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총지종

총지소식

불교총지종은 ‘불교의 생활화, 생활의 불교화’를 표방하고 자리이타의 대승불교 정신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생활불교 종단입니다.

선밀쌍수 『밀교집』(2)

페이지 정보

호수 293호 발행인 우인(최명현) 발간일 2024-04-01 신문면수 8면 카테고리 밀교 서브카테고리 밀교법장담론

페이지 정보

필자명 정성준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교수 필자정보 - 리라이터 -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4-04-09 14:36 조회 912회

본문

선밀쌍수 『밀교집』(2)

태종은 1406(태종6)년 불교종단을 혁파하여 종단을 축소, 통폐합하였다. 『태종실록』에는 조계종, 총지종을 합하여 70사를 남기고, 중도종과 신인종은 합하여 30사를 남겼다고 기록되어 있다. 1784년(정조 8) 『밀교집』을 간행하였고, 무안 총지사가 1810년까지 존속 했으니 조선시대 밀교의 법통을 지킨 세월이 400여 년이나 되었다. 환우(喚愚)가 남긴『밀교집』의 서문은 신라시대 불가사의의 『대비로자나경공양차제법소』이후 밀교 경론에 대한 주석이 멸실된 현실에서 조선조 밀교사상을 엿볼 수 있는 귀한 자료라 아니할 수 없다. 환의의 <서>에는 밀교가 유포된 현실을 엿볼 수 있는 사정들을 전하는데, 서문에 대해 <개간비밀교서>라 이름한 것은 밀교 진언의 유통에 대해 오류와 산실도니 부분을 수정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그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산사마다 지혜 있고 밝은 이들이 있어 때때로 유포하였으나 다만 범본은 확실히 전하지만 여러 손을 거치면서 본래의 뜻이 망실된 경우가 많아 아는 이들이 볼 때 개탄할 지경에 이른 지 오래였다. 서산의 후인인 농산화상(聾山和尙)은 호서(湖西)로부터 영남에 이른 분인데 오래도록 범서의 신묘한 영험을 공부하여 깊은 이치에 대해 깨달음이 있었고, 필법도 범속함을 넘었다. 화상의 보살계를 받은 제자 몽은(夢隱)이자 도반은 화상에게 범본을 손수 써서 간행하여 유포하길 바랐다. 바른 후학의 안목으로 여러 차례 화상에 청하였으나 화상은 거절하길, “범서의 진언은 우리 부처님께서 친히 설하신 것이며 관음의 영험한 자취이다. 나는 범부에 지나지 않으니 어찌 현성의 영험한 경지를 얻었겠는가? 후인이 내가 필사한 책을 보면 지금 사람이 과거 필사한 책을 보는 것과 같아 개탄할 지경일 것이니, 나의 도반으로 하여금 후대에 웃음거리가 되게 할 뿐이다. 스님들이나 법에 어떤 이익도 없을 것이다”라고 하여 완강하였다. 그런데 몽은은 이 불사에 평소 나서지는 않지만 이 일을 두고는 스스로 맡아 권선문을 꾸리고 남북으로 뛰면서 시주자를 모집하였다」라고 하였다. 위의 내용은 『밀교집』 발간에 있어 설악(雪嶽)·연파(戀坡)·몽은스님의 주도로 농산화상을 설득해 시작하게 된 불사의 연기를 밝히는 것이다. 호서지역이면 과거 충청남북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조선 중후기까지 범서, 즉 실담을 쓸 수 있는 스님들이 있었고, 오자를 판단할 스님들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밀교집』의 또 다른 <서>는 스스로 늙은이[老叟]라 칭한 산포(山逋)의 글인데,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내가 일찍이 금강산 유점사에 있을 때 범서 패엽경 두 편을 본 적이 있다. 자획이 날아 살아 움직이고 필법이 신묘하였으니 보통 사람의 글이 아니었기에 옆에 두고 아낄만한 것이었지만 스스로 뜻을 알 수 없었다. 절의 승려가 이르길 이것은 관세음보살 수행의궤로 절의 보물이다. 나는 듣고 기이하게 여겨 감탄하였다. 그 후 나는 산맥 넘어 유람하다가 농산대사께서 광양과 가야 사이에 계신다는 소문을 들었다. 대사는 때때로 범자를 쓰셨는데 그 마음의 글과 통달한 수법의 경지는 가는 곳마다 신묘하여 관세음보살의 그림자가 늘 따른 것 같았다」라고 하였다. 산포는 후손에 전하길 청하였으나 [傳之爲佛家之用] 대사는 겸양하여 즐거이 듣지 않았고, 헛된 명예를 멀리한

대사의 풍도와 거듭 청해 후손에게 남겨진 과정이 <서>에 기록되어 있다. <서>에는, “오호라 이제야 나는 대사의 뜻을 깨닫기 시작했으니 그것은 불이 문에 드는 이들이 곧바로 연화법장에 이르러 관세음보살의 풍도를 좇아 대자비와 대법력으로 사계의 중생들을 제도하는 것이니 범서를 전하는 것에 만 급급하지 않았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불이문에 들자 곧바로 연화법장에이른다”는 말은 곧 즉신성불로 선가의 단박에 얻는 것과 다르지 않으니 선밀쌍수의 풍도가 어찌 아니겠는가? 

『밀교집』에는 범자실담과 한글 어문의 대조표와 금강계만다라에 입각해 제존과 갑자의 관계를 병기하거나 태장계만다라와 팔괘를 만다라로 그려낸 내용을 볼 수 있다. 『밀교집』은 한국의 전통문화를 밀교적으로 수용한 한국밀교의 독자적 해석을 전할 뿐만 아니라 현재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한글 세계화 시대에 한글과 실담의 심오한 이치를 밝힌 것이어서 후학들의 더 나아간 향후 연구를 기대하게 한다. 


전 동국대학교 티벳대장경역경원

정성준 연구원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