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길목에서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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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54호 발행인 우승 발간일 2004-04-01 신문면수 4면 카테고리 -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필자명 김선미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총무국장 리라이터 -페이지 정보
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5-12 06:18 조회 3,123회본문
불교계에서 일하는 활동가들이 몇 년 만에 모처럼 모여 강원도로 워크샵을 가는 날이었다. 오후3시에 출발할 예정이어서, 나는 오전 내내 정신없이 그 날의 일을 서둘러 처리하기에 바빴다. 사무실 식구들과 늦은 점심을 먹으러 갔는데, 식당 분위기가 어찌 이상하다! 자세히 보니, TV에서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어 국회위원들이 몸싸움을 벌이는 장면이 보였다. 밥을 먹는 건지 아닌지, 자꾸 자꾸 한숨이 나왔다. 동료 중 누군가가 ‘워크샵을 가야 되는 것이 아니라, 국회로 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하고 말을 했지만, 머릿속은 심한 충격으로 텅 빈 것 같아 아무 말도 못했다.
워크샵의 컨셉은 ‘2010 희망찾기’였다. 지금부터 노력하여 2010년에는 희망을 만들어보자는 이야기 일 것이다. 근데, 이대로라면 2010년의 우리들에게 과연 희망이 있는 것일까? 활동가들의 오랜만의 나들이 가는 찻 속에서부터 돌아오는 순간까지, 마음속에 큰 돌덩어리를 넣고 있는 것 같아 그리 즐겁지만은 못하였다.
집으로 귀가한 날 저녁, 나는 인터넷을 통하여 현재의 상황을 모니터 하였다. 그리고 나름대로 ‘그들이 원하는 것은 표면적으로야 대통령 탄핵이겠지만, 자꾸만 떨어지는 지지율하락 속에서 4.15총선을 연기시키고 고건총리로 유야무야 흘러가다가 결국은 내각제개헌을 추진하는 것으로 정국을 몰아가는 것일 것이다.’라고 정리하였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정말 분노스러웠다. ‘그나마 얼마나 어렵게 여기까지 온 민주주인데……’
사실, 나는 지난 대선 때 정몽준의 지지철회와 같은 극적인 상황에서 노무현대통령을 지지했었다. 그렇다고 노대통령이 모든 것을 잘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게다가, 취임이후 그는 나의 정치적 희망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미움보다는 ‘자신의 기득권을 영원히 지키기 위해 누가 봐도 뻔히 보이는 파렴치한 일을 저지르는 자들이 국회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현실’을 바꾸지 않는 한 그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좌절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오늘과 같은 상황에서 나는, 대의민주주의제도의 한계를 느끼면서도 그럴수록 올바른 정당선택의 중요성을 실감하고 동시에 진정한 국민 의 대변인 역할을 할 사람들을 국회로 보내야 한다는 막중한 사명감을 혼란한 정국에 사는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새삼 느꼈다.
월요일 아침, 사무실 동료들과도 잠시 토론을 하였는데, ‘서로의 정치적 입장은 약간씩 달랐지만 국민적 합의제도인 총선만큼은 절대 연기시키는 일은 없어야 된다’ 는데는 동의하였다. 퇴근 후 나는 촛불시위행사에 참석하였다. 혼자 간 터라, 노래도 잘 따라 못하고 조금은 수동적이었지만, 마음은 뜨거웠다. 다음날도 나는 시위에 참석하였다. 평일이라 사람들이 적을까봐 걱정되어서 피곤한 몸을 달래며 간 것이다. 귀가시간이 늦어지자, 남편은 ‘이 나라 자네 혼자 지키는가?’ 하고 웃으며 농을 쳤다. 하지만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이 형편닿는 데로 가야지 어찌하랴’ 싶어, 더 열심히 갔다. 큰 힘이 되지는 않겠지만, 이렇게 하는 것이 그나마 내 양심에 따른 나의 민주주의 실현방식인 것 이다.
지난 토요일 저녁, 시청 앞의 찬란한 20만개의 불꽃들을 벅차게 보고 있는데, 옆에 계시던 할아버지께서 “대한민국은 아직 희망이 있어! 정말, 자랑스럽다!”라고 말씀하셨다. 그 순간 나도 선거 때만 되면 늘 불신했던 내나라 동포들에게 희망을 거는 마음이 생겨나고 있었다.
최대의 사회적 이슈인 탄핵상황과 관련하여, 불교계에서 일하는 한 분과 짧게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 분은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대두될 때 그것을 “불교적으로 본다면, 어떤 것 일까.”라고 하시며, ‘지금의 탄핵 상황을 불교적으로 본 한다면, 중도, 연기, 무아의 관점에서 보아야 할 것이다. 중도는 올바른 길과 그른 길을 아는 것’ 이라고 덧붙여 이야기 했다. 그렇다면, 현재의 상황들을 모든 관계성의' 결과로 또한 다른 것의 원인으로 동시에 작용하고 있는 연기적 관점으로 인식하고, 대중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미 너와 내가 없는 심리적 공동체를 형성한 것을 무아의 관점으로 보아야 할 것인가!
짧은 알음알이지만, ‘올바른 길과 그른 길을 아는 것’ ‘독재의 시퍼런 칼날 속에서도 몇 십년 동안 쉼 없이 전진해온 민주주의에 대한 지속적 관계성’ ‘나는 없고 선한의지만이 있는 촛불시위’ 를 나는 불교적 관점과 연결시켜보았다. 부처님께서는 한치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 진리파지의 영역에서 제일먼저 바른 이해를 강조하시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일상적인 세속의 삶을 살아가다 역사적 소용돌이에 직면 한 지금, 우리들에게도 역시 역사에 대한 바른 이해와 그 이해에 근거 한 바른 행동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무리한 생 각이 될까? 아닐 것이다. 사실, 세속(역사)에서의 정의는 늘 상대적인 의미를 가지며 어느 누구도 선택의 곤란함을 피할 수는 없으니, 오직 바른 이해만이 우리를 이 곤경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 본다.
〈김선미/인드라망생명공동체 총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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