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밀교의 전개와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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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71호 발행인 우인(최명현) 발간일 2022-06-01 신문면수 8면 카테고리 밀교 서브카테고리 밀교연재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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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2-06-08 14:29 조회 1,960회본문
초기밀교의 전개와 형성
인도 땅에서는 밀교의 맹아가 형성될 때 여러 요인에 영향을 받으면서 전개되어 초기 밀교로 확립되었다. 그런데 최초기 밀교 경전이 인도에서 성립하는 3세기경부터 중기 밀교의 『대일경』 이 성립하는 7세기 중반까지, 4세기 반에 이르는 간격이 있다. 그 긴 시간을 하나의 특징으로 말하긴 어렵다. 그러므로 초기 밀교의 시대를 3시기로 세분화하여 살펴본다면 초기 밀교의 전체상에 접근할 수 있다.
초기 밀교의 전시대를 제1기, 제2기, 제3기로 구분한다면, ‘제1기’라고 부르는 것은 최초기의 밀교로 규정되는 시대, 대략 3세기에서 5세기 중엽, 인도 시대로 말하면 쿠샨 왕조에서 굽타 왕조 전기까지를 가리킨다. 이 시대는 밀교의 맹아라고 할 수 있는 경전이 성립되고, 점차 밀교적 색채를 띤 경전이 형성되는 시대이다. 그러므로 제1기는 ‘초기 밀교의 성립형성시대’라고 부를 수 있다.
제2기라고 부르는 시대는 5세기 후반보다 6세기 중엽, 인도의 시대구분으로 말하면 굽타조 후기를 가리킨다. 이 제2기는 밀교적 특색으로 보나, 초기 밀교의 전시대를 통틀어 정확히 중간기에 해당하고, 급격히 밀교적 색채가 강해져 새로운 전개를 맞이하는 시대라고 할 수 있다. 가령 수호를 목적으로 한 다라니나 주문 중심이었던 1기 때부터 인계, 화상, 만다라 등을 이용한 의례가 조직되면서 기존의 다라니나 주문 중심의 밀교에 비해 한 차원 높은 밀교 요소가 등장하게 된다. 그래서 제2기는 ‘초기 밀교의 전개시대’라고 부를 수 있다.
제3기라고 칭하는 시대는 6세기 후반부터 7세기 전반 무렵, 인도의 시대구분으로 말하면 굽타 왕조 말기부터 포스트 굽타 왕조 시대까지를 가리킨다. 이 시대에는 밀교자(密敎者)의 새로운 규범이 만들어지거나 수행자의 소원 성취(悉地)를 얻기 위한 밀교적 수행법이 정비되는 특징이 있다. 또 수행에 필수적인 만다라와 화상(畵像)이 복잡해지고, 이를 이용한 관정의례가 변화하여 성불을 지향하는 의례로 재구성된다. 이것을 가지고 초기 밀교의 확립이라고 보면, 제3기는 ‘초기 밀교의 확립 시대’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4세기 반에 걸친 초기 밀교는 다양한 변천을 거듭하여 확립되어 간다.
제1기 시대의 초기 밀교의 명아
그런데 제1기 최초기 밀교의 경전은 중국의 경록(經錄)에 근거하면 <밀교계 달라니 경전>과 〈밀교계 호주(護呪)경전〉이라고 하는 두 갈래로 분류할 수 있다. 이 두 계통으로 크게 나누는 경전군이 다음과 같다.
