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염상정(處染常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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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53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20-12-01 신문면수 3면 카테고리 종합 서브카테고리 칼럼 지혜의 눈페이지 정보
필자명 김태원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칼럼리스트 필자정보 - 리라이터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0-12-03 13:24 조회 3,079회본문
가톨릭에서 성인(聖人, Saint))은 고대 그리스 로마의 다신교 신앙과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절대적인 유일신은 평범한 인간과의 간극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신과 다양한 인간과의 매개물로서 성인 신앙이 허용되었다고 합니다.
이슬람교에도 성인 숭배가 있습니다. 이슬람 신비주의로 수피즘(sūfism)이 있는데 신과의 합일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성인 숭배가 성립합니다. 사실 성인 숭배는 신비주의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모든 종교는 독자적인 교리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교리체계는 오랜 시간을 들여서 습득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어서 생업에 바쁜 일반 사람은 접근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더욱이 종교가 정치 권력과 손을 잡거나 권력 자체가 되면 성직자 계급과 평신도 계급이 뚜렷하게 나뉘고 지배 복종의 관계로 변질하게 됩니다. 이러한 구체적인 사례를 우리는 과거의 역사에서 쉽게 찾을 수가 있습니다.
신비주의는 성직자 중심의 구조를 무너뜨리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비주의는 신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서 합일을 추구하기 때문에 결정적으로 성직자 계급을 부정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기성종교에 대한 가장 심각한 도전이기에 기성종교는 신비주의에 대해 끊임없이 이단의 낙인을 찍어서 탄압해왔습니다.
1945년 이집트 나그함마디(Nag Hamma di)에서 콥트어로 쓰인 신약 성경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문서는 초기 기독교 영지주의 복음서들이었는데 기원후 4세기경에 묻힌 것으로 봅니다. 신약 성경은 먼저 그리스어로 쓰였고 그것이 당시 이집트 지역의 언어인 콥트어로 번역되었는데 위의 문서가 그것입니다.
이집트는 초기 기독교의 중심지 중 한 곳이었고 이슬람화 된 이후에도 소수로 전락했지만 여전히 기독교를 신앙하는 사람들이 존재해왔습니다.
이집트의 기독교를 콥트교라고도 합니다. 기원후 367년 기독교 교리 투쟁에서 최종적으로 아타나시우스파가 승리하자 정경(正經, canon)으로 채택되지 못한 문서들에 대한 탄압이 시작되었고 그 과정에서 묻힌 것들 중 일부가 바로 나그함마디 문서인 것이죠.
초기 기독교의 한 흐름이 바로 영지주의(靈知主義, gnosis)였고 이는 기독교 신비주의에 해당합니다. 영지주의는 외재적인 절대자로서의 인격신(人格神, 인간처럼 감정을 가진 존재로서의 신)을 인정하지 않고 모든 존재의 근원으로서의 순수의식이자 존재의 원천으로서 일자(一者)인 신성(神性)을 가리킵니다.
이는 인도의 우파니샤드의 요가 사상으로부터 발전되어 나온 서양적 변형태로서 설명되고 있습니다. 동양적 변형태는 다름 아닌 불교라고 합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 원정으로 하나의 세계로 묶이게 된 서인도와 페르시아,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그리스 지역의 문화가 융합되는 과정에서 기독교와 결합한 것이 영지주의입니다.
신비주의는 신분이나 성별과 빈부에 상관없이 누구나 신과의 합일이 가능하다고 주장하기에 그 파급력이 매우 큽니다. 특히 사회적 대변동기에는 어김없이 종교적 신비주의가 등장하여 사회변혁을 주도합니다. 중국사에서 후한말에 등장한 도교 계통 황건적의 봉기와 원나라 말기에 일어난 미륵신앙에 바탕을 둔 홍건적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폐쇄적 종교적 공동체주의로 전개되기도 하지요. 특히 후자의 경우 종교 지도자의 카리스마에 의해 형성되는 경우가 많은데 부정적으로 흐를 경우 신도들이 집단 자살한 미국의 인민사원이나 우리나라에서 1987년 일어난 오대양 사건과 같은 비극적 사건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혜민 스님의 사건은 일종의 성인 숭배 신앙과 맞닿아 있습니다. 욕망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 대중은 한편으로 무소유의 청빈(淸貧)을 동경하기도 합니다. 불교 승려의 경우 타 종교와 달리 특정 지역의 특정 종교시설에 국한되지 않고 전국적인 인물로 떠오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소유를 극대화하려는 시대의 풍조 속에 금욕수행의 상징인 승려는 원하던, 원치 않던 대중의 호기심의 대상이기 쉽습니다. 욕망을 좇는 현대인에게 잠시 휴식을 위한 자기만족의 소비재로서 승려들이 이용되는 측면이 강한 것이죠. 그러나 그러한 한계를 극복하는 길은 말 그대로 수행자로서의 위의(威儀)를 지켜나가는 것입니다.
혜민 스님이 대중들의 요구에 응하기 위해 편의상 거처하는 장소가 무소유가 아닌 풀소유라는 비난을 받지만 다른 문제가 거론되지는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승가로 되돌아가 수행에 전념하겠다는 스님의 말에 희망을 둡니다. 법정스님이나 법륜스님처럼 처염상정(處染常淨)의 또 다른 상징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칼럼리스트 김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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