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두 의학박사의 요양병원 이야기 - 연명치료와 보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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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64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21-11-01 신문면수 4면 카테고리 지혜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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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1-11-05 14:56 조회 2,537회본문
조현두 의학박사의 요양병원 이야기 - 연명치료와 보호자
“선생님, 오늘은 이 말을 꼭 전하기 위해 가족을 대표하여 왔습니다. 우리 어머니에게 더 이상 수액을 주지 마십시오. 회복 가능성도 없이 고통만 있는데 우리 가족들이 어머니의 고통을 더 이상 감내할 수가 없습니다.”
말을 하면서 보호자는 눈물을 글썽이며 눈자위가 붉어지고 어깨가 흔들렸다. 어머니 치료 문제로 찾아온 50대의 두 여성.
“네, 무슨 말인지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시어머니도 보내보았는데 마지막에 너무 고통스러워하시는 것을 보고 저 또한 너무 힘들었습니다. 제발 어머니만큼은 편안히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환자는 우리 병원에 9년째 입원하고 있다. 다른 병원까지 치면 거의 10년 이상을 병상에서 보내고 있다는 말이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속담이 있듯이 병이 이처럼 너무 길어지면 보호자들도 탈진해 버린다. 3주 전에 잠시 퇴원을 하셨는데 일주일이 지나지 않아 다시 모시고 왔었다.
“선생님, 어머니가 오늘 아침부터 갑자기 말을 못 하고 침을 흘리고 오른쪽 팔, 다리에 마비 증세가 와서 모시고 왔습니다.”
“뇌졸중 같습니다. 큰 병원에 입원하셔서 치료를 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선생님, 어머니가 워낙 노령이고 수술을 받을 수도 없어 이곳에서 마지막까지 있기를 원합니다. 가족 모두가 합의한 것입니다.”
우리 병원은 요양병원이라 뇌졸중 같은 중증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시설이 없다.
“아시겠지만 뇌졸중은 골든타임이 있어 빨리 치료할수록 결과가 좋습니다. 큰 병원에 가시지 않고 꼭 우리 병원에 입원하시겠다면 서약서를 하나 적어야 합니다. 뇌졸중이 왔을 때 치료하지 않으면 절반 이상이 24시간 내에 사망합니다. 그래도 우리 병원에 있기를 원하십니까?”
“어머니는 평소에 연명치료를 하지 않겠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의미 없는 연명치료를 하지 마시고 혹 돌아가시게 되면 편안히 돌아가실 수 있게 해주십시오.”
환자가 입원하고서야 보호자들은 모두 돌아갔다. 수액을 투여하고 음식을 조금씩 먹이니 환자 상태가 조금씩 호전되었다. 하지만 열흘 전부터는 음식을 거의 먹지 못하여 링거액을 계속 투여하였다. 의식 상태와 인지능력도 크게 떨어져 자녀들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꼬집어야 겨우 눈을 뜨는 상태였다. 일주 전에 보호자가 면담을 왔다.
“선생님, 어머니가 너무 고통스러워하는데 수액을 주지 말고 편안히 돌아가시게 해주십시오.”
”네, 힘드시지요? 아시겠지만 음식과 물, 수액은 환자에게 끊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어머니가 회복 가능성이 전혀 없고 고통만 있는데 제발 수액을 주지 말기를 원합니다.”
“죄송하지만 그렇게는 하지 못합니다. 의료법에도 환자에게 물과 수액은 끊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꼭 그러시면 환자를 모셔가서 집에서 임종을 보시지요.”
보호자들은 환자를 집에 모시고 가려고 하지는 않았다. 보호자들은 자주 병동에 전화하여 간호사에게서 환자 상태를 전해 듣고 있었다. 보호자가 오늘 또 찾아와 수액을 더 이상 주지 말라는 가족들의 합의사항을 말하였다. 그녀의 눈 속에 자책감과 분노와 슬픔의 감정이 점점이 얼룩져 있었다. 마스크를 쓴 것이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 모른다. 그녀의 우는 얼굴 모습 전체를 보면 얼마나 그 고통이 와닿겠는가? 마스크 때문에 우는 모습은 눈만 보여 그 고통이 나에게 조금 덜 전해지는 것 같았다. 보호자가 웃으면 나도 조금 웃고, 보호자가 울면 그 슬픔이 전해져 와서 나도 우는 얼굴이 저절로 된다.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보호자가 울어도 구태여 우는 모습을 짓지 않아도 되어 조금 편안해지는 것이다.
중증치매환자나 말기 암 환자, 회복 가능성이 없는 중환자들을 보살피다 보면 그 가족들도 환자와 마찬가지로, 아니 환자보다 더한 고통과 슬픔을 실제로 겪고 있는 것을 느낀다. 요양병원에서는 환자도 중요하지만 환자 보호자의 오래된 고통을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보호자들의 오래된 고통이 적절히 해결되지 않으면 이런 것들이 축적되어 병을 얻고 쓰러지는 악순환의 연결고리가 되는 것이다.
요즘은 가정에서 치매노인 수발을 할 수 없는 시대이다. 요양병원에 모시고 오면 환자가 회복 불가능이라고 해서 환자를 포기하진 않는다. 수액을 놓아서라도 환자의 생명을 연장하는 것이 의료진의 의무이고 역할이다. 이제는 환자가 회복 불가능하고 소생의 가망이 전혀 없는 그에게 품위 있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연명의료와 존엄사를 적극적으로 고려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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