아서 결국 아들을 망가뜨린 지선우나 복수심에 눈이 먼 어리석은 여자들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선우는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옳았을까요? 이미 물은 엎어졌고, 관계는 깨졌는데, 달라진 상황에서 과거에 연연해할 것이 아니라. 변화된 상황에 어떻게 적응할까를 먼저 고민했어야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내가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했다면 아마도 남편과의 관계를 깔끔하게 정리했을 것입니다. 새로운 삶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습니다. 그랬다면 아들도 무사히 키울 수 있었을 것입니다. 


 <부부의 세계>는 부부관계를 다루고 있지만 우리가 인간관계에서 쉽게 빠지기 쉬운 함정을 일러주고 있습니다. 언제나 무게 중심은 타인이 아니라 나 자신이어야 하고, 이 세계의 중심은 자신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불행한 상황에서도 좀 더 쉽게 정신을 차릴 수 있다고 봅니다.

작가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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