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아무리 사소한 것도 인연(因緣)따라 사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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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67호 발행인 우인(최명현) 발간일 2022-02-01 신문면수 9면 카테고리 밀교 서브카테고리 역삼한담페이지 정보
필자명 탁상달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전 동해중 교장 필자정보 - 리라이터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2-02-11 13:54 조회 2,201회본문
우리는 사람들을 만날 때 인연(因緣)이란 말을 많이 씁니다.
인연(因緣)이란 이 말은 긍정적 요소로 주로 많이 통용되지만 실제는 좋고 나쁨과 전혀 관계가 없는 말입니다. 왜냐 하면 좋은 만남도 인연이요, 나쁜 만남도 인연이기 때문입니다.
의미를 새겨보자면 인(因)은 직접적인 원인을 말하며, 연(緣)은 간접적인 원인으로 원인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부연해서 덧붙인다면 꽃을 기른다고 가정할 때 인(因)은 씨앗이요. 연(緣)은 땅이나 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므로 인만 있어서는 결과가 있을 수 없고 연만 있어서도 그 결실은 결코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과 연은 필수 불가결한 것입니다.
인(因)은 사람의 힘으로는 불러올 수도 내칠 수도 없습니다.
예를 들어 밭에 콩을 심으면 콩의 싹이 나고, 목화를 심으면 목화가 자라며, 정원에다 장미꽃을 심으면 장미꽃이 피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연(緣)은 다릅니다.
기름진 땅인가, 척박한 땅인가에 따라 결실의 정도가 다르고 물을 많이 주느냐, 적게 주느냐에 따라서 꽃이 활짝 피기도 하고 아예 피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시들어 버리기도 하게 됩니다.
용수 보살 중론 편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이 세상 아무리 사소한 사물일지라도 인연으로 일어나 인연으로 사라지지 않는 것은 없다.”
이 말은 인과 연은 함께 존재하는 것이며 악이 연을 만나면 악과(惡果)를 얻는 것이며 선이 연을 만나면 선과(善果)를 얻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부부의 연도 이와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만나야 할 사람이 만난 것이고, 또 그 만남이 좋은 결실이 되든 때론 악연이 되든 하는 것은 그 후의 인연의 결과에 의해 차이가 날 뿐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과의 인연도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는 아주 미미하고 작은 인연이라 할지라도 그건 결코 헛된 것이 없다고 한 것도 이 말에 기인한 것입니다. 이 말은 왕이 절대 권력과 권세로 자기와 전혀 인연이 없는 사람을 아무리 탐한다고 하더라도 그 인연은 맺어지지 않는다는 말과 같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만나고 스치는 작은 인연도 그냥 무심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인연(因緣)에 인(因)과 연(緣)이 존재하듯이 운명(運命)에도 운(運)과 명(命)이 존재합니다.
운(運)은 태어날 때 받는 것이라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명(命)은 태어날 때부터 계속해서 만들어 가는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운(運)은 좋은 사람도 있고, 운(運)이 나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명(命)은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라는 분별이 없습니다.
노력 여하에 따라 운(運)이 좋은 사람도 운(運)이 나쁜 사람으로 바뀔 수도 있고, 반면에 운(運)이 나쁜 사람도 운(運)이 좋은 사람으로 변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앞날을 미미하게나마 예측할 수는 있지만 모두를 예측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명(命)에 따라 미래가 바뀌기도 합니다.
따라서 운명(運命)을 좇아서는 안 되고, 숙명(宿命)을 좇아야 합니다.
운명(運命)이란 것은 가야 할 ‘길’입니다.
숙명(宿命)이란 것은 가야 할 ‘곳’입니다.
사람은 저마다 숙명(宿命)이란 것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받은 운(運)과 앞으로 만들어 가는 명(命)으로 숙명(宿命)에 이르러야 합니다.
결코 떠밀려 가거나 끌려가서는 아니 됩니다.
가야 할 ‘곳’은 정해져 있으나 가야 할 ‘길’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가야할 ‘길’인 운명(運命)이든 가야 할 ‘곳’인 숙명(宿命)이든 인연 따라 부처님의 가르침에 귀의해서 성불하시길 기원하며 ‘역삼한담’ 한 페이지에 인연(因緣)을 채워 봅니다.
임인년 설날 아침!!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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