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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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58호 발행인 우승 발간일 2004-08-02 신문면수 3면 카테고리 이달의 설법문안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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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5-15 10:01 조회 2,124회본문
달마대사나 부처님도 수행을 통해 가능하였고 모든 깨달은 분들이 수행하지 않고 증득한 이가 없었다 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바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본성은 부처와 다르지 않지만 현재는 본성이 가리워져 있으므로 수행을 통해 본성이 드러날 수 있도록 해 야 하는 것이다. 그럼 범부를 부처로 만드는 비법은 무엇인가?
①밖에서 안으로
우리는 흔히 우리의 몸과 마음이 ‘나’라거나 ‘내 것’이라고 생각한 다. 그러나 내 몸과 마음은 내 마 음대로 되지 않는다. 더군다나 세 상일이야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 세상일 이야 내 맘대로 되는 일이 어디 있는 가. 먼저 그 동안 밖 으로만 내달리던 모 든 관심을 안으로 돌리는 것이 필요하다. 바깥의 대 상을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만져보고, 생각하는 가운데 좋다, 싫다, 그저 그렇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그리고는 좋은 것은 붙들려고 하고, 싫은 것은 거부하며, 그저 그런 것에 대해서는 무관심해진다. 여기에서 모든 법뇌와 집착과 무지는 시작된다. 모든 것은 이렇게 지각된 바탕 위에 감정과 생각과 논리와 판단이 따라 붙는다. 이렇게 만든 하나하나의 이미지들로 이 세계는 이루어져 있다. 그러니 그 세계는 당연히 나의 번뇌에 의 해 세워진 환상이며 물거품 같은 것이다. 따라서 이거다 저거다 정해놓고 쫓아가는 삶은 신가루를 쫓는 것과 같이 끊임없는 갈증만 증가시킬 뿐 영원한 휴식과 편안함은 주지 못한다.
외부의 어떤 것에 얽매어 붙들고, 거부하고, 외면했던 삶을 안으로 돌려 붙들려고 하는 마음을 놓고 거부하려는 마음을 쉬고, 외면하는 마음을 알아차림으로써 그것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고 깨어있을 수 있다. 외부로 향하던 관심을 안으로 돌려 안에서 일어나는 느낌이나 생각 등의 지어감을 알아차리고 깨어 있음으로써 이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수행의 첫 번째 원리이다.
②있는 그대로 보기
이렇게 해서 마음이 쉬고 편안해 지면 사물을 대할 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우리는 매일 물을 마신다. 그러나 과연 물맛을 제대로 느끼면서 마시는가 아니면 그냥 마 시는가 물을 마실 때 있는 그대로 그 맛을 느껴보라. 소리가 들리면 그것이 욕하는 소리이건, 칭찬하는 소리이건 그냥 소리 그자체로 들어라. 그리고 말하는 사람의 마음을 느껴 보아라. 그리고 그 사람의 마 음을 그대로 받아 주어라. 만약 남이 욕하면 분별하는 순간 듣기 싫은 마음이 솟아 오른다. 그러니 판단분별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느껴 보아라. 있는 그대로 느끼는 것, 있 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직관의 힘을 키운다. 분별이란 사물이나 현상의 한 측면만을 보고 판단하기 쉽다. 반면 직관은 그것을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것을 말한다.
사람의 고통 가운데 많은 부분은 인간관계 속에서 생긴다. 또한 내 마음으로 그린 여러 가지 상때문에 스스로 벽을 쌓고 나와 남을 갈라놓는다.
이로 인해 서로가 서로를 소외시키며 서로 상처를 주고 받으니 수원이 끝이 없다. 이때 어떤 문제의 원인을 밖에서 찾지 않고 안으로 돌리며 부분적 경험으로 판단분별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 나와 너의 대립이 사라지고 모든 것이 하나의 조화로움임을 아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 세계 모든 것이 귀하지 않은 것이 없고 감사하지 않은 것이 없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③알아차림
수행의 또 다른 원리는 알아차림 이다. 현재 자신의 안과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아는 것이 다. 알아차림이 길어지면 그것이 일어남과 유지됨과 사라짐을 그대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집착으로부 터 벗어나게 된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진실로 깨어 있어야 한다.
