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의 마음과 밀교수행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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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51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20-10-01 신문면수 8면 카테고리 밀교 서브카테고리 밀교연재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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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0-10-12 10:30 조회 3,016회본문
중생의 마음과 밀교수행 (20)
해등심(海等心)
중생의 마음을 바다에 비유하고 있다. 그 마음을 해등심(海等心)이라고 한다. 어떤 마음인가?『대일경소』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무엇을 바다와 같은 마음이라 하는가? 항상 자신을 받아들여 머무는 것을 말한다.’
자신을 받아들여 머문다는 것이 좋은 의미로 쓰인 것일까 아니면 나쁜 의미일까.
후자의 의미에 속한다. 그 의미를『대일경소』에서 이렇게 설하고 있다.
‘비유하면 큰 바다는 백 개의 하천이 여기로 모여들어 이를 삼켜서 거두는 것이 무한하다. 이 마음도 역시 그러하다. 모든 것을 모두 자기에게로 돌아오게 한다. 언제나 스스로 이와 같은 온갖 좋은 것만을 믿고서 스스로 여기에 묻혀 머문다.’
이 해등심은 모든 것을 다 모으는 바다와 같이 모든 것을 자기만 가지고 오직 자기만을 생각하는 이기심과 아만심이 가득 차 있는 마음이다.
지난 호에서 언급했던 수미산과 같은 마음이다. 즉 아만과 아상이 가득한 마음이다. 수미산은 아상과 아만심이 높은 것을 나타내고, 해등심은 아만과 이기심이 넓게 펼쳐져 있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이를『소』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앞의 (수미산과 같은) 마음에서는 힘써 높혔는데, 이 마음[해등심]은 힘써 넓히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바다와 같은 마음이라고 한다.’
아상이 높은 것이 수미산과 같고, 이기심으로 가득 차서 그 넓이가 바다와 같다는 것을 비유하고 있다. 무릇 수행자는 아상, 아만, 이기심을 버려야 한다. 수미산과 같은 마음과 바다와 같은 마음을 없애야 한다.『소』에서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수행자가 [이러한 마음을] 깨치고 나면 삼현(三賢)과 십성(十聖) 등의 한량없이 많은 큰 바다와 같은 공덕이 전전하여 깊고 넓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이기심이 가득차 바다와 같은 마음을 버리고 나면 오히려 그 공덕이 바다와 같이 깊고 넓어진다는 것이다. 불선(不善)을 버리는 것이 곧 선(善)을 얻는 것이며, 악업(惡業)을 짓지 않는 것이 바로 선업(善業)을 짓는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마음의 작용을 찾아 구하는 데에 일찍이 아직 그 티끌이나 물방울 조차도 얻지 못하였다고 생각하며 크게 오만한 마음을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행하였다고 하더라도 행하였다고 스스로 자만하지 말고, 이루어내었다고 해서 이루었다고 교만해서도 안 된다. 아상을 더 높히고 아만심을 더 넓혀서도 안 된다. 오히려 아직도 제대로 하나 행하지 못하였고,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였다고 생각해야 한다. 이를 통해 오만하고 거만한 마음을 거두어야 한다.
혈등심(穴等心)
혈등심(穴等心)은 구멍과 같은 마음이다. 어떤 마음인가?『대일경소』에서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구멍과 같은 마음[구혈심]이란 무엇인가? 먼저 결정한 것을 나중에 다시 바꾸는 성품을 말한다.’ 그 성품이란 변덕스러운 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어째서 그 성품을 구멍과 같은 마음이라고 비유하는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비유하면 완전하고 견고한 그릇의 바닥이 어떤 일로 인해 구멍이 나면 [물건을 담기에] 알맞지 않은 것처럼 이 마음도 역시 그러하다. 처음에는 많은 것을 받아 지니지만 나중에는 점점 [구멍과 같은 것에서] 새어나간다. 혹은 처음에 발심하고 계를 받을 때에는 구족하여 빠뜨린 것이 없었으나 오래지 않아 점차로 새는 법이 생긴다. 이미 깨진 그릇과 같으므로 법수(法數)는 머물지 않는다. 무릇 이와 같은 예는 모두 구멍과 같은 마음이라 부른다.’
그때그때 달라지고 수시로 바뀌는 것은 바른 마음이 아니다. 변심(變心)은 굳건하지 못한 마음이다. 그러나 항심(恒心)은 견고한 선정심(禪定心)이며 정심(正心)이다. 바른 신심이며 바른 정진이다.
따라서 수행자는 마음에 변함이 없어야 한다. 친소(親疏)에 따라 수시로 바뀌어서도 안 되며, 이익에 따라 차별하는 마음이 있어서도 안 된다. 치우침이 없는 마음이 한결같아야 한다. 일에 있어서도, 사람에 대해서도 일관된 마음이며, 믿음과 수행에 있어서도 변함없는 마음이어야 한다. 이를『소』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행하는 일에 있어서 모두 시종일관(始終一貫)하여야 한다. 또한 성품이 많이 바뀌면 견고한 보리심을 장애한다고 아는 것이 그 마음[혈등심]을 다스리는 법이다.’
자주 바뀌는 마음은 온전한 마음이 아니다. 수행에 진전이 없으며 공덕에 선과(善果)가 있을 수 없다. 변덕스러운 중생의 마음을『열반경』에서는 이렇게 설하고 있다.
‘마음은 경망하고 조급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분주하게 달리는 것이 악한 코끼리와 같고, 생각이 빠르기가 번갯불과 같으며, 머물지 않고 요란하게 날뛰는 것이 원숭이와 같으니, 이런고로 모든 악의 근본이 된다.’고 하였다. 마음을 잘 다스리는 것이 수행이며, 혈등심을 멀리 하는 것이 불공이다.
그것이 바른 믿음이며, 올곧은 신심(信心)이오, 깨끗한 정심(淨心)이다.
특히 믿음에 대한 마음이 변함없어야 한다.
그 마음을『화엄경』에서는 이렇게 설하고 있다.
‘깨끗한 믿음은 티끌을 여의고 굳센 마음을 일으키며 교만을 없앤다. 뭇 보배를 정장하는 제일의 법이다.’ 견고한 믿음은 자신의 교만심을 덜어내고 공덕을 잇는 수행법이다.
『대비바사론』에서는 지혜 보다 믿음을 더 큰 가치로 삼고 있다.
‘비록 지혜가 있더라도 청정한 신앙이 없고, 믿음이 없는 지혜는 비뚤어지고 아첨만을 더할 뿐이니, 그 비뚤어지고 아첨하는 일을 그치게 하는 연유로 믿음이 으뜸이 된다.’고 하였다.
아만심과 같은 해등심을 없애고, 변덕 심한 마음의 혈등심을 제어하는 길은 바른 신심을 갖는 데서 가능하다.
바른 신심에서 해등심이 사라지고 혈등심을 잠재울 수 있으며, 자비심과 이타심이 자란다. 이를 통해 악심(惡心)에서 선심(善心)으로, 간탐심(慳貪心)을 선혜심(宣惠心)으로, 중생심에서 여래심으로 바꿀 수 있다.
이러한 마음을 닦아야 수행자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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