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선밀쌍수(禪密雙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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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95호 발행인 우인(최명현) 발간일 2024-06-01 신문면수 9면 카테고리 밀교 서브카테고리 밀교법장담론페이지 정보
필자명 정성준 필자법명 - 필자소속 전 동국대학교 티벳대장경역경원 필자호칭 연구원 필자정보 - 리라이터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4-06-20 16:36 조회 642회본문
조선불교 시대 유행한 밀교의 면목을 파악하다 보면 그 원류인 고려시대 전적을 함께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고려 조선조를 통털어 밀교를 전문적으로 다룬 문헌과 유물은 조선 초 신인종·총지종의 강제통폐합과 더불어 대부분 멸실되어 사라졌기 때문에 양대에 걸친 밀교의 유행을 모두 알 길이 없지만 학자들의 노력으로 적지 않은 부분들이 드러나고 있다. 현존하는 자료를 중심으로 밀교의 흔적을 찾는 것은 바닷가의 모래를 찾는 것과 같이 문헌들을 뒤지는 것이다. 최근 한국의 유불선을 망라한 고전과 사료들은 모두 디지털화되어 자료가 제공되어 있어 과거 많은 시간이 걸리던 검색 작업이 단축되었지만 밀교 관련 자료들은 전공자의 부재탓으로 그 온전한 면목이 드러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고려시대 발간된 선문보장록(禪門寶藏錄)은 진정 천책(眞靜天頙, 1206~?)의 저술로 그는 고려 고종 때 승려이다. 스님의 탄생 연도는 1206년과 1209년의 여러 설이 있고, 1293년에 선문보장록에 서(序)를 달았기 때문에 무려 90에 가까운 세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글을 쓰고 논구를 그치지 않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스님은 고려 태조 때의 공신 신염달(申厭達)의 11대손으로 약관의 나이에 예부시에 급제한 후 20대 초반 원묘국사(圓妙國師) 요세(了世)를 참문 하고 최초 천태종에 출가하였다. 이후에 30대 후반에 백련사의 주지를 지낸 기록이 남아있지만 선문보장록은 스님에 의해 한국선의 조사선풍 진작을 도모한 것이다. 선문보장록에는 몽암 거사 이혼(李混)의 발문이 부여되어 있으며 책의 내용은 선가의 공안(公案) 86칙에 대해 그 전거를 밝힌 것이다. 책의 내용은 선교합일(禪敎合一)을 개진하면서 선문의 우위성을 밝히는 선주교종(禪主敎從)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불교기록문화유산아카이브 해제에는 문보장록이 조선시대 1531년(중종 26) 경남 하동 지리산 철굴암(鐵窟庵)에서 개간되어 목판본을 출판되었고, 다시 1611년 지리산 능인암(能仁庵)에서 재개간되어 쌍계사(雙溪寺)로 옮겨졌다. 1908년 금정산 범어사에서 개간된 선문촬요(禪門撮要)에 수록되었으며 지금도 선가에서 중요시되고 있다.
책의 내용 가운데 눈 여겨 볼 대목은 권상에 드러나는 것으로 고려조 현교와 밀교, 선의 관계를 일목요연하게 요약한 것이다. 내용에 따르면. “불교는 무엇이든지 세 가지 분류를 벗어나지 않는다. 첫째는 현교는 소승·대승의 경율론 삼장이고, 둘째는 밀교는 진언유가·관정·오부호마·삼밀가지·만다라의궤를 포함한다. 셋째 심교는 ‘직지인심 견성성불’의 선법이다. 다음 최초 법륜은 현교로 마등경 권상 제2장을 첫 출발로 삼고, 다음 두 번째 법륜은 곧 밀교로서 금강지(金剛智) 삼장을 시조로 삼는다. 다음 세 번째 심교의 법륜은 보리달마(菩提達磨)를 시조로 삼아 법을 전한 것이다(敎者不倫 有三疇類 一顯敎者 諸乘經律論也 二密敎者 瑜伽灌頂五部護摩三密曼拏羅法 三心敎者 直指人心 見性成佛 禪法也 次一法輪 即顯敎也 以摩騰卷上第二張 爲始祖焉 次二敎令輪者 即密敎也 以金剛智 爲始祖焉 次三心輪者 以菩提達磨 爲始祖焉 是故傳法)라고 하였다. 현교와 관련해 마등가경을 거든 것은 붓다로부터 아난존자가 최초 법을 물은 것에 연유한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 밀교와 관련한 대목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밀교의 조사에 금강지삼장이 거론된 것이다. 선무외삼장 대신 금강지삼장을 꼽은 것은 고려시대 밀교를 두고 선(禪)과 친숙한 유가밀교를 제일로 삼은 탓인지 그 의도를 생각해볼 일이다. 여기서 삼밀만다라법[三密曼拏羅法]에 대해서는 신밀만다라·구밀만다라·심밀만다라로 구분할 여지가 있다.
중요한 것은 고려시대 오부호마와 만다라의궤가 엄연히 실존한 대목이다. 오부호마는 금강계법에 입각한 것으로 오부 실지(悉地)인 식재(息災)·증익(增益)·조복(調伏)·경애(敬愛)·구소(鉤召)의 다섯 호마법을 가리킨다. 만나라법(曼拏羅法)은 태장계·금강계법을 아우른 것으로 고려시대 18도법,호마·태장계·금강계·호마도량이 온전히 갖추어 설행된 사실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일본불교와 많은 교류가 있었는데 일본의 밀교승도 한국에 건너와 양국이 밀교의례를 두고 의식을 연구가 이루어진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고려밀교와 일본밀교의 친숙한 관계는 조선초 왕실에 의해 밀교사찰과 전적이 훼손되던 때 일본 밀교승이 세종에게 밀교대장경(密敎大藏經)을 빌려줄 것을 요구한 대목이다. 당시 세종은 불교를 경한시 하던 때여서 허락하였지만, 한번 일본으로 건너간 밀교대장경은 사고에 의한 화재를 이유로 다시는 조선에 돌아올 수 없었다. 개인적으로 밀교를 연구하면서 오래도록 찾았던 양부 도량(道場)의 기록을 보는 횡재를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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