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자연은 연기적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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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59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21-06-01 신문면수 10면 카테고리 종합 서브카테고리 생명살림 경전이야기⑤페이지 정보
필자명 불교환경연대 한주영 사무처장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 리라이터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1-06-04 13:23 조회 2,522회본문
인간과 자연은 연기적 존재
과거 세상에 설산(雪山)에서 가까운 어느 산 아래에 위덕(威德)이라고 하는 사슴 왕이 있었으니, 그는 5백 마리 사슴의 주인이었느니라. 그때 어떤 사냥꾼이 곡식을 놓고서 덫을 설치해 두었다. 사슴 왕이 길을 가다가 그만 오른쪽 다리가 털로 만든 덫 안으로 빠졌으므로, 사슴 왕은 생각하게 되었다.
‘만약 나의 이 모습을 보게 된다면 모든 사슴들은 남아 있는 곡식조차도 감히 먹지 않으려 할 것이다. 여기에 있는 곡식을 다 먹고 나면 그때 가서 내 다리 모양을 내서 보여야겠구나.’
그리고 여러 사슴들은 모두 떠나갔는데 한 암사슴이 섰다가 게송으로 말하였다.
“대왕이시여, 아셔야 하옵니다. 바로 사냥꾼이 올 것이옵니다. 원하옵나니 방편을 쓰시어서 이 덫을 벗어나 떠나시옵소서.”
그때 사슴 왕도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내가 방편을 부지런히 썼기에 힘이 이미 다하여 버렸구나. 털 덫은 더욱더 죄어들지만 도무지 벗어날 수가 없도다.”
암사슴은 사냥꾼이 도착한 것을 보고서 그를 향하며 게송으로 말하였다.
“그대의 날카로운 칼로 먼저 나의 몸을 죽이시고 연후에는 바라건대 풀어주시어 사슴 왕이 떠나가게 하시옵소서.”
사냥꾼은 그 말을 듣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내며 게송으로 대답하였느니라.
“나는 끝내 너를 죽이지 않으리라. 사슴 왕 역시 죽이지 않을 것이요 너와 사슴 왕을 풀어 줄 터이니 마음대로 가고 싶은 대로 떠나가거라.”
사냥꾼은 즉시 사슴 왕을 풀어주었느니라.
부처님께서 이어서 말씀하셨다.
“옛날 사슴 왕은 바로 지금의 내 몸이요, 5백 마리 사슴은 바로 지금의 5백 명의 비구이니라.”
『십송률잡송(十誦律雜誦)』 제1권 중
사슴왕은 다른 사슴들을 위해 고통을 참았고, 암사슴은 사슴왕을 구하기 위해 용감하게 사냥꾼에게 목숨을 걸고 맞섰다. 자비로운 사냥꾼은 이들을 풀어주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를 보면 여러 존재로 등장한다. 그 중에서도 동물로 태어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윤회를 믿는 인도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는 지금 우리가 듣는 것보다 훨씬 큰 영향력을 미쳤을 것이다. 그러나 윤회를 사실로 믿든 믿지 않든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는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우리는 식사할 때 공양게를 외운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고
내 덕행으로는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허물을 모두 버리고
육신을 지탱하는 약<藥>으로 삼아
깨달음을 이루고자
이 공양<供養>을 받습니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고 하고 생각해 보면 거기에는 농부들의 노동과 햇빛과 바람과 물과 흙 등 무수한 이읏의 노고와 자연에 대한 감사함이 가득하다. 그런데 만일에 그 음식이 고기라면 거기에는 축산동물의 고통과 절규가 들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혹자는 말한다. 식물도 생명 아닌가, 사람이 살려면 무언가 먹어야 하는데 그럼 식물도 먹지 않을 것인가? 부처님께서는 중생을 유정 무정으로 구분하셨다. 그러니까 동물은 사람과 같은 감정이 있는 유정이고 식물은 감정이 없는 무정이다. 그러니 같은 생명이긴 해도 고통을 느낀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식물이 어느 정도 감수 작용이 있다고 하더라도 또한 생명이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고 하더라도, 동물이 고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10배의 식물을 먹어야 한다는 사실에 비추어 보면 단순하게 양으로만 보더라도 10배의 살생을 하고있는 것이니 우리가 생존을 위해서 먹는다면 동물보다는 식물을 먹는 것이 맞다. 사람들이 고기를 먹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고기가 맛있기 때문이다.
사슴왕이 다른 사슴들을 위해 고통을 참았듯이, 암사슴이 사슴왕을 위해 용감하게 나섰듯이 불자들도 맛있음에 대한 욕망을 절제하고 탈육식을 한다면 가축동물들의 고통도 사라질 것이고 기후위기를 유발하는 축산업을 줄임으로써 지구생태계 복원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서구 기독교적 세계관에서는 동물을 포함한 자연과 인간은 차원이 전혀 다른 존재로 이해된다. 그러나 불교적인 세계관에서는 동물이나 자연은 인간과 연기적인 존재로서 서로 의존하고 영향을 주고 받는 존재로 이해된다.
1만년 전에는 99%의 야생동물과 1%의 인간이 이 지구라고 하는 공동의 집에서 함께 살았다. 그런데 지금은 인간의 독점적인 지배권의 남용으로 1%의 야생동물과 99%의 인간과 인간을 위한 축산동물이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인간의 과도한 욕망으로 생태계는 파괴되고 순환시스템이 붕괴되고 있다.
이로써 인류가 생명대멸종에 이르게 하리라는 인류세라는 인간에 의한 새로운 지질시대가 도래했다고 과학자들이 이야기하고 있고 이들의 예측은 매우 현실에 부합하고 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인간종 우월주의에서 벗어나서 우리가 자연의 일부이고 뭇 생명들과 조화롭게 살아가야 한다는 가치관이 분명하게 자리 잡아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가치관으로 욕망을 극대화하기 위해 촘촘하게 조직된 지금의 사회(정치 경제)시스템을 새롭게 바꾸어야 한다. 인간과 자연이 조화로우며 사람들 사이에서도 차가운 경쟁 체제보다는 따뜻한 배려와 돌봄의 공동체가 살아나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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