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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상심(平常心)이 도(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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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62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21-09-01 신문면수 5면 카테고리 법문 서브카테고리 이달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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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 필자법명 지성 정사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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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1-09-02 14:19 조회 2,60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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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상심(平常心)이 도(道)다
마음의 본질을 잘 아는 것, 진정한 나를 찾는 일 ... 삼밀수행, 참선, 염불 등으로 마음 다스리기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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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나를 움직이고 있습니다. 움직이고 있는 그 마음이 일상에서 벗어나지 않고 지극히 평온하게 작용하면 평상심이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살아있는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고요하게 일상에서 벗어나지 않고 지극히 평온하게 작용할 수 있을까요? 살아 움직이는 사람이 어찌 그 마음을 고정 불변할 수 있을까요?


『심지관경』에 ‘심법(心法)은 본래 없는 것이어서 진세(塵世)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것이니 어찌 탐진치에 물들며 삼세법(三世法)에 그 누가 마음이라 할 것인가? 과거의 마음은 이미 멸했고, 미래의 마음은 이르지 않았고, 현재의 마음은 머물지 않아서 모든 법(法)의 내성(內性)을 얻을 수 없고, 모든 법(法)의 외상(外相)도 얻을 수 없으며, 모든 법의 중간도 얻을 수 없다. 심법이 본래 형상이 없고 머무는 곳이 없어서 일체 여래도 마음을 보지 못하였거늘, 하물며 그 밖의 사람이 심법을 볼 수 있으랴.’라고 했습니다. 


일체의 여래가 보지 못한 그 마음을 내가 지금 찾고 있잖아요? 이미 찾아서 내가 쓰고 있으면서 따로 찾고자 하기 때문에 순간적인 착각을 한 겁니다. 지금 평상심이 도라는 것, 그걸 알고 있는 것이 바로 지금 내가 찾고자 하는 마음이라고 하는 겁니다. 이렇게 이미 갖춰져 있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어디에 있나 하고 찾으려고 하는 겁니다.

내가 기도 정진할 때 삼밀행을 하고 있지요. 몸으로 결인, 입으로 진언 염송 뜻으로 관하지요. 그 관하는 대상인 바로 내가 이미 불성을 갖추고 있고, 그 불성이라고 하는 것이 나 자신이 아닌가요?

「기신론(起信論)」에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마음이 생기면 모든 법이 생기고 마음이 멸하면 모든 법이 멸한다.’라고 말입니다.

나라고 하는 이 몸뚱이의 감각기관으로 인하여 얻어지는 어떤 존재도 모두 마음이라고 하는 것이 만들어 내고 또 그것을 이리저리 요리합니다. 별의 별 것을 다 만들지요. 예쁜 것이었으면 내 옆에 오래 머물었으면 좋겠고, 부정한 것이면 보기도 싫다고 하고, 또 나쁜 것은 빨리 사라지길 바라며, 좋은 것이면 더욱 오래오래 내게 머물러 있기를 바라는 것. 이것이 마음입니다.


『화엄경』에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했던가요? 모든 것이 다 마음입니다. 마음이라고 하는 그것이 마음을 찾아 헤매는 겁니다. 선종(禪宗)에서는 사람 마음을 소에 비유해서 소를 찾아 소를 잘 길들여 소를 타고 집에 돌아오면서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가는 심우도라는 그림을 볼 수 있습니다. 마음은 항상 고삐 풀린 소처럼 달아나고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쨌든 우리는 그 마음의 본질을 잘 알아서 마음 닿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그 마음의 주인이 되어서 그 마음을 잘 단속해야 합니다. 마음 단속을 잘하는 것이 진정한 나를 찾는 일입니다. 그 마음 하나 잘 다스리지 못하면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는 일도 아무 거리낌 없이 행하게 됩니다.


평상심이 무엇인가요? 배고프면 밥 먹고 싶은 것, 졸리면 한잠 자고 싶은 것, 밤이 되면 쉬고 낮이면 활동하는 것. 이처럼 우리 삶의 일상이 평상심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한 삶을 보세요. 가족 간의 애정 어린 충고에도 감사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흥분해서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르고 반성은커녕 덮어서 넘어갈 구멍이나 찾는 잘못된 삶을 볼 수 있습니다. 

