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교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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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54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21-01-01 신문면수 8면 카테고리 밀교 서브카테고리 밀교연재페이지 정보
필자명 김재동 필자법명 - 필자소속 법장원 필자호칭 연구원 필자정보 법장원 김재동 연구원 리라이터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1-01-12 15:18 조회 3,585회본문
밀교란 무엇인가?
‘밀교연재’의 원고 제의를 받고 고민이 많았다. 오랫동안 철학과 불교를 공부하였지만, 밀교는 사실 입문자에 가까운 필자는 밀교라는 너무나 넓고 깊은 망망대해에 이제 막 작은 배 하나 띄어 놓은 심경이다. 하지만 근본 마음의 화현인 삼신(三身)의 존재들과 삼세의 부처님들, 수많은 지혜의 스승들과 그리고 존경하는 불교총지종의 스승님들이 별처럼 이정표가 되어 주기에, 밀교의 대해(大海)를 건너가려 한다. <필자 주>
나를 깨어나게 하는 금강저
밀교는 ‘참생명’이다. 밀교의 가르침은 참생명의 본향(本鄕)에서 흘러나오는 손짓이며, 부름이며, 대일여래 비로자나부처님의 ‘환히 밝힘’이다. 환히 밝힘은 인류의 시간과 공간 속에 영원한 흔적들을 남기며, 붓다가 찾은 진리의 세계에 이르는 옛길로 인도한다.
그러한 옛길로 이르는 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때론 심연(深淵)에서 일어나는 상징과 이미지로, 무아적 구조의 의례로 우리의 심안(心眼)에 만다라의 세계를 펼쳐 놓는다. 그러므로 흔적들은 죽어있는 화석이 아니라 바로 매 순간 눈먼 중생을 깨어나게 하는 생명력으로 우리를 감응의 길로 이르게 한다.
사실 밀교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그러한 정의들은 언어의 속성상 ‘물맛’을 아는 ‘혀’가 될 수 없기에, 체험에 이르지 못한다면 백 가지 정의가 나와 무관한 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깊게 사유하고 실천하는 가운데 각자가 ‘물맛’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럴 때 밀교에 대해 말한다는 것이 과거 누군가의 말의 재생산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나를 깨어나게 하는 금강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밀교연재’를 시작하면서 밀교로 들어가는 여러 문 중 어떤 문을 먼저 열까 생각해 보았다. ‘밀교의 특징’이라는 주제의 문을 먼저 열어 본다. 그 문을 여는 까닭은 밀교란 무엇인가에 대한 대강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전체적인 윤곽을 위한 대략적인 특징이다.
밀교의 특징을 말할 때 두 가지 갈래로 말할 수 있다. 하나는 밀교를 받드는 특수 교단의 교판론의 입장과 그리고 대승불교와 밀교의 연속성, 동질성에 초점을 맞추어 파악하는 입장이다.
법신이 설법, 자성이 곧 법신불
먼저 교판론의 입장인 공해의 『변현밀이교론(辨顯密二敎論)』에 제시된 밀교의 특색은 현교에서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특히 법신의 해석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현교경전은 법신이란 계시기는 해도 무형무색(無形無色)한 것이기에 ‘법신불설법(法身不說法)’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밀교경전에서는 법신이란 유형유색(有形有色)한 인격을 갖추신 분이기에 ‘법신설법(法身說法)’이라 주장한다.
법신인 비로자나부처님께서 직접 설법하신다는 것은 매우 깊고 심오한 뜻이 있다. 밀교는 폭넓은 스펙트럼을 갖고 있는데, 밀교의 특징이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것은 대일여래 비로자나부처님의 이러한 특징이다. 당장에는 이해가 가지 않더라도 이를 마음속에서 깊게 지니고 생각한다면 좋은 공부가 될 것이다. 그리고 조금씩 이해가 깊어진다면 밀교의 여러 문을 관통하는 황금열쇠를 쥐게 될 것이다.
