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총지종

총지소식

불교총지종은 ‘불교의 생활화, 생활의 불교화’를 표방하고 자리이타의 대승불교 정신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생활불교 종단입니다.

막존지해(莫存知解)

페이지 정보

호수 266호 발행인 우인(최명현) 발간일 2022-01-01 신문면수 3면 카테고리 종합 서브카테고리 지혜의눈

페이지 정보

필자명 김태원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칼럼리스트 필자정보 - 리라이터 -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2-01-10 11:29 조회 2,519회

본문

막존지해(莫存知解)
청장년기의 경험은 사람마다 다양하고 복잡/ 자신의 변혁을 위해서는 수행이 우선되어야

현관(玄關)은 외부에서 집 내부로 들어가는 경계에 있는 공간으로, 건축에서는 주택의 정 면에 낸 출입구를 이릅니다. 현관은 본래 불 교에서 나온 용어로 사찰의 첫 번째 문을 가 리켰습니다. 일본에서 이를 집에 들어가는 입 구의 의미로 사용하면서 우리말에도 들어오 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현관은 깊고 묘한 이 치에 드는 관문(關門)의 뜻으로 우리나라의 경우 일주문(一柱門)에 해당하는데 기둥에 입 차문래 막존지해(入此門來 莫存知解)와 같은 글귀가 쓰인 주련이 걸려있기도 하지요. 

이 문을 들어오는 사람은 지해(知解)를 버리라는 의미로, 지해란 지식으로 알려는 행위로 ‘알 음알이’라고 하는데 다른 말로는 분별지(分別 智)라고도 합니다. 여기에서 분별지는 현(玄) 이라는 글자와 반대편에 해당하는 의미라고 저는 이해합니다. 

현(玄)이라는 글자는 누에가 고치를 치기 위 해서 자신의 입에서 실을 뽑는 행위와 누에가 고치 안에서 변신하여 나비가 되는 변화를 형 상화한 단어라고 합니다. 누에는 고치 안에서 애벌레가 나비로 변신하는 천지개벽이 일어 나는 장소입니다. 현(玄)은 ‘가믈’로 새기는데 가믈은 검은 색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허블 우주 만원경은 보름달 넓이의 1/10밖에 되지 않는, 별이 거의 안 보이는 매우 좁은 영역을 수개월에 걸쳐 촬영한 것을 겹쳐서 얻어낸 사 진에는 수천 수 만개의 은하가 가득 차 있었습 니다. 현(玄)을 허블 우주 망원경이 찍었던 검 은 하늘인 딥필드(deep field)에 비유할 수 있 지 않을까요? 

있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찾기 위한 관문이 바로 현관인 것이지요. 그래서 현 관은 보이지 않는 영역으로 나가기 위해 들어 왔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에 주춤하는 공 간이기도 합니다. 인생에서 우리는 세 번의 커 다란 변화를 거친다고 합니다. 대개 십대 중 반의 사춘기쯤에 폭발적으로 신체적 성장이 이루어지면서 정신적 변화가 시작됩니다. 다 음 단계에서는 청장년기로 신체적 성장이 둔 화되면서 정신적 변화가 폭주하기 시작하지요. 이윽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신체적 기능이 저하되기 시작합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쉽 게 정신적 성숙이 동반되지 않지요. 대개 삼 사십 대의 장년기에 이루는 성취는 자신의 노 력으로 이룬 것이기에 그것을 영속(永續)하려 는 욕망이 강합니다. 그러나 이 욕망은 불가능 하기에 오히려 더 집착하려고 하지요. 비유하 자면 현관에 서서 문고리를 잡고 망설이는 모 습으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이전의 것을 놓고 새로운 단계로의 걸음을 내딛는 것은 자신에 게 익숙하고 편리한 세계와의 단절을 의미합 니다. 

청소년기에 학교에서 배운 지식과 청장 년기에 사회생활에서 얻은 경험으로 들어갈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청장년기의 경험은 사람마다 매우 다양하 고 복잡합니다. 그러나 장년기를 거쳐 노년기 로 접어들면 모든 사람의 시야는 단순해지기 시작합니다. 청장년기에 눈에 보이는 실증적 이고 실용적인 것에 집착했다면 노년기에 접 어들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 관심을 두 기 시작합니다. 이런 변화는 나이가 들어가면 서 나타나는 변화로 말했지만, 실은 나이와 무 관하게 일어나기도 합니다. 어쨌든 이러한 일 련의 과정은 익숙한 세계에서 낯선 세계로 들 어가는 과정이기에 쉽게 결정하기에 주저하 기 마련입니다. 

익숙한 세계는 ‘집’이고 새로 운 단계로의 진입은 그 ‘집’을 벗어나는 것으 로 불교적 용어로 말하자면 출가(出家)에 해 당 합니다. 몸은 새로운 세계에 들어왔지만 정 신적 변화는 지체현상을 보이기 마련입니다. 이 때 안내자의 역할을 해주는 것이 바로 경전 (經典)입니다. 여기서 경전은 반드시 종교적인 것만을 뜻 하지 않습니다. 동화책도 나에게 깨달음을 준 다면 경전이 됩니다. 문자가 아닌 풀과 나무 와 돌과 시냇물과 바람과 구름과 햇살과 달빛 도 내게 어떤 깨달음을 준다면 경전이 됩니다. 아니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내게 깨달 음의 계기가 된다면 역시 경전입니다. 어쩌면 가장 이상적인 것은 내가 다른 사람에게 경전 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기 위해 서는 스스로를 변혁시키기 위한 수행이 우선 되어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