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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역경사 린첸상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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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59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21-06-01 신문면수 8면 카테고리 밀교 서브카테고리 정성준 교수의 밀교 인물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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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정성준 교수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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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1-06-04 13:20 조회 2,56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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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역경사 린첸상뽀
인도 원전 번역, 티베트대장경에 포함시켜... 요가딴뜨라, 무상유가딴뜨라 전적 중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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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알치사원 린첸상포 초상 벽화


대승불교시대 방대한 불전의 증가는 논리학과 밀교가 등장하는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밀교는 역사, 문헌, 교리, 수행, 의례, 미술 등 불교의 대부분의 주제나 소재에 대한 열매이자 귀결이다. 그 연원은 언제나 석가모니붓다가 설한 삼학의 범주로 볼 수 있다. 

밀교가 유행하면서 나란다대가람은 계학으로서 삼매야계, 혜학은 논리학, 정학은 밀교수행으로 묶는 간결함을 지향하였고, 이러한 경향은 티베트에 전해졌다. 

티베트는 8세기경 불교를 본격적으로 받아들였지만 9세기경 랑달마왕의 훼불에 의해 약 1세기 동안 침체되었다. 

사원이 파괴되고 승려가 살해되는 무수한 사건들이 있지만 불전의 멸절과 역경, 의례승을 잃는 것은 적지 않은 타격을 주게 된다. 

불교를 복구는 곧 불전의 복구로부터 시작한다. 티베트의 린첸상뽀는 위대한 역경사로 티베트불교를 새로이 세우는데 결정적 기여를 하였을 뿐만 아니라 많은 인도원전들을 번역해 티베트대장경에 포함시킴으로써 인도의 종교 문헌을 보존해 인류의 정신문화에 기여하였다.


린첸상뽀는(958-1055) 958년 서부 티베트에 해당하는 구게의 카체윙길에서 태어났다. 순수 티베트혈통은 아니지만 부모는 형 다음 태어난 둘째 아들을 처음에는 린첸왕축이라 이름지었다. 부모는 불자는 아니었지만 린첸상뽀로 하여금 불교를 공부하도록 지원하였다. 린첸 이후 태어난 남동생과 여동생은 불법에 귀의했다. 

아직 10대였음에도 불구하고 린첸왕축은 불교공부를 위해 인도를 방문하였다. 

이때 따시쩨모와 어머니가 여행을 도왔는데, 무수한 도적과 풍토병, 풍습에 고생하였고 스피니, 꿀루를 거쳐 이윽고 카쉬미르에 도착하였다. 첫 스승은 슈라다까라와르만이었으며 스승으로부터 산스끄리뜨와 불교철학, 밀교에 대해 공부하였다. 

이후 동인도로 이동해 몇 년간 위끄라마실라사에서 공부를 계속하고, 티베트로 돌아온 것은 987년, 13년이 지난 후였다. 린첸상뽀는 밀교의 성취를 이루어 대중들의 주목을 받았는데 마침 지역을 지배하던 구게왕 예셰워(947-1024)의 지원으로 티베트불교를 재건하는 사업에 힘쓰기 시작하였다. 

린첸상뽀는 손수 지은 왕가의 톨링사에 거주하면서 많은 인도의 스승을 모시고 역경작업에 전념하였고, 이후 6년간 인도를 방문하였다고 한다.

 다른 기록에 따르면 예셰워 왕은 티베트불교를 재건하기 위해 21인의 티베트청년을 인도에 유학하게 하여 산스끄리뜨어와 역경학을 배우게 했는데 린첸상뽀와 사촌인 렉뻬셰랍을 제외하고 모두 인도에서 사망하였다고 전한다. 


린첸상뽀는 49세 두 번째 인도여행에서 구족계를 받았기 때문에 최소한 두 차례의 인도방문이 확인되는 셈이다. 린첸상뽀는 75인의 인도스승으로부터 배웠는데 이 가운데 요가딴뜨라를 배운 라뜨나와즈라, 비밀집회딴뜨라를 전한 나로빠, 놀부링빠가 중요하고, 위끄라마실라사에서는 다이빵까라바드라, 지나까라, 그리고 짜끄라상와라딴뜨라의 주석으로 유명한 둘야짠드라 등이 유명하며 현교에 있어서도 티베트의 반야학을 발전시킨 많은 스승들의 도움을 받아 역경 사업과 자신의 공부를 향상시켰다. 

린첸상뽀의 시대에는 요가딴뜨라와 무상유가딴뜨라의 전적이 모두 중요시되었는데 특히 「금강정경」 계통의 많은 주석들을 번역하여 반야학, 성취법, 관정 등의 주제에 대해 중요한 저술들을 남겼다. 

린첸상뽀와 중요한 관계를 갖는 것은 예셰워의 조카이자 장춥워의 숙부인 라데왕으로, 왕의 지원으로 카찰사를 비롯해 많은 절을 건립해 역경과 불사의 근거지를 마련하였다. 


특히 996년 히말라야 자락에 따보사원을 건립하였는데, 처음에는 지역의 토착신이 방해했으나 이를 조복하고 건립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당시 장춥워는 인도 위끄라마실라사 출신 아띠샤(982-1054)를 티베트로 초청하여 유명한 「보리도등론」을 짓게 하여 불법이 파괴된 시절 석가모니붓다 시대의 계율회복을 토대로 삼보, 삼장, 삼학, 보살도와 바라밀 수행을 다시 티베트에 전하여 후전기 티베트불교가 융성하는데 기여하였다. 


린첸상뽀가 아띠샤를 만난 것은 85세 톨링사에서 이루어졌는데 아띠샤는 린첸상뽀를 보고 “만약 당신 같은 분이 티베트에 있다면 내가 티베트에 다시 올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라고 말하며 린첸상뽀를 극찬하였으나, 아띠샤가 밀교수행의 차제를 린첸상뽀에게 묻곤 다시 “엉터리 역경사여, 진정 내가 티베트에 올 이유가 여기에 있었군.”이라고 답하곤 린첸상뽀에게 온전한 밀교를 다시 전했다고 한다. 

이후 린첸상뽀는 10년간 아띠샤로부터 밀교를 배워 그의 수학을 완전하게 하였으니, 티베트에 테라와다와 대승불교, 밀교가 온전히 전해진 것은 린첸상뽀와 아띠샤, 서부티베트의 왕들 덕분이었다고 할 수 있다. 린첸상뽀는 95세 카체윙길에서 입적했지만, 그의 후생은 현시대에도 태어나 로첸린뽀체라는 이름으로 종교와 지역의 발전에 힘쓰고 인도 스삐띠의 따보사원을 주재하고 있다.


린첸상뽀와 아띠샤를 보면 어쩌면 한국의 역경도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고려대장경의 보존과 역경도 중요하지만 동아시아 문헌이라는 지역적 범주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인도불교에 존재했던 인도불전의 연구와 복원은 석가모니 붓다 탄생에 대한 진정한 경례이며 나란다대가람은 그 중심에 있다. 

밀교의 인물사를 정리하면서 개인적으로 명확해지는 견해들이 있다. 불교계 인물들을 만나며 진언, 다라니, 의례 등 밀교의 소재를 비불교인 것으로 간주하는 이들에게 밀교를 모르면 불교사의 시야가 좁은 것이라 조언한다. 

화엄이나 천태, 중관, 유식을 전공한 학자들이 자신의 전공과 밀교의 관련성을 부인하는 것 역시 불교사에 대한 불완전한 견해를 가진 학자로 간주한다. 겉보기엔 나이 들어 고집만 세졌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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