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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요기 마르빠 출가·재가의 경계를 허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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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60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21-07-01 신문면수 5면 카테고리 밀교 서브카테고리 정성준 교수의 밀교 인물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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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정성준 교수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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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1-07-08 14:09 조회 2,74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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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요기 마르빠 출가·재가의 경계를 허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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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8세기 티베트 (루빈 박물관 소장)


인도불교가 전한 인도후기 대승불교는 나란다대학(마하위하라)이 지닌 정통한 불교교단의 면모, 특히 인도조사의 사자상승과 관정과 의궤로 요약되는 전승과 더불어 정반대로 진리를 인간의 실존에 녹여내고 형식과 권위를 벗어나 오도만을 치열하게 탐구했던 요기들의 양 수레바퀴가 역사 가운데 선명한 자죽을 남기고 있다. 

티벳불교 후전기의 조사 가운데 재가자로서 명백한 기록을 남기지만 위대한 요기이자 역경사로서 후대 재가불자들의 추앙의 대상이 되는 마르빠(mar pa chos kyi blo gros, 1012-1097)가 있다. 마르빠의 전기는 그의 구도와 제자 밀라레빠를 길러 낸 티벳불교 까규빠의 전승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마르빠는 1012년경 티벳 남부 호닥의 추콀이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마르빠왕축외셀, 어머니는 갸모외셀이었다. 

4형제 가운데 막내였던 마르빠는 일찍이 언어에 능하여 훗날 역경사로서 자질이 보였지만 자만과 고집으로 뭉쳤던 외골수였고 아들의 교육을 걱정한 부모에 의해 독미사꺄예셰(992-1072) 수도원에 보내졌다. 마르빠는 천재적인 자질을 유감없이 발휘해 3년간 수학으로 산스끄리뜨와 인도 지방어에 통달했다. 


그러나 부모의 능력으로 본격적인 불교수업을 위한 수업비를 마련하지는 못한 처지여서 마르빠는 몸소 인도와 네팔을 오가며 돈을 벌어가며 구도와 장사를 병행하기로 마음먹었다. 

마르빠는 역경사 뇨의 문하에 들어가 종살이도 했으며 특히 치텔바, 빠인다빠라는 네팔밀교 아사리로부터 가나챠끄라를 비롯해 여러 가지 관정과 밀교수행, 산스끄리뜨의 심화학습을 이어 나갔다. 

두 아사리는 모두 위대한 인도 나란다대학 학장출신인 나로빠(naropa, 1016-1100)의 제자였기 때문에 마르빠는 그의 운명적 스승 나로빠에게 점차 다가가고 있었다. 

마르빠는 역경사 뇨 스승을 모시고 인도를 여행해 나란다대학에 도착했다. 나로빠는 마침 학장직을 버리고 뿔라하리에 수행차 떠난 상태였기 때문에 마르빠는 뿔라하리로 출발하여 마침내 나로빠를 만났다. 나로빠는 마르빠에게 밀교관정과 가르침을 전했고, 특히 후기밀교 가운데 비밀집회딴뜨라와 헤와즈라딴뜨라를 중시하였다. 


마르빠는 12년간 인도에 머물면서 갸나갈바, 꾸꾸리빠, 마이뜨리빠 등 여러 스승으로부터 밀교와 도하문학을 전수 받고, 뇨 스승을 모시고 티벳에 돌아왔다. 

마침 네팔과 티벳 국경지역에 통관절차상 며칠 머물렀는데 여기서 마르빠는 꿈에 사라하로부터 마하무드라 수행을 전해 받게 된다. 고향에 돌아온 마르빠는 수행의 열정으로 인해 다시 인도로 돌아가고 마음을 포기할 수 없어 사금을 모아 인도로 떠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마르빠가 그의 주요한 두 제자인 옥뙨최꾸돌제(1036-1097)와 출똔왕기돌제를 만난 것도 이즈음이었고, 마르빠의 행적이 알려지면서 도오룽에 법당을 마련하고, 결혼까지 하여 부인 닥메와 사이에 달마도데라는 아들까지 낳았다.


