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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세주의와 소극주의를 버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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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60호 발행인 우승 발간일 2004-10-01 신문면수 3면 카테고리 총지칼럼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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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김종인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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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5-15 18:41 조회 2,25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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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세주의와 소극주의를 버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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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고려대학교 BK21 연구교수
서울대학교 철학과에서 불교 연구로 철학 석사
스토니부룩 대학교 불교 연구로 철학 박사

한 때 서양학자들 가운데서 불교가 염세주의냐 아니냐 하는 논쟁이 있었습니다. 처음 불교를 접한 서양학자들 가운데는 무아설이나 공사상에 대해 도식적으로 또 극단적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이들이 불교는 염세주의 철학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서양사회에서 불교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이러한 생각은 이내 수그러들었습니다. 그래서 적어도 학계 에서는 불교가 염세주의 철학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사정이 다릅니다. 불교는 염세주의 철학이라는 말이 맞는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 사회의 많은 사 람들이 불교는 인생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불교인들 가운데서는 불교가 염세주의 철학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승려들 가운데서는 물론이고, 학자들도, 일반신도들도 그렇게 말하지 않 습니다. 하지만 한국 불교인들의 실제적 삶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승려들 가운데 는 매우 염세주의에 빠져 있는 사람으로 밖에 볼 수 없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마치 삶을 포기 한 사람들처럼 행동하는 승려들을 종종 목격하게 됩니다. 그들의 구체적 행동이 에더한가는 굳이 지면에 담을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한 가지 사레만 들고자 합니다.

몇 년 전에 세상을 뜬 중광이란 승려가 있었습니다. 그는 기행과 파격적인 그림으로 매스컴으로부터 천재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수시로 매스컴에 등장하게 된 그는 불교계 안팎으로 매우 유명한 인사가 되었습니다. 그가 죽었을 때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그를 주모하며' 성대한 다비식을 올렸습니다. 사회적으로 유명한 인사가 드문 불교계에서는 마치 큰 인재를 잃은 듯 하였습니다.

직접 만난적도 없고, 구체적으로 자세히 연구한 적도 없는 사람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닐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불교 승려들 가운데서 종종 발견되는 모든 종류의 허무주의적 행동을 다 보여준 것에 불과 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허무적 광태로 일생을 마감하고만 사람을 천재적 승려로 이해한 우리 사회의 불교 인식수준은 참담하기 짝이 없습니다. 상업적 효과를 노려 그의 그러한 행동을 예술적 천재의 기행으로 포장하여 유명인사로 만든 매스컴에 대해서 무어라 말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매스컴이란 원래 그런 것이니까요. 하지만 사회적으로 유명해졌다는 이유로 그를 불교를 빛낸 사람처럼 여긴 일부 불교계 인사들의 태도 한심하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불교를 염세주의로 이해하는 것이나 일부 승려들의 염세주의적 행태는 하루속히 극복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불교인들이 극복해야 할 사고방 식에는 염세주의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염세주의처럼 심각하지는 않지만 훨씬 더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또 다른 종류 의 부정적인 사고방식이 있습니다. 바로 소극적인 사고방식입니다. 불교인들 가 운데는 매우 소극적인 자세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불교 교단 역시 매사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분명 범교단 차원에서 대응할 사회적 문제인데도 불구하고 때맞 추어 제대로 대응을 하지 않고 흐지부지 넘어가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오래 전부터 카톨리 교회에서 차량에 “내탓이오” 하는 스티커를 붙이고 다니는 운동을 하고 있는데 불교 신도들은 그런 운동 없이도 모든 것을 내 탓으로 여기는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불교를 믿는 사람들 가운데는 힘겨운 일이 닥치 면 그것을 자신의 업보 탓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자신을 구박해도 업보 탓이요, 자식이 망나니가 되어 속을 썩여도 업보 탓이라 고 여깁니다. 모든 것을 자기 탓으로 돌 린다는 점에서 매우 양심 바른 태도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부정부패로 구속된 정치인들이 감옥에서 진심으로 반성하면 서 “이 모든 것이 내 탓이요” 하면 그는 양심을 되찾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 습니다. 접촉 사고를 낸 두 차량의 운전 자들이 서로 “내 탓이오” 한다면 우리 사회의 양심이 살아날 것입니다. 그러나 불교인들이 말하는 “내 업보 탓이요” 하는 것은 양심의 회복과 무관합니다.