제1기 초기 밀교 경전(3세기~5세기 중엽)
<밀교계 다라니경전>
① 『무량문미밀지경(無量門微密持經)』1권
② 『 지구신주경(持句神呪經)』1권
③ 『화적다라니신주경(華積陀羅尼神呪經)』1권
④ 『대방등다라니경(大方等陀羅尼經)」4권
⑤ 『청관세음보살소복독해다라니주경(請觀世音菩薩消伏毒害陀羅尼呪經)』1권
⑥ 『십일면관세음신주경(十一面觀世音神呪經)』1권
〈밀교계 호주(護呪)경전〉
① 『대금색공작왕주경(大金色孔雀王呪經)」1권
② 『마니라단경(摩尼羅亶經)』1권
③ 『환사발타신주경(幻師颰陀神呪経)』1권
④ 『단특라마유술경(檀特羅麻油述經)』1권
⑤ 『관약왕약상이보살경(觀藥王藥上二菩薩經)』1권
⑥ 『대길의신주경(大吉義神呪經)』4권
<밀교계 다라니 경전>이란 선행하는 대승의 공사상이나 다라니사상에서 전개한 밀교계 다라니를 중심으로 한 경전군을 말한다. 그에 반해 〈밀교계 호주(護呪)경전〉은 소승부파의 빠릿따(Paritta, 護)에서 전개한 주문을 중심으로 한 경전군이다. 이 점에서 최초기의 밀교는 대승과 소승부파 양쪽 모두를 기반으로 형성되었다는 것이 된다. 따라서 밀교의 맹아는 대승·소승부파 중 어느 하나로만 국한될 수 없다. 그런데 소승·대승을 포함한 불교 교단 전체의 밀교화 현상은 조금 더 후대의 제3기가 되고 나서이다.
최초로 밀교화 현상이 나타난 것은 <밀교계 다라니경전> ①이 성립한 3세기경으로 추정할 수 있으며, <반야경>의 영향 아래 밀교화가 시작되었다. 한편, 〈밀교계 호주경전〉에서는 소승부파의 근본설일체유부의 주변에 있는 자들이 3세기 후반경에 ①을 제작한 데서 비롯되었다. 그것도 마찬가지로 ‘수호와 안녕’이라는 동기를 바탕으로 두 계통의 밀교화가 진행되었다.
그러면 왜 주적(呪的)다라니를 설파하는 <밀교계 다라니경전>이나 주문을 설파하는 <밀교계 호주경전>이 3세기 초부터 후반에 걸쳐 같은 수호와 안녕을 목적으로 제작된 것일까. 불교인이나 인도 민중에게 신변의 위험을 없애고 안녕을 바라는 심정은, 주문을 금지한 석존의 시대에도 그 이후의 시대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 심정이 비단 제1기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며. 동시에 이 시대는 여러 대승경전들이 편찬되던 시기이기도 하다. 새로 제작하는 대승경전에 수호와 안녕을 목적으로 하는 경의(經意)를 얼마든지 담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라니와 주문의 창송(唱誦)을 중심으로 한 최초의 밀교 경전이 제작된 것이다. 거기에는 최초기 밀교계 여러 경전이 제작된 만큼 목적의식이 숨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밀교계 호주경전>의 ②~④에 현저한 인도 사회의 힌두화와 함께 나타난 인도 고래의 주술이나 주문 신앙의 대두를 큰 원인으로 들 수 있다.
이 인도 고래의 주술과 주문신앙을 가진 사람이 기존의 대승다라니를 밀교계 다라니로 변용시켰을 것이다. 또한 인도 고래의 토착 주문, 특히 드라비다계 주문을 외우는 자가, 한정하면 근본설일체유부의 주변에 있는 자가 드라비다계 주문을 빠릿따로 대체하여 경전에 담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경위로 대승 다라니와 소승부파의 빠릿따가 기정사실화하고 경전 작가 주변에서 창송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전 작가들이 呪的 다라니와 주문을 담아 밀교 경전을 새로 제작했던 것이다.
따라서 두 무리의 경전 작가들이 의도하는 바는 교단 내에 대두하는 인도 고래의 주술과 주문에 따른 呪的다라니와 주문, 이를 통해 수호와 안녕을 얻으려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을 최초기 밀교의 맹아로 말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제1기 초반 밀교’는 비불교적인 인도 고래의 주술이나 주문신앙에 뿌리를 둔 수호와 안녕을 목적으로 한 밀교였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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