마르빠는 인도로 돌아와 예전에 배웠던 스승들을 찾아 배움을 이어갔으며, 6년 후 마르빠가 다시 티벳에 돌아가려 할 때 스승들 가운데 나로빠는 마지막 남은 단계의 가르침을 전수하는 조건으로 다음 인도 방문때 자신을 찾아줄 것을 요청하였다. 마르빠는 귀국하여 재가자이자 스승으로서 그가 인도에서 수학했던 가르침을 모조리 티벳에 전했는데 이 가운데 마하무드라와 나로최둑이 가장 뛰어났다. 

이때 마르빠는 메똔쫀뽀소남곌첸과 더불어 운명적 제자 밀라레빠(1040-1123)를 만났다. 마르빠는 자신의 법을 아들에게 전하려 했으나 아들이 요절하는 바람에 전하지 못했지만 아들은 인도의 브라만으로 다시 환생해 공행모구륜유가를 밀라레빠에게 전했다. 

마르빠는 나로빠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세 번째 인도 구도여정에 오르게 되는데 마르빠는 중간에 거룩한 아띠샤(982-1054) 존자를 만났다. 

인도에 도착한 마르빠는 스승이 유가편력을 떠난 것을 알고 여러 달 동안 스승을 찾느라 헤매게 되었다. 마침내 마르빠는 나로빠를 찾아 스승으로부터 쨔끄라상와라딴뜨라를 전수 받는 등 3년간의 수행 기간을 거쳤다.


티벳에 전해지는 전기문학에 따르면 나로빠는 마르빠에게 몹시 인색하여 요구한 수업비가 없으면 절대 가르침을 전하지 않았다. 나로빠가 마르빠로 하여금 두 차례 더 인도여행을 하게 된 것도 가르침을 구실로 마르빠에게 수업료를 요구해 혹독한 구도여행을 종용한 나로빠에 의해 계획된 것이었다. 

마르빠는 티벳에서 주로 사금을 모아 나귀에 싣고 돌아와 나로빠에게 수업료를 지급하였는데, 세 번째 여행에서 수업을 마칠 즈음 나로빠는 예전처럼 마르빠가 준비한 사금 대부분을 소진하게 만들었다. 

마르빠는 원래 티벳으로 돌아갈 여행 채비로 사금 한 주머니를 감춰두었는데, 어느날 나로빠는 마르빠에게 마지막으로 숨긴 사금마저 요구하였다. 

마르빠는 빈털터리가 되어 티벳에 돌아갈 걱정에 마지못해 사금 주머니를 내밀자 나로빠는 “누굴 감히 나를 속이려 드느냐?”라고 말하며 크게 웃었다. 나로빠는 마르빠를 언덕 절벽위로 데려가 마르빠가 혼신을 다해 모은 사금 주머니를 탈탈 털어 황금을 공중에 흩뿌렸다. 


마르빠가 주저앉자 나로빠는 제자에게, “내가 지금부터 온 세상이 황금인 도리를 너에게 가르쳐주려 하는데, 너는 이까짓 사금 찌꺼기로 상심하고 있느냐?” 나로빠와 마르빠는 스승과 제자로 만나 비로소 영혼이 일체된 것이다. 

나로빠는 마르빠를 고생시켜 그가 간직한 장애의 업을 풀어주었다. 나로빠는 마르빠 이외에 다른 제자들이 여럿 있었지만 마르빠가 법통을 이었다고 선언하였다.


마르빠는 평생 13분의 스승을 모셨고 평생 24권의 저술을 남겼다. 마르빠는 88세 선정 중에 입적하였고 제자 가운데 옥뙨이 수습하여 불탑에 모셨다. 마르빠의 전기는 15세기경 까규의 법통을 계승한 짱 옌 헤루까에 의해 제자인 밀라레빠의 전기와 함께 결집 되었다. 

사실보다 문학적 소재가 강한 것으로 이 가운데 『밀라레빠의 생애』와 『밀라레빠의 십만송』은 티벳 불교문학의 백미로서 티벳 밀교수행자, 요기들의 치열한 구도와 아름다운 오도의 시가는 오늘날 세인들을 감동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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