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총지종

총지소식

불교총지종은 ‘불교의 생활화, 생활의 불교화’를 표방하고 자리이타의 대승불교 정신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생활불교 종단입니다.

급변하는 시대 변화에 동참, 대동단합하여 매진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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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66호 발행인 우인(최명현) 발간일 2022-01-01 신문면수 6면 카테고리 창종50주년특집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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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2-01-10 12:02 조회 2,27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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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변하는 시대 변화에 동참, 대동단합하여 매진해 달라
창종 50주년 기념, 제12대 종령 법공 대종사 특별 인터뷰

종조 원정 대성사께서는 1972년 12월 24일, 대승불교의 최상승의 가르침인 밀교를 만 천하에 천명하시며, 신라와 고려 시대에 흥왕했던 한국의 정통 밀교를 다시금 이 땅에 뿌리내리게 하셨습니다. 대성사께서 총지종을 창종하신 뜻은 근현대 한국불교사에 밀 교를 중흥시킴은 물론이요, 호국불교와 생활불교를 표방하며 불교의 현대화를 꾀하셨 다는 데에 큰 의의가 있습니다. 특히 즉신성불(卽身成佛)의 대도(大道)를 열어 고통과 괴로움에 허덕이는 일체중생들을 해탈의 길로 인도하겠다는 대비원력으로 불교총지 종을 세우셨으니 이 어찌 일대사(一大事) 인연(因緣)이 아니겠습니까. <총기 50년 창 교절 종령 유시문 중에서> 불교총지종 창종 50주년을 맞이하여 제12대 종령 법공 예하께 창종의 역사적 의미와 현재, 미래상에 대해 사자후를 청했다.이번 인터뷰 기사는 지난해 발간된 ‘불교총지종 50년사’에서 발문했다. 편집자 주


1. 총지종의 역사가 어느덧 반세기를 맞이했습니다. 감회가 남다르실 텐데요. 총지종 창종 50년을 맞는 소회부터 말씀해주십시오.

제가 스승으로서 종단에 정식으로 입문한 때가 총기 12년도이니 어느새 40년이라고 하는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교도로서 창종 직후부터 종조님을 직접 뵙고 여러 차례 말씀을 나누기도 했지만 아직도 그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간결하면서도 확신에 차서 하시던 말씀들이 지금도 귀에 쟁쟁합니다. 벌써 5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는 게 믿겨지지 않습니다만, 무엇보다도 생사를 걸고 철두철미하게 수행하셨던 선배스승님들이 계셨기에 오늘의 종단이 있다는 것이 감사할 뿐입니다. 종조님을 비롯한 수많은 스승과 교도들께 감사와 존경의 말씀을 드립니다.

창종 직후부터 총기 20년 정도까지 우리 종단은 교세가 정말 끝없이 확장되었어요. 그 기세라면 50년까지 갈 것도 없이 엄청나게 발전하리라 기대했지만 막상 50년을 맞이하는 지금 시점에서 보면 그때 가졌던 꿈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물론 지금 한국불교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성장했으니 충분히 잘 해왔지만 훨씬 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었다는 기대가 그만큼 컸다는 말입니다. 아무 것도 없이 시작한 종단이 이렇게까지 급성장한 데에는 남다른 힘이 있었습니다. 시대에 부응하는 새로운 가치를 제시한 것이 가장 큰 이유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급변하는 시대에 미래를 선도할 수 있는 종교가 부처님의 가르침이라는 사실은 변함없는 진리이며, 그 가운데 밀교로서, 특히 생활불교로 출발한 우리 종단은 시대를 이끌어갈 여러 가지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희망은 우리에게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2. 총지종의 지난 50년 역사를 돌아볼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워낙 많은 일들이 있었고 일일이 다 말하기도 어렵지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전국합창경연대회입니다. 창종 직후 전국 서원당에 피아노를 들이고 합창단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매년 경연대회를 열었는데 정말 환희스러웠습니다. 희망이 넘쳐났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그리고 우리 종단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 발전하기까지, 창종 당시 스승님들의 노고는 말할 것도 없지만 교도분들의 헌신은 정말 대단했거든요. 그 분들이 종단을 밑에서부터 탄탄하게 뒷받침해주셨지요. 그래서 보은하는 차원에서 경로법회를 열었어요. 그 당시에는 괴산수련원에서 주로 했는데, 23일 동안 재미있게 마당놀이도 하고 노래도 부르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교도들과 함께 웃고 노래하고 기도하던 모습이 가장 많이 기억이 나는군요.

