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불공 잘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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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74호 발행인 우인(최명현) 발간일 2022-09-01 신문면수 4면 카테고리 종조멸도절특집 서브카테고리 '불공잘해라' 독후감 우수작<2>페이지 정보
필자명 나종훈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 리라이터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2-09-06 15:37 조회 1,739회본문
불심, 속세의 번뇌, 업, 옴 나에게는 아직도 낯설게만 느껴지는 단어들이다. 사람들은 종교의 믿음의 시발점이 어떻게 될까. 부모의 영향을 받아서 어릴 적부터 자연스러운 발걸음일 수도 있고 살면서 고통의 강에 휩쓸려 헤매다 스스로의 영적 이끌림으로 찾았을 수도 있다.
우연찮게 접하게 된 ‘불공 잘해라’라는 책의 서두에서 고리타분한 불교이야기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지만, 차츰 한 인간의 삶 속에서 총지종이라는 밀교 전반에 영향을 준 과정을 보며 잠시 동안 나를 돌아보게 되고 성찰의 마음으로 책을 덮게 되었다.
무신 집안에서 종교의 지도자가 나오게 되는 과정, 그의 삶 속에서 역경의 세월을 밀양, 하얼빈, 중국 선양 등을 옮겨가며 견문을 넓히고 세상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군 서기로 일 할 당시에는 자신의 가치관을 표현하고 자신만의 길을 우직하게 걸어가는 모습에서도 나를 번갈아가며 떠올려보곤 했다.
나라면 어땠을까. 그가 현시대에 태어났으면 어땠을까. 종교가 다르다는 점에서 타 종교를 배타적으로 바라보고 설득하고 전파하고 관철시키는 대부분의 이러한 행위는 거부감이 들었다. 나의 종교는 다 옳고, 그 외의 종교는 사이비에 부적절하다고 할 수 있는가. 깨달음은 어느 곳에서 어떠한 형태로도 찾아 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굳게 믿고 있는 나의 종교 안에서도 부정은 일어나고 눈살 찌푸리게 되는 숨겨진 민낯이 있기 마련이다. ‘불공 잘해라’를 통해 한 시대상부터 한 종교가 자리매김하는 과정을 보니 총지종이라는 생활 불교에 대해 관심이 커지게 되었다.
모든 종교의 화두에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는 것은 인간의 삶 속에서의 사랑 그리고 고통, 인연의 관계도에서 성찰과 번뇌, 그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 깨침의 도달하는 과정, 비로소 열반에 이르는 과정, 삶의 종착이 아닌 이어짐의 과정, 이 모든 과정을 이끄는 힘. 그게 종교의 힘이라 생각한다.
내가 평소에 곧잘 상상하고 누군가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면 말해주고 싶은 내용이 다시금 떠올려졌다. 사람의 고통은 ‘누구나 동일한 양의 물 한 컵이다’로 비유했을 때 그 물 한 컵을 다 채우게 되는 시점이 현생에서의 마지막 눈을 감는 순간이라 가정을 해보는 거다. 타인의 고통의 깊이와 정도를 어느 누군가가 점수 매기고 상중하를 논할 수 있을까.
물론 내가 지금의 고통의 면역의 정도에서 대성사의 시대에 아들 손순표로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대목에서는 말문이 막히게 된다. 하지만 그 시대상에서 녹아들어 삶의 무게를 온전히 날 것으로 받아내어 면역이 형성 되었다면 고통의 민감도는 좀 떨어지지 않았을까. 누구나 고통의 물 한 컵의 동일 출발선이 있다는 거고 어느 누구도 상대방의 고통의 정도를 섣부르게 판단 할 수 없다라는 것이다.
혹자들은 “나는 전쟁을 겪어봤기 때문에~ 굶어도 봤고~ 뭐뭐 때문에~ 라떼는~” 이러한 말로 상대방의 고통의 질량을 어설피 가늠하는 것은 그 상대방을 아끼는 마음이라 할지라도 작은 범위의 상처이고 죄악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옆집 아이는 어려서부터 부잣집에서 원하는 대부분의 많은 것들을 누리며 지내왔고, 부모도 건강하고 따뜻한 가정에서 자라왔다고 가정하자. 누구나 OO이는 좋겠다~ 하는 집안. 반면에 또 다른 집 아이는 유복하지도 않았고, 어려서 부모님을 여의고 힘들게 성장해 왔다고 가정해보자. 누구나 평등하고 동일한 조건이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현실은 매섭다.
고통의 물 한 컵이라는 가정을 접목시켜보면 전자의 따뜻한 가정의 아이는 고통의 컵에 물을 많이 채우지 않고 고통의 면역이 낮은 삶으로 무탈하게 자라오다 어떠한 불행하다 할 수 있는 일을 겪게 될 때는 그 동안 천천히 채워졌던 고통의 물 컵의 수위가 급격하게 높아질 수 있고, 후자의 가난한 집안의 아이는 처음에 많은 양의 물을 채웠지만, 고통에 대한 굳은살과 면역력으로 그 이후의 불행의 속도가 방파제를 넘듯이 완만하게 부딪혀 올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내 생각이지만 죽는 그 날까지 고난과 역경 없이 살아 온 사람도 있을 것이라 보지만 그것 또한 그 당사자가 되어보지 않은 상황에서는 섣부르게 판단하기 어렵다. 어른에게 사기 맞은 3억이 큰 고난일까 어린 아이에게 있어 동네 개에게 빼앗긴 핫도그가 큰 고난일까
결국 우리의 삶의 고통의 정도는 스스로가 느끼는 정도이고 그 끝은 물 한 컵이 모두 채워졌을 때 현 생에서의 삶은 마무리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의 환경과 여건을 부러워하고 나의 환경을 탓하면서 인생을 허비하는 것 보다 이 또한 돌고 도는 것이고(내 생에 아니라면 내 자식의 생에 또는 나의 환생의 삶) 나의 고통의 물 한 컵을 채워 나간다 생각을 해보면 조금 더 담대하게 고난에 마주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에 이 생각을 나의 교리로 믿고 싶어진다.
'불공 잘해라' 어떻게 하면 불공 잘 할 수 있을까 의문은 온전치 않지만 한 가지 믿음의 결과로 마음속에 자리잡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해 어떤 특정 종교의 깨달음이 아닌 나로써의 삶을 마주하는 마음가짐에 큰 획을 긋고 초를 켜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 준 것 같아 마음이 뜨거워지고 감사함을 느낀다. 곱씹으며 마지막 날까지 열독 해보며 쓴 불공 잘해라. 그래 불공 잘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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