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총지종

총지소식

불교총지종은 ‘불교의 생활화, 생활의 불교화’를 표방하고 자리이타의 대승불교 정신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생활불교 종단입니다.

근심, 걱정, 염려

페이지 정보

호수 251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20-10-01 신문면수 5면 카테고리 지혜 서브카테고리 이달의 법문

페이지 정보

필자명 - 필자법명 서령 필자소속 - 필자호칭 정사 필자정보 실보사 서령 정사 리라이터 -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0-10-12 10:17 조회 3,341회

본문

근심, 걱정, 염려
근심과 걱정은 나의 집착이 빚어낸 고(苦) 중 하나, ‘염려’는 매순간 변화, 시간 속에 그 의미도 달라져

‘근심’은 해결되지 않은 일 때문에 속을 태우거나 우울해함을 뜻하며, 

‘걱정’이란 안심이 되지 않아 속을 태움을 의미하고, 

‘염려’란 앞일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마음을 써서 걱정함을 뜻한다. 


사람은 누구나 크든 작든 저마다의 근심과 걱정거리를 안고 살아간다. 나조차도 작게는 점점 불어나는 나잇살에 대한 걱정부터 크게는 교도 교화, 교세 발전, 종단의 미래에 대한 염려까지 사소하든 중하든 나름의 근심과 걱정거리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자, 그럼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에게 근심, 걱정, 염려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볼 수 있도록 두 가지의 질문을 먼저 던져보려 한다.


1년 전 걱정거리는 무엇이었는가? 


질문을 읽고 바로 답한 사람이 있다면 당분간 치매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우선 나부터 첫 번째 문제에 대한 답을 하자면 “글쎄... 뭐였더라?”가 나의 대답이다. 

 매일, 매 순간 근심과 걱정거리를 안고 살아가지만 내가 고민하고 있던 문제가 해결되거나 혹은 이런 일이 생길 것 같았던 막연한 나의 염려가 그러한 일이 생기지 않음으로써 자연스레 잊혀진다. 

근심, 걱정, 염려란 그런 것이다. 매 순간 상황에 따라 변화하며, 언제 그랬냐는 듯 쉽게 잊혀질 수 있는 것이다. 독자들도 이런 경험이 있지 않은가? 내가 정말 걱정하던 문제 상황과 마주하게 됐을 때 나의 생각과 달리 너무나도 평온하게, 또 마치 내가 걱정한 걸 비웃기라도 하듯 아무 일 없이 지나갔을 때가 있지 않았던가.

 우리는 하나의 근심거리가 생겼을 때 최악의 시나리오를 먼저 그려보게 된다. 머릿속으로 미리 시뮬레이션을 해보며 이런 상황에서는 내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생각해보곤 한다. 하지만 이런 우리의 철저한 준비 아닌 준비는 실제 상황에서 써먹지도 못하고 무용지물이 되어버리기 일쑤다. 


내가 걱정한다고 달라질 게 있는가?


집착으로부터 고(苦)가 생겨난다는 것을 대부분의 불자들은 알 것이다. 즉, 내가 하나의 문제에 대해 근심하고 걱정할수록 나는 그 문제에 대해 집착하게 되고, 그 집착으로 인해 나의 괴로움은 더욱 커져만 갈 것이다.

물론 모든 상황에서 예외란 존재한다. 

예를 들어, 내가 나의 노후가 걱정되어 미리 저축하고 계획을 세워둔다면 나의 노후생활은 달라질 수 있다. 즉 내가 어떤 상황에 대해 걱정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한다면 이러한 경우에는 걱정이 좋은 결과를 낳는 밑거름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대개는 이러한 노력들은 하지 않고 근심과 걱정만 할 뿐이다. 앞서 말했듯, 근심과 걱정은 나의 집착이 빚어낸 고(苦) 중 하나이다. 우리 모두 집착을 내려놓자. 다른 누굴 위해서가 아닌 나를 위해 집착을 내려놓자. 근심과 걱정을 계속 짊어지고 가기엔 내가 너무 괴롭지 않은가.


가까운 내 마음에 극락을 찾자


우선 1년 전 나의 근심과 걱정거리는 무엇이었는지 물었다. 앞에서 말했듯이 근심, 걱정, 염려는 매 순간 변화한다. 즉, 그 당시 나의 고민이 현재에 와서는 내가 저런 걸로 고민했다고? 할 만큼 별거 아니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 당시에는 더없이 큰 나의 걱정거리였겠지만 시간이 흐른 후 다시 그 문제와 마주했을 때는 사소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문제로 괴로워할 필요가 있겠는가? 또 어떻게든 상황은 흘러가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한 명의 취업준비생이 있다. 이 사람이 취업하기 전까지 최대 고민과 걱정거리는 취업이었을 것이다. 그럼 이 사람이 취업을 하여 일을 하고 있는 직장인이 되었다고 가정하자. 직장인에게 취업이 고민거리인 게 말이 되는가.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근심과 걱정거리는 매 순간 변화하며 시간 속에 그 의미도 달라지게 된다.

 

두 번째로는 내가 걱정함으로써 상황이 달라지느냐는 질문을 했다. 내가 걱정만 한다고 상황이 달라지면 나는 수천 번도 더 근심 걱정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걱정한다고 해서 일어나지 않을 일이 일어날 리 없고, 일어날 일이 안 일어날 리 없다. 그냥 상황에 맡길 뿐이다. 앞서 예외상황이 있다고 얘기하였다. 하지만 그 예외상황에 또 다른 변수는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 노후가 걱정되어 단단히 준비하였어도 내가 내일까지 살아있을 거란 보장은 또 어디 있는가? 사람 일이란 한치 앞도 모르는 것 아닌가.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크고 작은 걱정거리가 있다. 하지만 내가 걱정한다고 하여 달라질 것은 무엇인가? 그냥 모든 집착을 내려놓고 현재를 즐겨라. 그것이 답이다.


스스로 깨달아야 할 바는 무엇인가?


물건을 먼 곳에 두고 찾으려면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부처가 먼 곳에 있다고, 또는 따로 있다고 생각하면 성불하기 어렵게 여겨지지마는, 자성불이 곧 자기 마음 가운데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성불의 가능성을 가지게 된다. 진리가 먼데 있다고 생각한즉, 깨치기가 어렵지마는 만약 생활 중에 있다고 안다면, 곧 능히 체득하여 깨칠 것이다. 극락이 서방 십만 억 국토의 밖에 있다고 여겨진다면, 죽은 후에나 왕생할 곳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모름지기 자기 마음 가운데 극락이 있음을 알지니라. 현세가 극락인즉 이것이 곧 가없는 고해에서 머리를 돌려 저 언덕을 바라보라고 한 비유인 것이다. 

<종조법설집 제3장 잠언편 27.>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