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쫑카빠 롭상 닥빠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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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63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21-10-01 신문면수 9면 카테고리 종합 서브카테고리 정성준 교수의 밀교 인물史페이지 정보
필자명 정성준 교수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 리라이터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1-10-05 13:12 조회 2,853회본문
쫑카빠와 켈샵체, 케둡제(위) 조캉사원석가모니본존불(아래)
쫑카빠의 인생을 크게 나눈다면 전반기는 현교와 밀교를 섭렵한 수학의 시대였지만 후반기는 밀교수행에 몰두하고 당대의 역작들을 펼친 저술시대로 평가할 수 있다. 쫑카빠는 무착보살이나 많은 밀교수행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문수보살을 중심으로 중관의 조사나 밀교본존들과의 시공을 초월한 교감을 통해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명작들을 남겼다.
쫑카빠는 1402년 46세가 되었을 때 라뎅사원에 머무는 동안 역대의 명작인 『보리도차제론』(람림, Lam rim)을 저술하였다. 이 책은 아띠샤의 『보리도등론』의 가르침을 기반으로 석가모니 붓다가 설한 인도불교의 핵심적 가르침들을 요약하고 불교수행의 실용적 실천체계의 입장에서 정리한 것이다. 『보리도차제론』 이후 아띠샤의 까담빠의 전통은 쫑카빠의 겔룩빠(dge lugs pa) 전통에 흡수되기에 이르렀다. 쫑카빠는 자신이 전개하는 공성의 이론이 후대 학자들이 이해하기에 난해하다는 생각으로 『보리도차제론』의 집필을 주저했지만 문수보살은 계속하라고 용기를 주었다. 1405년 쫑카빠는 남쩨뎅사원으로 옮겨 우기 동안 스승인 렌다와와 꺕꼰뻴상뽀를 모신 가운데 대중들에게 계율에 대한 상세한 주석을 강의하였다. 이어 1407년 전후해 중관과 논리학에 대한 중요한 저술들을 진행하였고, 1415년 『보리도차제론』의 중본과 약본을 저술하였다.
현교와 더불어 『보리도차제론』에 비견하는 쫑카빠의 역작은 『비밀도차제론』이다. 1405년 저술을 완성한 『비밀도차제론』은 밀교를 크게 소작부·행부·유가부·무상유가부로 나누고 4부 밀교에 대한 주요문헌들을 추려 주석을 시도하였다. 『보리도차제론』과 『비밀도차제론』이야말로 인류사에 기록될 소중한 명저라 아니할 수 없다. 쫑카빠의 다른 밀교저술은 후기중관의 교학을 밀교수행으로 전개시킨 후기밀교의 『비밀집회딴뜨라』에 대한 주석들이다.『비밀집회딴뜨라』는 석가모니붓다의 연기관을 밀교수행으로 전개시킨 후기밀교 경전으로 연기관의 순관과 역관은 각각 생기차제와 구경차제의 수행으로 정비되었다. 그 중요성 때문에 쫑카바는 『비밀집회딴뜨라』의 주석과 성취법들에 대해 1401년부터 재주석을 집필하여 가장 큰 관심을 보였다. 겔룩빠 이외에 다른 티벳의 종파들도 쫑카빠의 저술들을 깊이 연구하기에 이르렀다.
쫑카빠의 명성이 주변에 알려지자 1408년 명황제는 쫑카빠를 남경에 초청하였으나 쫑카빠는 거절하였다. 1413년 두 번째 초청했을 때 쫑카빠는 대신 제자인 샤꺄예셰를 보냈다. 샤꺄예셰는 중국 방문을 훌륭하게 수행하였고, 황제는 많은 보물을 보내 이를 기반으로 1419년 세라사원이 건립되었다. 1424년 황제가 죽자 샤꺄예셰는 중국에 조문차 방문하였는데 이때 이루어진 티벳불교와 중국황제간의 유대는 계속 지속되어 청조의 최후인 1911년까지 이어졌다.
쫑카빠로 인한 티벳사회의 변화는 1409년 수도 라사에 묀람첸모, 즉 정초마다 대기원법회를 여는 것이었다. 묀람은 전통적으로 가장 오래된 고찰인 조캉사원에서 이루어졌으며, 이때 석가모니불상의 조성을 위해 많은 보물들이 보시되었다.
이어 간덴사원을 건립하여 1415년에 완성하였고, 1417년 밀교의 구히야사마자, 와즈라바이라와, 챠끄라상와라의 주요본존들이 안치되었다. 그리고 쫑카빠 자신이 제1대 좌주가 되었고 지금까지도 간덴티빠로 알려진 좌주의 전통은 이어지고 있다.
쫑카빠는 1418년 마지막저술인 『중관밀의해명』이라는 책을 완성한 다음 해 1419년 세수 62세에 입적하였다. 쫑카빠는 후계자로 곌챱제 달마린첸(1364-1432)을 지목하였고, 다음은 케둡제 겔렉뻴상(1385-1438)이 간덴티빠가 되었다. 위에 열거한 제자를 비롯해 수많은 제자들이 있었지만 특히 겐뒨둡(1391-1474)은 초대 달라이라마로 유명하고, 잠양최제따쇼뻴덴은 데뿡사원을 건립하여 세라사원, 간덴사원과 함께 겔룩빠의 3대 사원이 되게 하였다.
티벳불교를 동아시아불교의 종파와 비교할 때 동아시아불교는 주로 전래된 불전을 기준으로 종파불교가 등장했지만, 인도불교와 티벳불교는 인도에 형성된 삼장 전체를 연구문헌으로 삼고, 인도의 유부, 경량부, 유식, 중관학파의 학파가 형성되거나, 지역과 조사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예를 들어 동아시아에서는 화엄종과 천태종의 교상논쟁이 치열했지만, 티벳불교에서는 둡타, 즉 ‘궁극적 종의’를 따지는 논쟁이 주요 과목이다. 불교는 교학이나 수행체계 모두 전체를 아우르는 통합된 체계 가운데 시대나 지역별로 인연따라 종파를 형성할 수 있다고 본다. 언젠가 한국불교가 역사적으로 새로운 변화를 선택한다면 그것은 인도, 티벳불교의 전통처럼 삼장전체를 연구대상으로 전환하는 것이 그 하나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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