지극히 평범하고 인간적인 사고와 삶을 외면하고 잘못된 삶을 사는 이가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지극히 간단합니다. 평상심을 찾지 못하고 흥분되어 그것이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마음작용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순간적으로 속아서 저질러진 결과입니다. 또 어떤 이는 자기의 실수를 알게 되면 그 순간 자기 자신에게 화를 내기도 합니다.


이 모두가 마음작용입니다. 그 마음이 본래 청정무구하지만 외부로부터 받아들여진 정보에 의해서 만족하고 즐겁고 행복함을 느끼기도 하고 불만이고 노엽고 슬퍼지기도 한 작용을 합니다. 이러한 마음을 잘 다스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삼밀수행, 참선, 염불 등을 하는 겁니다.

이런 수행을 통하여 깨달음을 이루면, 즉 성도하면 그 순간 온 세상이 달라 보일까요? 깨달은 전신이 금으로 덮이면 많은 사람들이 내게 절할까요? 깨달아도 그 자리입니다. 누가 칭찬하면 ‘내가 칭찬받을만한 사람이 아닌데 이 사람이 칭찬하고 있구나.’하고 들뜨지 않는 마음을 지키고 누가 날 욕하더라도 잘 참아 내는 마음, 그것이 평상심입니다. 불쌍한 사람을 보면 측은지심이 일어나고 경우에 어긋난 짓 하면 눈살 찌푸려지는 것이 평상심이요, 진리입니다.


사람이 마음을 바로 잡을 줄 알면 제천(諸天)들이 다 사람을 대신하여 기뻐할지니 마땅히 하심(下心)하여 부드럽고 겸손할 것이며 마음 가는 대로 따르지 말 것이라. 마음의 행(行)은 못 하는 일이 없으니 도(道)를 얻는 것도 또한 마음이라 마음이 하늘을 만들고 마음이 사람을 만들고 귀신도 만들고 축생도 지옥도 다 마음으로 만드는 것이다.

『반니원경』의 말씀입니다. 마음을 잘 다스려서 그 마음을 내가 부리면 내가 참나의 주인이고, 그 마음 가는 대로 쫓아가면 잘못된 삶을 하게 됩니다. 결코 마음 가는 대로 따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살면서 진정한 즐거움이 무엇인지, 괴로움이 무엇인지, 생각 없이 살고 행동하는 잘못된 삶을 하고 있지 않은지 수시로 점검하는 것. 바로 참회하고 고치는 것. 하루 행복하려고 하는 새벽 불공부터 밤이나 낮이나 염송(念誦)하는 것. 이러한 일들이 내 삶을 바르게 가꾸어나가기 위해서 쉼 없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오늘 하루가 행복해야 내일이 행복할 거고, 그러니까 살아있는 동안은 반복해서 하게 되고 그렇게 해도 어떤 일상이 아닌 대상을 접하게 되면 변하는 것이 내가 찾고자 하는 그 마음, 평상심(平常心)입니다.

평상심이 따로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종조(宗祖)님께서 가까운 내 마음에 극락(極樂)을 찾자고 하셨지요.


부처가 곧 내 마음(卽心是佛)이고 내 일상(日常)이 곧 부처의 삶이고 평상심이 나를 움직이고 있습니다. 평상심(平常心是道)이고 그런 삶이 부처의 삶이라 하겠습니다.



가까운 내 마음에 극락(極樂)을 찾자.


물건(物件)을 먼 곳에 두고 찾으려면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부처가 먼 곳에 있다고, 또는 따로 있다고 생각(生角)하면 성불(成佛)하기 어렵게 여겨지지만은
자성불(自性佛)이 곧 자기(自己)마음 가운데 있는 것이라고 생각(生覺)하면, 
성불(成佛)의 가능성(可能性)을 가지게 된다.
진리(眞理)가 먼 데 있다고 생각(生覺)한즉, 깨치기가 어렵지만은 만약(萬若) 생활(生活) 중에 있다고 안다면, 
곧 능(能)히 체득(體得)하여 깨칠 것이다.
극락(極樂)이 서방(西方) 십 만억(十萬億) 국토(國土)의 밖에 있다고 여긴다면, 죽은 후(後)에나 왕생(往生)할 곳이라고 생각(生覺)할 것이다.
모름지기 자기(自己) 마음 가운데 극락(極樂)이 있음을 알지니라. 
현세(現世)가 극락(極樂)인즉, 이것이 곧 가없는 고해(苦海)에서 머리를 돌려 저 언덕을 바라보라고 한 비유(比喩)인 것이다.
<종조법설집 1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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