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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세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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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52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20-11-01 신문면수 5면 카테고리 법문 서브카테고리 이달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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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 필자법명 남혜 필자소속 - 필자호칭 정사 필자정보 -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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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0-11-05 13:16 조회 3,27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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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세 가지
자기 자신,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우리들의 궁극적인 삶의 목표는 행복하기 위한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정치, 철학, 종교도 결국 행복하기 위한 최선의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이다.

불교 또한 마찬가지다. 이 우주 모든 생명들이 다 함께 행복해지는 것, 다 함께 행복의 수레를 타고 저 피안의 세계로 가는 것이 대승불교의 행복이다. 부처님께서 왕자의 지위를 스스로 내려놓고 출가하신 이유도 생로병사 우비고뇌의 괴로움을 해결하여 모든 중생들이 괴로움을 여의고 해탈열반의 궁극적인 행복을 누리게 하려는 것이다.

행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톨스토이의 소설 『세 가지 질문』의 내용이다. 


“기억하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이란다.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너와 함께 있는 사람이고,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네 곁에 있는 사람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거야. 니콜라이야, 바로 이 세 가지가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이란다. 그게 우리가 이 세상에 있는 이유야.” 


이 세상엔 많은 소중한 것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세 가지 소중한 것이 있다. 그 세 가지는 ‘자기 자신’,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자기 자신’이다. 이 세상이 존재하는 이유는 내가 있기 때문이다. ‘나’라는 존재가 없다면 이 세상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나’라는 존재가 이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이 세상이 존재하는 것이다. 나는 우주의 근본이며 출발점이다. 내가 태어남으로 이 세상이 존재하고 또한 내가 죽는 날에 이 우주는 사라지게 된다.


부처님 당시 인도 코살라국의 파세나디 왕과 아내 말라카 왕비는 독실한 불교신자였다. ​어느 날 밤, 파세나디 왕은 말라카 왕비와 함께 왕궁에서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파세나디 왕은 아름다운 아내와 함께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파세나디 왕은 말라카 왕비를 그윽하게 바라보며 물었다.

“말라카여! 그대에게 그대 자신보다 더 소중한 사람이 있는가? 있다면 누구인가?”

이 질문을 던졌을 때 파세나디 왕은 말라카 왕비가 ‘왕이시여,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은 바로 저의 주인이신 당신입니다.’라고 말해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그녀의 대답은 그의 예상과 전혀 달랐다. 

​“대왕이시여! 제게 제 자신보다 소중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었다. 파세나디 왕은 처음에는 깜짝 놀랐고 그 다음에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자존심이 유난히 강했던 파세나디 왕은 말라카 왕비를 향해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오, 말라카여! 나 역시 나 자신보다 더 소중한 사람은 없다.”

​대답은 했지만 곱씹을수록 가슴 속의 답답함은 오히려 커졌다. 다음 날 파세나디 왕은 기원정사에 계신 부처님을 찾아가 지난 밤 왕비와 나누었던 이야기를 들려드렸다. 파세나디 왕의 이야기가 끝나자 부처님께서는 그를 바라보며 두 사람이 나눈 대화가 ‘옳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이어서 게송을 들려주셨다.


​“동서남북 사방에 마음을 다 기울여 돌아다닌다 해도 자기 자신보다 소중한 사람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그와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들은 자신을 가장 소중하다고 여긴다. 그러므로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해치면 안 된다.”


​스스로를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만이 남을 사랑할 수 있다는 부처님의 말씀을 들은 파세나디 왕은 그제야 말라카 왕비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왕비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님을 확인한 파세나디 왕은 즐거운 마음으로 궁으로 돌아갔다. 


자기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듯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들 또한 소중한 존재들이다. ‘나’라는 존재는 누군가 나의 이름을 불러줄 때 의미가 있다. 김춘수의 시 『꽃』의 내용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우리가 언뜻 생각하기로 우주엔 별과 행성들이 가득할 것 같지만 사실 우주의 대부분은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이다. 우리가 우주 어딘가로 내팽개쳐졌을 때, 어떤 별 근처에 떨어질 확률은 0에 가깝다. 확률이라고 부를 수 없는 0이나 마찬가지인 그 숫자는 우리가 지구라는 행성에 태어난 사건의 확률이다.


이 드넓은 우주에서 우리는 무슨 인연으로 부모님을 만나게 되고, 내 남편, 내 아내를 만나게 되었을까? 나는 지금 생각해도 너무 신기하고 경이롭다. 과연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모든 중생 중에서 부자의 연으로, 부부의 연으로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될까? 밤하늘의 별은 보기에 가까워 보이나 별과 별의 거리는 수만 수천 광년의 거리다. 지금 내 옆에 있는 너와 나의 존재는 수만 수천 광년의 거리와 삼천대천세계의 드넓은 공간, 그리고 영겁의 시간을 뛰어넘어 0이나 마찬가지인 확률로 만난 소중한 인연이다. 


부처님께서는 본인을 “여래”라고 지칭하셨다. 여래의 산스크리트어로 “타타가타”이다. 타타가타의 의미는 “있는 그대로의 진리를 보시는 분”이라는 뜻이다. “여실지견” 있는 그대로를 알고, 있는 그대로를 본다는 것은 지금 이 순간만 가능한 일이다. 나를 변화시킬 수 있는 시간은 과거나 미래가 아닌 지금 이 순간이며, 행복은 과거나 미래가 아닌 지금 이 순간에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이 세상을 바르게 보고,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행동하고, 바르게 말하는 것이 불교의 수행이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내 옆에 있는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불교의 자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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