다음으로 십주심(十住心)으로 세운 교판이다. 십주심에 대해서는 「대일경」과 「금강정경」의 핵심을 다루면서 차후에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겠다. 십주심의 전(前) 9단계는 현교의 가르침이며, 그리고 10번째의 마음은 밀교의 가르침이다. 이를 비교 대비한 판석으로, 이 교판의 목적은 현교는 번뇌를 제거하는 방편설일 뿐 비보(秘寶)를 여는 열쇠의 역할은 되지 못하는 데 비해, 밀교는 중생본구(衆生本具)의 만덕을 밝힌다는 점이다. 그리고 인간은 제각각 서로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으나 그러한 마음들은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라 시시각각 변하는 변화무쌍한 것임을 전제한 후, 이러한 마음의 속성을 깨달아 ‘자성즉시법신불(自性卽是法身佛)’임을 속히 깨달아 갈 것을 강조한 점에 있다고 하겠다.
‘법신설법(法身說法)’과 ‘자성즉시법신불(自性卽是法身佛)’ 즉, 법신이 설법한다는 것과 자성이 곧 법신불이라는 십주심의 교판은 밀교만의 중요한 특징이라 하겠다.
종교 체험의 세계와 직접 관련
대승불교와 밀교의 연속성, 동질성에 초점을 맞춘 밀교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밀교의 특징으로서 첫째로 꼽아야 할 것은 종교 체험과 직접 관련되어 있다는 점이다. 유가(瑜伽, yoga)의 행을 통해 대우주(macrocosm)로서의 절대적 존재와 소우주(microcosm)로서의 인간적 존재와의 본질적 동일성을 확인하는 데서 밀교는 출발한다.
대우주 절대자를 범(梵, 브라흐만Brahman)이라 이름 붙여, 소우주 자기인 아트만과의 불이(不二)를 설파하는 우파니샤드의 세계관은 고대 인도 종교에 공통된 기반이 되었다. 초기불교에서 우주의 창조자로서의 범천(梵天, 브라흐마Brahma)이라든가 실체로서의 우리는 부정되었다. 그러나 진리를 나타내는 법(dharma)이 그대로 존재(bhāva)를 나타내기까지 확대 해석되었듯이, 초기불교에서도 현상과 실재의 동일성을 그 세계관의 밑바탕에 두고 있었다는 것은 인정할 수 있다.
대승불교, 특히 여래장 계통의 사상에서는 영원히 불변하는 실재 세계, 궁극의 진리는 현상계에 편재함과 동시에 스스로에 내재한다고 설명한다. 절대적인 존재는 우리들의 인식작용이라든가 언어표현을 초월한 것이므로, 말이라든가 문자로 바꾸어 말하는 것은 본래적으로 불가능하다. 다만 대승불교에서는 그것을 편의상 여(如)라든가 진여(眞如), 법성(法性), 혹은 공(空)이라든가 승의(勝義), 본불생(本不生) 등의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밀교에서는 이를 인격적으로 파악하여 법신·대일여래(法身․大日如來, mahāvairocana-tathāgata)라고 부른다.
자기가 대일여래에 휩싸여 있고, 또 자기에게 대일여래가 내재되어 있는 관계를 논리적으로 파악할 수는 없다. 그것은 종교 체험의 세계이지 일상 경험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을 할 수 있는 것은 분석지(分析智)에 근거하는 이해가 아닌, 신비한 직관에 의한다.
이 신비한 직관은 유가(瑜伽)의 관법을 통해 가능하다. 유가관법(瑜伽觀法), 즉 요가(yoga)는 인더스 문명의 유물에도 행자(行者)의 상으로 남아있듯이 그 기원은 오래되었다. 그것은 초기불교 중에서도 선정(dhyāna)으로 도입되었고, 또 대승불교에서는 유가행(yogacāra)으로 정각(正覚)에 이르는 실천체계 속에 짜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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