깨어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는 것 이다. 이는 들뜬 의식으로 대충 아는 것이 아니라 고요속에서 여실히아는 것이다. 우리는 한 순간도 숨을 쉬지 않고는 살 수 없다. 그런데 이 숨쉬기에 얼마나 깨어있는 가. 숨쉬고 안고 서고 걷고 말하고.. 듣고 생각하고 밥 먹고 자고 일하는 일상생활 속에서 '몸 가는데 마음 가도록 하여야 한다. 따라서 부 처님의 마지막 설법 중에 알아차림을 잃지 말라고 하셨다.
④지금 여기
‘알아차림’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지금 여기에 있음’이다. 과거는 이미 지나가버렸고 미래는 오지 않았다. 오직 현재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현재라고 하는 것도 한 순간도 머무르는 바가 없으니 오직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해야 한다. 그 리고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마음 을모음으로써 언제나 깨어있을 수 있다. 상념과 온갖 환상에 속지않고 진실과 만날수 있는 유일한 길은 지금 여기에 있부것이다.
⑤일심으로
어떤 일이든 으냥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수행도 마찬가지이다. 수행의 과를 증득하는 해법은 열심히 하는데 있다. 그것은 일심이 됐음을 의미한다.
일심으로 해서 안되는 일이 없다. 기도가 이루어지고 아미타불을 친견하고 화두를 타파하는 모든 것이 모두 일심이 되었느냐 아니냐에 달려있다. 일심이란 마음이 안정되고 고요하며 어떤 하나에 집중되어 다른 생각이 없음을 말한다. 즉 염불 이면 염불, 진언이면 진언, 화두면 화두에 일념이 되었다는 것은 그것과 하나가 되어 그것 자체가 되어 버릴때 무지가 자리를 비껴나고 그것과 하나가 되어 그것 자체가 되어버릴 때 무지가 자리를 비껴나고 본성광명이 드러나는 것이다.
⑥계· 정· 혜의 통일
계정혜 삼학은 불교수행자들이 갖추어야 할 수행의 세가지 측면이 다. 먼저 계는 해야할 일과 하지 말 아야 할 일을 분별하여 수행자들이 마음에 안정을 유지하며 생활할 수 있는 지침이다. 일상생활에서 마음 이 안정되면 선정을 통해 더욱 마음을 고요히 하고 맑게 한다. 그리 고 고요에 만족하지 않고 더욱 정진하면 자연스럽게 지혜가 드러난 다. 이렇게 계는 정의 바탕이 되고 정은 혜의 바탕이 된다. 그러나 이 것은 단선적으로 끝나지 않고 꼬리 를 물고 이어진다. 혜가 생기면 어떤 것은 해야 하고 어떤 것은 하지 말아야 할 지 스스 로 알게 된다. 또 정이 깊어지면 몸과 마음이 저절로 계를 지키게 된다. 또한 정과 혜는 통나무의 양끝과 같아서 어디 서부터 어디 까지라고 가르기도 힘들고 어느 한쪽만 취하기도 어렵다. 늘 함께 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옛 분들도 정혜쌍수라 하였다
모든 공덕에 항상 한 마음으로써 모든 방일을 버리기를 마치 원수인 도적을 여의듯해야 한다. 크게 자비로운 세존이 설하신 바의 이익은 모두 이미 극진한 것이니, 너희들은 오로지 부지런히 그것을 행하라. 혹 산간이나. 혹 비어 있는 습하고 풀이 무성한 곳이나, 혹은 나무 밑에 서나, 한가하고 고요한 방일지라도 받은 바의 법을 생각하여 잊어버리 거나 잃어버리지 않아야 하며, 항상 스스로 부지런히 정진하여 닦아야 한다. 한 일도 없이 헛되이 죽으면 뒤에 후회함이 있을 것이다. 나는 마치 훌륭한 의사와 같이 병을 알아 약을 베푸나니, 복용하고 복용하지 않는 것은 의사의 허물이 아니다. 또 나는 잘 인도하는 길잡이와 같아서 사람들을 좋은 길로 인도하는 것과 같다. 그것을 듣고 행하지 않는 것은 인도하는 사람의 허물이 아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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