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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종자식(아뢰야식)의 기본적 성질과 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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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50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20-09-01 신문면수 4면 카테고리 지혜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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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0-09-02 14:17 조회 3,60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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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종자식(아뢰야식)의 기본적 성질과 특성
심뽀이야기 11

활동과 인식을 주도하여 종자로 저장되는 곳

인과응보(因果應報), 업보(業報)사상의 근본


일체종자식(아뢰야식)은 유식학에서 심식의 근본이 되고, 모든 인간 활동과 심식의 인식을 주도하며, 의지처가 된다. 이 일체종자식(아뢰야식)의 기본적 성질과 특성을 알아보자.

 

모든 존재를 생산하는 근원체


첫 번째 존재적 측면에서 살펴보면 일체종자식(아뢰야식)은 모든 존재를 생산해 내는 근원체이다. 

예를 들면 여기에 있는 책상, 눈이라고 하는 감각기관, 책상을 보는 작용, 이들 셋은 모두 일체종자식(아뢰야식)에서 생겨난 것이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자기를 둘러싼 자연계(器世間), 자기의 육체(有根身), 감각·지각·사고 등의 주관적 인식작용은 모두 근원체인 일체종자식이 변화해서 생겨난 것이다. 

이와 같이 일체종자식은 그 속에 모든 존재를 가능태로, 바꾸어 말하면 종자(種字)의 상태로서 저장하고 있기 때문에 일체종자식이며, 아뢰야는 저장하는 것의 의미로 ‘장식’이라고 한다. 


 또 일체종자식은 여러 가지 경험된 것들이 저장된 장소이다. 

렌즈를 통해서 들어온 풍경의 모든 것이 인화지 위에 새겨지는 것처럼 정신적 혹은 육체적 활동의 모든 것이 그 자리에서 바로 그 영향을 일체종자식 속에 심어 놓는다. 

그래서 그 심어진 종자는 아뢰야식 속에서 일정기간 저장되어 성숙하고 그 결과 새로운 존재를 산출하는 데에 이르게 된다.  


인식대상과 인식작용을 가져


두 번째로 인식적 측면을 살펴보면 일체종자식도 식(識)이기 때문에 인식대상과 인식작용을 갖는다. 

그러나 그 인식작용은 우리들의 의식으로 알 수 없을(不可知) 정도로 조그마한 것이다. 일체종자식이 일반적으로 심층심리라고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와 같이 일체종자식은 의식의 영역에는 올라오지 않는 심층심리이지만 의식의 근원체로서 언제라도 폭류(暴流)처럼 쉴 사이 없이 계속해서 활동하고 있다. 

일체종자식 속에 저장되어 있는 일체제법을 생산 가능한 종자(種子)와 아뢰야식 자체가 변화한 우리들의 육체(有根身) 및 자연계(自然界(器世間))이다. 결국 일체종자식은 자기가 변화해서 만들어낸 사물을 동시에 자기의 인식대상으로 한다.


선(善), 악(惡)을 성립시키는 기체


세 번째로는 실천적 측면에서는 일체종자식은 존재와 인식의 근원체임과 동시에 선(善) 또는 악(惡)을 성립시키는 기체(基體)이기도 하다. 

불교에서 말하는 악은 탐(貪), 진(瞋), 치(癡)의 삼독번뇌(三毒煩惱)를 가리킨다. 이러한 악의 심리상태는 모두 일체종자식 속의 번뇌종자에서 생겨나고, 생긴 뒤에는 동시에 새로운 악의 종자를 아뢰야식 속에 심어 놓는다. 

그러나 동시에 이것은 우리들이 악에서 선으로 옮겨갈 수 있는 다리이기도 하다. 우리들은 일체종자식이란 존재를 통해서 그것을 매체로 악을 버리고 선으로 나아갈 수가 있다. 

일체종자식속에는 악의 종자는 물론 선의 종자도 존재한다. 선의 종자란 선을 산출해 내는 잠재적인 힘을 말한다. 

이 선의 종자가 무언가의 기연(機緣)에 의해 싹을 틔우고, 다음에 열매를 맺고, 최후에 새로운 종자를 남기는 것이다. 

이와 같은 선의 종자에 의한 일련의 활동이 몇 백 번 몇 천 번 반복되어 결국에는 일체종자식 전체가 선의 종자만으로 꽉 찼을 때 자기존재(정신과 육체)는 완전히 근원부터 선으로 차게 된다. 

자기존재 뿐만 아니라 일체종자식이 생산해 내는 전 존재가 선의 상태를 완성하게 된다. 

이와 같이 일체종자식이란 우리들이 악에서 선으로 향상하기 위한 매체(媒體) 내지는 동력인(動力因)이라고 하는 면에서 보면 그것은 윤리적 실천적인 의미에 있어서 근원체라고 생각되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저장된 종자가 다시 생각과 행동을 일으키는 것을 ‘현행(現行)’이라 하는데, 현행은 종자를 낳고, 종자는 현행을 낳는다. 우리가 일상생활을 통해서 행한 나쁜 생각과 행동은 나쁜 종자를 낳고, 선한 생각과 행동은 선한 종자를 낳는다. 이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렇다. 종자가 현행으로 나타날 때도 악한 종자는 반드시 악한 행동과 생각을 낳고, 선한 종자는 선한 행동과 생각을 낳는다. 


여기에서 인과응보(因果應報), 업보(業報)사상이 나온다. 자기가 한 행동과 생각이 빠짐없이 일체종자식 속에 기록으로 남아 있다가 그와 유사한 환경에 처하면 의식으로 살아나서 그것을 바탕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계속되고 있으며, 저장된 종자는 지워지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전생에서 이생으로, 이생에서 내세로 계속 이어지면서 세세생생(世世生生) 윤회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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