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론에서 대자유로
페이지 정보
호수 268호 발행인 우인(최명현) 발간일 2022-03-01 신문면수 10면 카테고리 종합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필자명 박희승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교수 필자정보 - 리라이터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2-03-11 11:21 조회 2,071회본문
운명론에서 대자유로
며칠 전에 길을 가다 점집 앞에 고급 승용차가 즐비하게 서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신년이 되고 대선과 지방 선거가 있어서인지 점집이 문전성시더군요. 심지어 유력한 대통령 후보 가족들도 사주, 점 등 무속 신앙에 가깝다는 뉴스가 보입니다.
절에 다니는 불자라면서도 점을 보거나 굿을 하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믿는 교회나 성당을 다니는 분들도 그런 분들이 있다니 우리나라 사람들은 점이나 굿을 엄청 좋아하는 모양입니다.
어떤 종교학자는 한국 종교는 불교나 기독교에 관계없이 샤머니즘적인 무속 신앙에 가깝다고 평하더군요. 실제 200년 역사의 기독교나 1,700년 역사의 불교가 들어오기 전이나 후나 조상신이나 당수나무, 산, 돌을 믿고 안녕과 구원을 얻고자 하는 신앙은 자연스러운 인간의 심리이자 하나의 전통으로 자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이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이 개명한 과학 기술과 지식정보시대에 무속에 의존하여 자기 운명이나 진로, 나아가 국가 대소사를 결정한다면 그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합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적어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행하는 불자라면 이 사주 관상이나 점 같은 무속 신앙에 대하여 정견을 확고히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어리석음에 빠져 생사고해(生死苦海)를 영원히 벗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잡아함> 「점복녀경(占卜女經)」에서 만약 점을 봐준다고 남을 속인다면 그 사람은 지옥에 떨어져 한량없는 고통을 받게 될 것이라 하십니다. 이것이 불교의 점이나 사주, 관상에 대한 입장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이 이렇듯 명확함에도 우리나라 절에서는 사주, 관상, 점을 봐주는 분들도 계십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그렇게 하는 분들은 중생을 위한 방편이라 합니다. 하지만 부처님께서는 경전에서 저렇듯 단호하게 지옥에 갈 악업을 짓는 일이라 하셨으니 불자라면 누구나 부처님 가르침을 지침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처님께서는 왜 점을 보거나 봐주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부처님은 운명론을 부정하셨습니다. 부처님 당시 인도에는 사성 카스트제도가 있어서 브라만계급에서 태어난 사람은 브라만이 되고, 천민가에서 태어나면 천민이어야 했습니다. 아무리 총명하고 인물이 뛰어나도 천민은 평생 천민으로 살아야 합니다. 브라만들은 이 계급사회제도를 합리화하기 위해 브라만은 전생에 복을 많이 지었기 때문에 그 업으로 브라만으로 태어나고 천민은 전생에 복을 많이 짓지 못해서 천민으로 태어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이런 브라만교의 운명론과 확정된 윤회설을 부정하시고 깨달음을 통해서 윤회의 해탈과 행에 따라 과보를 받는 인과법(因果法)을 설하셨어요. 이것이 불교의 특색이고 가치입니다. 불교는 결정된 운명론을 부정하며 깨달음을 통하여 해탈, 대자유로 가는 종교입니다. 사주나 관상, 점 같은 운명론이나 미래 예언설을 부정하며 오직 지금 행하는 대로 받는다는 인과연기설(因果緣起設)의 종교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참된 불자라면 사주, 관상과 같은 운명론이나 점 같은 예언설에 현혹되어선 안됩니다. 부처님께서는 사주, 관상, 점 같은 것을 보거나 봐주는 사람 모두 지옥 간다 하셨습니다. 그런 것은 모두 거짓말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운명은 누구도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지은 대로 받을 뿐입니다. 그래서 더 초조 불안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인연에 맡기고 지금 이 순간 정견을 세우고 나와 남이 모두 행복한 자리이타행(自利利他行을) 한다면 무엇이 걱정입니까?
<금강경>의 부처님 말씀처럼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머물지 말고 항상 깨어있기를 바랍니다.
박희승 불교인재원 교수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