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사가 다 만나면 헤어지는 것 아닙니까. 교화 열심히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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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72호 발행인 우인(최명현) 발간일 2022-07-01 신문면수 5면 카테고리 기획특집 서브카테고리 효강 대종사 행장과 업적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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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2-07-07 13:57 조회 2,026회본문
불교총지종의 큰 스승 효강 대종사께서 세연을 다하시고 지난 7월 1일 열반적정의 세계로 먼저 떠나셨다. 효강 대종사님께서는 종단 입교 후 오직 중생제도와 종단발전에만 매진하셨던 큰 스승이셨다. 지난 2018년 33년간의 통리원 생활을 마치며 “인간사가 다만나면 헤어지는 것 아닙니까. 교화 열심히 하시기 바랍니다.”라고 마지막 말씀을 남기시고 떠나셨다. 유훈이 된 큰 스승님의 인과의 법은 모든 사부대중에게 영원한 사자후가 될 것이다. 부디 법신 비로자나 부처님의 가지력으로 극락왕생 하소서. 편집자 주
입교와 초대 중앙교육원장
종단은 1985년 2월 22일 총지종의 사상과 교의를 보다 깊이 있게 연구하기 위해 법장원 내에 밀교연구소를 개설했다. 당시 효강 대종사는 포교사에 위촉되면서 연구소 내 상임연구위원으로 승서된 것이 종단 소임과의 첫 인연이다. 1940년대 서울 중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동아대학교에서 정치경제학을 전공한 대종사는 밀교연구소에서 대성사의 가르침과 총지종의 수행법에 대한 연구를 본격화하는데 충분한 인재로 신망이 높았다.
1986년 중앙교육원이 설립되는데 효강대종사가 초대 교육원장으로 임명되었다. 대종사는 시무교육부터 스승교육, 스승 보수교육, 강공회의 커리큘럼과 강사 등 승직자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 관리에 집중했다.
밀교사상과 밀교관법을 중심으로 하되 보다 다양하고 심층적인 불교 사상과 리더십, 경영실무 등으로 교육내용을 넓혀갔다.
제5대 통리원장 그리고 교세확대
효강 대종사는 1986년 9월 제5대 통리원장에 취임한다. 당시 종단의 교세는 들불같이 번져나갔다. 통리원장 시절 밀인사 신축헌공불사, 혜정사 헌공불사, 선지서원당을 화음사로 개칭 이설, 만보사, 지인사, 운천사 신축부지 매입, 실지사 이전, 충북 괴산 수련관 착공 등이 연이어 진행됐다. 여름학생 수련법회, 경로수련법회, 전국합창경연대회를 처음으로 개최했으며, 종단의 육영사업을 중등학교로 이어갔다. 학교법인 대동학원을 설립한 후 1989년 3월 4일 1대 이사장에 종령 록정 대종사, 이사에 효강 대종사가 올랐다. 동해중학교(현 학교법인 관음학사)는 현재 모범적인 불교종립학교이자 명문사학으로서 내실 있게 성장해오고 있다.
법장원과 밀교연구소 확대 개편
경전 연구와 불서 발간을 총괄하는 법장원과 밀교연구소를 1995년 2월 18일 확대 개편하는데 있어 효강 대종사가 법장원장으로 임명됐다. 대종사는 종단 연구원들과 함께 동국대학교 서윤길 교수를 지도교수로 위촉하고 동국대학교 등에서 유식학, 정토학, 비교종교학 등 석·박사 전문연구 인력을 대거 영입했다. 총지종의 창종과 발전에 사상적 기반을 구축한 원정 대성사의 사상과 가르침을 재조명하여 대중에게 알리고 나아가 밀교사상의 역사적, 교리적 근간을 확고히 하고 대중화하고자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대종사는 육군 제51사단 호국달마사와 자매결연을 통해 불교총전 370권, 종조법설집 450권, 불사법요집 200권, 염주100개 등을 기증하고, 정기법회에 참여하여 삼밀의궤법을 전수하는 등 군포교에 대한 지원도 꾸준히 확대했다.