 

3. 총지종의 지나온 발자취 가운데 종단 내적으로, 그리고 한국불교사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짚어본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생활불교로 출발했기 때문에 전통불교와는 여러 면에서 많이 달랐어요. 모든 사업들이 생활불교라는 방향으로 움직였습니다. 첫째는 교육사업에 주력했는데요. 현재의 통리원 건물이 한마음유치원으로 건립되었는데 어린이들에게 불심의 씨앗을 심어주기 위해 애를 많이 썼습니다. 그리고 동해중학교를 인수해서 청소년 인재양성을 위해서도 나섰습니다. 교육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는 역할을 실천해왔지요. 또한 미래 정보화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미디어 포교에도 앞장섰습니다. BBSBTN의 창립과 운영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는데요. 특히 BTN은 처음 출발할 때 이사 종단이 조계종과 우리밖에 없었어요. 조계종과 우리 종단이 규모나 재원에서 비교가 됩니까? 그런데도 나란히 참여해서 불교 포교에 힘을 기울였던 겁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교육과 미디어 포교에 발 빠르게 적극 참여했던 점은 의미가 각별하다고 생각합니다.

 

4. 원정대성사님의 가르침 가운데 반드시 가슴에 담고 실천해야 하는 가르침은 무엇일까요?

창교 정신에도 있지만 우리 종단은 활동하면서 닦고 닦으면서 활동한다는 생활불교의

철학을 갖고 있습니다. 생활불교의 핵심이 사사불공, 처처불공, 시시불공입니다. 생활과 불법을 따로 구분하지 않고 생활이 곧 불법이고 불법이 곧 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전통불교와는 분명하게 다른 부분입니다. 일반적으로 스님들은 오직 수행에 몰두하고 교도들은 수행보다는 기복적인 성향이 있는데 종조님께서는 부처님의 진실된 가르침을 실생활에서 실천을 통해 닦아야 한다고 하셨죠. 그 점을 우선 기억해야 하겠고요. 저는 개인적으로 가난해탈법을 가슴에 항상 담고 있습니다. ‘나의 재물을 남에게 주면

주는 그때 줄었지만 도로 돌아 불어옴은 우주자연 법칙이라.’ 이것이 바로 인과의 이치 아닙니까? 그리고 사람이 사람의 도리를 하고 살려면 사람으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은 어떤 일이 있어도 하지 말고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은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반드시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지극히 상식적이고 간단한 말씀 같지만 사람으로서 해야 할 도리를 주문하신 종조님의 말씀을 가훈이자 지표로 삼아 매 순간 이치에어긋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5. 총지종이 큰 위기와 갈등 없이 발전을 거듭해올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한 가정에도 부모의 성향이 좌우하듯이 종조님의 남다른 청렴함과 강직함이 종단에 아주 깊이 뿌리박혀 있습니다. 그 영향으로 스승과 교도들 모두 종조님의 수행가풍이 각인되어 오늘날까지 열정적으로 교화하고 단결, 화합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 어떤 분야에서건 철저히 공명정대하다는 점은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흔들리지 않았어요. 부정이나 사리사욕이 전혀 용납이 안 되지요. 이것은 법이나 계율로 강제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자연스럽게 배워왔고 체질화 되었다는 점이 특별하다 하겠습니다.

 

6. 총지종의 수행과 조직 문화에 있어서 가장 특별한 점이자 우수한 부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현교에서도 있었기 때문에 전통불교의 장단점을 잘 알고 있는데요. 종조님께서는 창종하실 때 이미 과학적이고 현실에 맞는 제도와 규범을 치밀하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수행과 현실생활을 둘로 나누지 않고 같이 닦으라고 하시면서 월초불공 제도를 마련하셨지요. 매월 새 달이 시작되는 첫 월요일부터 일주일 동안 집중적으로 불공을 올리게 한 겁니다. 모든 교도들이 소중하게 받들어 정성을 다하고 있는 이 전통이야말로 어디에 내놔도 자랑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현교에는 계율이 상당히 많고 복잡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우리 종단은 특별하게 계율을 지정하지 않고 승직자로서 지켜야 할 기본을 지키되 생활 속에서의 실천을 더욱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승직자와 교도 모두 오계를 지키도록 하고 특히 월초불공 기간 동안 더욱더 철저히 지키도록 했는데 이 점이 생활 속에서 불법을 실천하는 데 아주 적절하고 유용하다 하겠습니다.

정시정송의 전통 역시 의미가 큽니다. 아침 저녁 정해진 시간에 정송을 하되 횟수나 불공시간은 형편에 따라 자율적으로 하도록 했는데요. 평소에는 하루 2()정진, 월초기간에는 4()정진하는 수행 시스템이 정착되었지요. 보시 또한 스스로 정해서 불공정진과 함께 했습니다. 누가 강요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소중히 여기고 실천한다는 점이 의미가 있습니다. 여기에 우리는 어떤 어려움이나 난관에 봉착했을 때 참회로써 문제를 풀어갑니다. 현재 받고 있는 것은 내가 지어 내가 받는 것이니 억울하게 생각할 것 없이 인과법을 받아들여 철두철미하게 자기 인과를 깨쳐나갑니다.

그리고 교도와 스승이 신분이나 역할은 다르지만 차별을 두지 않는다는 점도 의미가 있습니다. 스승이라고 해서 닦는 방법이 특별한 게 아니거든요. 똑같습니다. 교도나 스승이나 똑같은 수행방법으로 똑같이 수행하다 보니 동질감도 강하고 서로를 대등하게 바라보고 존중하게 되지요. 자연히 친화력도 높고 신뢰가 깊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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