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죽음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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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58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21-05-19 신문면수 8면 카테고리 지혜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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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1-05-20 10:46 조회 3,944회본문
불교, 죽음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불교의 죽음 이해에서 중요한 용어가 바로 생사윤회 열반이다. 생사윤회와 열반은 불교적 죽음관의 핵심일 뿐만 아니라 부처님 가르침의 근간을 이루고 있으므로, 불교 이해와 불교의 역사적 전개에 있어서도 핵심적 역할을 수행했다.
붓다의 출가동기, 깨달음의 구체적 내용, 그리고 열반의 의미를 보다 자세히 검토한다면, 불교의 죽음 이해가 보다 분명하게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싯다르타 왕자가 왕궁을 버리고 출가하여 수행의 길에 들어선 목적은 죽음의 문제를 풀기 위한 것이었다. 출가를 만류하는 부왕에게 “죽음이 없는 길을 알려주면 출가하지 않겠다.”고 싯다르타는 말하기도 했다. 출가한 이후 오랫동안 진리를 추구했던 그는 어느 날 진리를 찾을 때까지 결코 일어서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고 나무 밑에 계속 앉아 있었다.
다음 날 이른 아침 동트는 하늘에서 샛별이 반짝일 때, 고타마는 자신을 무수한 삶에 걸쳐 가두었던 감옥이 부서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무명이 감옥을 지키는 간수였다. 무명 때문에 먹구름에 가린 달과 별처럼 그의 마음은 미혹에 휩싸였던 것이다. 미혹의 파도에 가려 우리는 실재를 주관과 객관, 자아와 타아, 존재와 비존재, 삶과 죽음으로 잘못 나누었다. 이렇게 차별하는 미음으로 인해 잘못된 소견 즉 감정, 갈망, 집착, 삶과 죽음의 감옥이 생겨났다.
붓다는 무명(無明), 참된 본성에 대한 무지가 바로 생사윤회의 고통으로 떨어뜨리는 근본원인임을 깨달았다. 마음의 미혹을 끝내는 것이 곧 생사윤회를 벗어나는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우리 마음을 참된 본성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랜 정진 끝에 어느 날 새벽 마침내 깨달음을 얻고 외친 첫 마디가 “나는 불사(不死)를 얻었다.”는 말이었다. 보리수나무 아래 앉아 “죽음은 없다”, “죽음은 죽음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보리수나무 아래 앉기 전까지 고민하게 만들었던 죽음이 알고 보니 실재하는 게 아니라 우리 의식이 만들어낸 허구에 불과했다. 죽음의 순간 우리가 맞을 죽음은, 우리가 생각했던 그런 식의 ‘죽음이 아니다’, 다시 말해 그런 죽음은 없다는 뜻이다.
죽음이 있다는 착각에 지금 살아있다는 생각을 떠올리게 되고, 지금 살아있다고 착각하는 순간 죽음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삶과 죽음은 인연의 결과일 뿐이지 실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붓다는 말한다.
붓다가 깨달은 다음 처음으로 제시한 교리가 고집멸도 사성제이다. 고제(古諦)는 사람들이 삶에서 느끼는 고통, 집제(集諦)는 고통의 원인, 멸제(滅諦)는 고동이 없어진 상태, 도제(道諦)는 고통을 없애는 방법이다. 붓다가 태자 시절에 생로병사의 고통을 사문유관(四門遊觀)할 때 직접 보고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찾기 위해 출가했고, 깨달음을 얻자마자 첫 설법에서 사성제 가르침을 통해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법을 제시했다. 따라서 붓다는 생로병사를 극복하기 위해 출가했고 깨달음의 순간에도 불사를 얻었다고 선언했으므로, 죽음 수용과 극복은 불교 가르침의 핵심인 것이다.
불교에서는 죽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심폐사와 뇌사 같은 육체 중심의 죽음이해와 어떻게 다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수명(호흡), 체온, 그리고 의식 세 가지가 육신을 버릴 때 육신은 쓰러져 마치 아무 감각 없는 나무처럼 된다. 우리의 생명은 수명(호흡), 체온, 그리고 의식 세 가지를 갖추고 있다. 호흡, 체온, 그리고 의식이 육신으로부터 벗어날 때 이를 죽음이라 일컫는다.” <잡아함경>
살아있을 때에는 호흡, 체온, 의식 세 가지가 서로 분리되지 않지만, 호흡이 다하면 체온이 떨어져 육신이 차갑게 되고 이숙식(아뢰야식)이 몸을 떠나게 된다. 호흡이 멈추고 심장 박동이 정지하면서 육신은 기능이 다하게 된다.
열반은 생사의 고통에서 벗어난 적멸을 뜻한다. 열반의 세계는 불생불사이다. 따라서 붓다의 죽음이란 붓다 육신의 죽음을 의미하고, 붓다의 입멸이란 붓다가 불생불멸의 열반에 들어갔다는 뜻이다. 붓다는 자신의 육체를 오래된 낡은 집에 비유한다.
“세월이 지나면 집은 낡아 마침내 허물어지듯이 육신도 결국 죽게 된다. 집을 받히고 있던 대지는 여전히 변함없듯이, 붓다의 육신은 죽었지만 마음은 대지처럼 안정되어있다.” <불반니원경>
붓다는 육신에서 벗어나는 길도 말한다.
“생명이 있는 모든 중생은 죽는다. 수명은 반드시 다하게 되어 업에 따라 인연의 과보를 받는다. 선과에 각각에 결과가 뒤따른다. 복을 쌓으면 하늘 세계로 올라가고 악을 지으면 지옥에 떨어진다. 도를 닦으면 생사의 과보를 끊고 열반의 세계로 들어가... 윤회에서 벗어나 죽지 않게 된다.” <별역잡아함경>
누구든지 죽은 이후 업에 따라 과보를 받아 윤회하게 된다. 그러나 윤회, 죽음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해탈의 길 역시 붓다는 제시했다. 붓다가 출가한 것도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벗어나 열반을 얻기 위한 것으로, 깨달음이란 생사에 자유자재한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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