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내용을 조금만 바꾸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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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56호 발행인 우승 발간일 2004-06-01 신문면수 4면 카테고리 아제 아제 바라아제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필자명 김선미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인드라망생명공동체총무국장 리라이터 -페이지 정보
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5-12 08:07 조회 2,252회본문
예년과 마찬가지로 아이들과 함께 연등축제에 갔다. 갖가지 등불, 많은 사람들의 즐거운 울림, 웅장한 장엄물... 정말 너무 멋졌다. 화려한 행렬 가운데, 규모는 작지만 미얀마나 태국 등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들의 모습도 있었다.
삶이 고통스러울지 모르지만 오늘 만큼은 그들도 신나서 연 신 손을 흔들고 환하게 웃었다. 정깊은 우리나라 사람들! 약속 이나 한 듯 격려의 박수를 힘껏 쳐주었다. 잠시 후 입정거리가 끊일 새 없는 작은아이가 솜사탕을 사달라고 졸라, 형과 하나씩 사주고 자리를 잡고 구경을 하는데, 옆에 있는 어린 여자 아이가 말똥거리는 눈으로 솜사탕을 쳐다본다.
어느덧 큰아이 작은아이 할 것 없이 그 여자아이와 함께 솜사탕을 나누어 먹는다. 그 모습을 보니, 약한 사람을.위해 힘찬 격려의 박수를 쳐주는 것, 작지만 함께 나누는 것, 그리고 그 사실 자체를 함께 즐거워하는 것, 이런 것이 부처님 오신 날을 기리는 의미가 아닐까 하고 잠시 생각해 보았다.
다음날 노숙인 쉼터에서 일하는 친구에게서 메일이 한 통 왔 . 봉축연등축제 때 노숙인들이 참여하여 장터를 개설하고 수익금을 노숙인복지를 위하여 사용할 계획을 세우고, 봉축위에게 참가를 신청했는데, 수락되지 않았다며, 그것에 대한 서운함이 편지에 배어있었다. 짐작해 보건데 봉축위에서는 노숙인이라는 사실이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봉축 관계자들의 염려도 이해할 수 있다. 시민들과 불자를 위 한 축제가 혹여라도 몇몇 사람들에 의해 망쳐질까 두렵기도 했을 것이다. 한편 우리들은 어떠한가? 만일 행사장에 왠지 거북스러운 사람이 오면, 지레 겁먹고 배척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 스스로도 부처님 오신날의 의미를 제대 로새기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요즘은 예전과는 달라, 몇몇 사찰은 이웃을 위한 등을 달기도 하고, 나름대로 의미 있는 일을 하거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되새기며 하루를 보내는 불자들도 있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불자들은 개개인의 복덕을 크게 비는 뜻깊은 날로, 대부분의 사찰은 형식 적 의례의 날로 하루를 보내는 경우에 비하면 참으로 미비하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기복신앙이라는 토대위에서 성장해 왔다 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기복신앙은 가장 수준이 낮지만 가 장 뿌리깊은 종교행위이다. 한때 우리 불교계에서도 기복불교를 극복하자는 논쟁이 뜨거웠던 적이 있었다. 엄밀한 의미에서 보 자면 탈 세속을 지향하는 불교의 근본취지와 기복신앙은 타협하 기 힘들만큼 차이가 있어 보인다. ,
하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이. 단절되지 않고 이어져올 수 있었 던 것은 기복신앙의 형태로 제공되는 재화의 공급이 있었기 때 문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역사적인 아이러니가 동시에 공존하고있다. 그렇다면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복을 비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그 내용이다. 자기와 가족의 안녕과 세속적인 욕망의 성취만을 간절히 기도하면서 불보살님들의 가피를 갈구할 것인가? 아니면 그 범위를 좀더 넓혀서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공간의 다른 생명들에게도 관심과 배려를 보낼 것인가?
다른 생명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의 방식은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서 정말 다양한 형태로 실천될 수 있기 때문에 여기서 그 방식을 나열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겠지만 예를 들어, 초파일날 기도만이라도 나와 이웃과 뭇 생명, 모두가 평화의 길을 깨닫고 실천할 수 있는 그래서, 함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그런 길을 가리라 하고 서원해 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김선 미 /인드라망생명 공동체 총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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