10.29 법난이라 하면 그것이 무슨 사 건인지 불교인들은 다 압니다. 그래도 사회 일반에서는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 사건에 대한 불교인들의 소극적 대응 때문입니다. 10.29 법난이란 80년에 쿠테 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정권이 사회정 화를 명분으로 사찰에 난입하여 승려들 을 마구 구타하고 끌고 간 일을 말합니다. 그들 중 일부는 정화교육까지 받았 습니다. 정화 교육은 교육이 아니라 강 압적 방법으로 사람을 짐승 길들이듯이 길들이는 훈련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화교육 과정애서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병신이 되었습니다. 일부 승려들도 병신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데 불교계가 이러한 법난을 받게 된 연유에 대해 상당수 승려들이 “우리 탓이오” 하였습니다. 각종 비행을 저지른 불교계의 업보라는 것입니다. 말 많고 사건 많은 불교계에 비리가 없었을 리가 없습니다. 당시 불교 계는 분명 정화네어야 했으며, 오늘날에도 청화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때도 그 렇고 지금도 그렇고 무고한 시민을 해치는 살인 집단에 의해 불교계가 정화되어야 할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정화가 아니라 침탈이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스스로가 침탈당하고도 내 탓 이오 하는 것은 결코 자기반성이 아닙니다. 내탓이오 하는 것은 주인된 자가 할 때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야 의미 있는 자기반성이 됩니다. 그런데 불교계 일각에서 10.29 법난에 대해 “우리 탓이오” 한 것은 오랜 동안 노예적으로 길들어진 탓입니다. 만약 어떤 이유에서든지 명동 성당에 경찰이 난입했다면 이것을 “우리 탓이오”할 가톨릭 인은 아무도 없을 것 입니다. 그들은 차량에 “내 탓이오” 하는 스티커를 붙이고 다니지만 그렇게 말하 지는 않을 것입니다.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하고 들고 일어날 것입니다. 그것 을 알기 때문에 지난 20년 동안 명동 성당에서 수없이 많은 농성이 있었지만 경찰이 감히 쳐들어가지 못한 것입니다.

노예는 주인이 매들 들면 무조건 잘못 했다고 합니다. 단지 매를 적게 맞으려 는 생각에서 그러는’것이 아닙니다. 자신은 항상 못나고 어리석은 존재라는 생 각을 늘 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 면 그것은 “현명한 주인 탓”이 아니라 “어리석은 내 탓”이라 여기게 되는 것입 니다.

한국 불교의 승려들은 조선 시대 내내 천민으로 살아 왔습니다. 그 결과 주인 의식을 잃어버렸습니다. 조선조 말에 승려들의 사회적 신분이 회복되고 한 세기 가 지났지만 여전히 주인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적극적인 자기주장을 할 줄 모르는 것입니다. 아 닌 밤중에 홍두깨를 맞고도 “내 탓이오” 하는 것입니다.

여태껏 한국 사회에서 불교계가 주도적으로 무엇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근대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두 가지 성과라 고 할 수 있는 경제발전과 사회민주화 그 어느 영역에서도 불교계는 주도적인 혹은 적극적인 역할을 해 보지 못 했습 니다. 최근에는 환경 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여기서도 불교계의 역할은 돋보이지 않습니다. 일부 스님들의 활동이 있기는 하나 극히 개인적으로 보입니다.

우리들이 추구하는 것은 정신적 깨달 음이지 이러한 사회운동이 아니라고 하는 불교인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도 옳은 말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논리가 노예적 수동성과 소극성을 합리화하기 위한 것은 아닌지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도를 깨친 부처님이 되기 이전에 주체적 인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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