불교TV 설립과 효강 대표이사 취임
종단은 1994년 불교계 종합유선방송 텔레비전 설립 준비 단계부터 발기인과 이사, 포교위원 등 주요 소임을 맡아 설립 준비의전 과정에 힘을 보탰다. 이사로서 설립 초기부터 영상포교에 큰 힘을 실어준 종단은 1999년 11월 법장원장이던 효강 대종사가 대표이사로 선출되어 개국 이후 봉착한 운영상의 어려움과 난제를 해결하는 데 일조했다. 정보화 시대에 발맞춰 이사종단으로서 BBS불교방송과 불교텔레비전 BTN의 설립과 운영에 앞장서 참여함으로써 방송을 통한 밀교포교의 영역을 개척하고 총지종을 선양하는 전기를 마련했다.
제9대 통리원장, 세계속의 불교로
종단은 1993년 대전세계박람회에 종교계의 일원으로 참여했다. 108개 나라와 33개의 국제기구가 참가한 가운데 진행된 산업, 경제, 과학기술, 학술, 문화 관련 전시회에서 총지종은 밀교수행법을 선보이고 수준 높은 문화행사를 개최했다. 또 한국불교종단협의회의 일원으로서 세계불교계와의 교류에 나서 종단의 위상과 가치를 세계에 알렸다. 1997년 일본 교토에서 개최한 제3회 한중일 불교문화교류대회에서는 대종사가 법장원장으로서 한국불교를 대표해 연설을 통해 삼국의 불교 대표기구가 공식화, 전문화 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했다. 이후 한일불교대회, 한중일불교대회, 국제재가불교지도자대회 등을 통한 국제포교에 앞장섰다.
생활불교, 사회공헌으로 회향
1996년 한국불교종단협의회 산하 소비자보호위원회 위원장으로 효강 법장원장이 맡아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에 소비자 보호시책을 건의하고, 시장 및 상품 정보, 소비자 교육 및 계몽, 소비자불만 및 피해 해결을 위한 상담과 정보제공, 소비자보호에 대한 제도와 법률의 연구 조사 활동을 전개했다.
또 IMF 외환위기로 생계의 위험에 놓인 저소득 취약계층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자 종단은 1999년 5월 29일 사회복지법인 불교총지종사회복지재단을 창립하며, 효강법장원장을 이사장으로 추대했다. 이사장은 재단을 대표해 역삼재가노인복지센터, 강남은빛축제 등 노인복지사업에 공을 들였으며, 2001년 서울시장 표창을 수상하며, 사회복지사업이 불교계 전반으로 확대되는 기틀을 제공했다.
종조 선양, 원정기념관 개관
2004년 12월 2일 원정기념관 개관불사를 봉행했다. 대종사는(제9대 종령) “원정 대성사께서 뿌리신 정통밀교의 씨앗을 잘 가꾸어 이 땅에 윤원대도의 만다라가 활짝 피어나게 할 것이며, 승직자는 창종 초기의 열화와 같은 교화정신을 살리고 교도들은 초발심의 정진력으로 퇴전하지 말아야 한다”고 설파했다.
2007년 1월 29일 총지사 종조 탄신 100주년 기념법회에서는 대종사는(제10대 종령) “종조탄신 100주년을 계기로 우리는 종조님의 가르침을 바르게 이해하고 시대에 맞는 교화방편을 개발함으로써 이 땅에 다시 한 번 밀교중흥의 기치를 드높여야 하며 이것이 원정 대성사의 유훈을 참되게 기리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새로운 종풍운동의 전개로 중생제도와 교화에 앞장
제11대 효강 종령은 2010년 말 추계강공회에서 스승들을 향해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삼밀관행 수행으로 거듭나 승단과 교도를 위하는 마음으로 생활불교를 널리알릴 것을 요청했다. 종령 임기 마지막까지도 승단을 결속하고 시대가 요구하는 스승상을 정립하고 중생제도와 교화에 열성을 다하기 위해 5개항의 새로운 종풍운동을 전개했다.
① 뼈를 깎는 듯한 수행으로 용맹정진하여 삼밀관행(三密觀行)을 실천하자.
② 부처님의 재산인 정재를 아끼고 철저히 관리하자.
③ 부처님의 가르침에 즐거운 마음으로 수순하자.
④ 생활불교를 널리 홍포하며 실천하자.
⑤ 중생제도에 열과 성을 다하며 신명을 바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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