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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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70호 발행인 우인(최명현) 발간일 2022-05-01 신문면수 4면 카테고리 종합 서브카테고리 지혜의 눈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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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2-05-16 10:59 조회 1,875회본문
무분별한 개발과 자연의 파괴, 기후 이상 초래
인간 중심의 세계관에서 생명 중심으로 옮겨야
서양 미술사에서 18세기 말까지 바로크와 로코코를 거치면서 장대한 성당과 궁전 건축이 이루어졌고 화려한 귀족문화가 이루어졌습니다. 로코코 미술은 4% 정도 소수의 귀족이 전 국토의 40%이상을 소유하고 걷은 세금으로 향략적 문화에 탐닉하고 있었기에 프랑스 대혁명으로 봉건귀족의 특권이 타파되면서 로코코 미술은 급속히 쇠퇴합니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은 성장하고 있던 부르주아가 노동자 농민과 합세하여 구체제(ancient regim)를 무너뜨린 사건이었습니다. 뒤이은 나폴레옹 시대는 전 유럽을 군사적으로 점령하고 비록 다시 왕정으로 돌아갔으나 적어도 프랑스 혁명의 이념을 전 유럽에 전파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조응하는 미술로 신고전주의가 등장하였습니다.
17세기에 폼페이 유적이 발굴되고 1756년에는 빙켈만이라는 독일의 미술 사학자가 그리스 미술 모방론을 펴내면서 고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이러한 영향으로 등장한 것이 신고전주의입니다. 그러나 요하임 빙켈만이 찬양해 마지않은 그리스 조각의 순백의 미는 이후 인종주의와 결합하여 나찌의 홀로코스트가 일어나는데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 조각은 대리석으로 만들었고 그 위에 화려한 색상을 입혔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색이 벗겨져 흰 색의 대리석이 드러난 것이었습니다. 이를 본래 색이 없었던 것으로 오해한 르네상스 미술가들의 생각을 답습한 빙켈만의 오류였습니다. 아니 빙켈만은 세월의 풍파로 색상이 벗겨져 흰 색의 대리석만이 남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은폐하였다고 합니다. 아마 자신의 세계관으로 그리스 미술을 재구성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영향은 히틀러의 아리안 인종의 우월주의에 미치고 결혼식 때 입는 흰색 드레스에 남아있게 되는데 순결을 상징하는 흰색 드레스는 근대의 창작품이자 심지어 인종주의와 연관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신고전주의는 고전에서 끄집어낸 규범을 미술 활동에 강제하면서 이에 대한 반발로 낭만주의가 등장하였고 뒤이어 사실주의가 나타납니다. 사실주의는 미술의 주제가 신화와 성경의 내용, 왕족과 귀족의 취향에 맞는 것을 버리고 일반 민중을 대상으로 하였습니다. 이는 19세기의 시대적 상황과 관련이 있습니다. 비록 프랑스 대혁명이 실패했지만 한 번 물꼬가 트인 일반민들의 의식은 1830년 7월 혁명과 1848년 2월 혁명으로 이어졌습니다. 영국은 노동자들의 참정권이 점차 확대되는 과정을 거쳐 정치적 평등이 확산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변동의 영향으로 신화와 성경의 내용을 주제로 한 상상의 창작물이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미술이라면 사실주의는 현실에서 주제를 가져왔다는 특징이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변화는 인상파의 등장으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화와 성경의 내용은 실제로 볼 수 없기 때문에 미술가의 상상이라는 주관에 의해 재구성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시대적 상황에 의해 강제되는 한계가 있습니다. 르네상스 이후 원근법과 사물의 고유한 색이라는 원칙은 모든 미술가들에게 강제되었지만 19세기 중반의 인상파에 오면서 이 원칙이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인간의 신체의 비례와 사물의 고유한 색상에서 벗어나 오히려 퇴보한 듯한 표현이 등장합니다. 인상파와 후기 인상파의 화가들이 보여준 그림은 현실의 모습과 다르게 그려집니다. 한마디로 미술가 자신이 느낀 인상을 그림으로 나타내면서 미술가의 주관이 전면에 등장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서양 사상의 전통이 플라톤의 이데아나 기독교의 유일신론이나 근대의 이성이 가진 획일적이고 절대적 원칙으로 자신들과 다른 세계와 인간을 자신들의 잣대에 맞추어 강제로 바꾸려는 세계관이 19세기 중반 이후에 무너지기 시작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것은 서구 문명이 일(一)에 대하여 다(多)를 중시하는 자각이 일어났음을 의미합니다. 세계를 선과 악, 시(是)와 비(非)와 같이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동서양이 같습니다. 단지 두 영역을 대립적으로 보는 기왕의 서구 문명과 달리 이 둘을 상보적(相補的) 관계로 보는 관점이 등장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변화는 문학과 예술과 철학의 분야에 국한되었고 정치 경제는 여전히 예전의 세계관에 사로잡혀 있어 20세기에 들어와 1,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것이었죠. 지금은 무분별한 자원 개발과 자연의 파괴로 기후 이상을 초래하였고 인류의 멸종을 앞당기고 있습니다. 신 중심의 세계관이 인간 중심의 세계관으로 이동하였지만 생명 중심의 세계관으로 옮겨가야 할 때입니다. 생명 중심의 세계관은 불교에서만 보이는 가르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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