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총지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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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총지종은 ‘불교의 생활화, 생활의 불교화’를 표방하고 자리이타의 대승불교 정신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생활불교 종단입니다.

우리 사원 우리 스승님(부산 덕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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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59호 발행인 우승 발간일 2004-09-01 신문면수 12면 카테고리 사원탐방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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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5-15 17:55 조회 2,27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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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원 우리 스승님(부산 덕화사)
따뜻한 정이 솔솔 솟아나는 부처님의 자비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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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그립고, 찾아 가고픈 도량,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발걸음이 옮겨지는 곳, 비오는 날 하루의 일과를 정리하고 늦은 밤에 찾아가도 반가이 맞아주는 다정다감한 도량, 어 머니의 따뜻한 품안처럼 포근한 분위기로 자비행을 실천하는 보살들이 수행하는 곳, 바로 이곳이 부처님의 천국이요, 극락정토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들 정도로 청정한 수행도량 덕화사를 찾아가본다.



덕화사의연혁

덕화사는 총기11년(1982년)부산시 덕천동에 주택을 매입하여 불단을 개설하고 헌공불사를 봉행하여 덕화사로 명명하였다. 그 후 총기14년(1985년) 대지 130평을 매입하였으며, 총기15년(1986년)전 부지와 합필하여 300여평의 부지를 마련하였다.

총기33년(2004년) 8월에는 신축공사 설계가 마무리 되었으며, 9월 말경 3층의 웅장한 건물로 새롭게 태어날 지진불사를 봉행한 후 부산지역 최고의 밀법도량으로 도약할 준비를 하고 있다.

덕화사 초대주교에는 하정정사와 시각화 전수가 그 후 인법계 전수, 원송 정사, 인덕심 전수가 교화하셨으며, 현재에는 총기25년(1996년)부터 대원 정사와 정인화 전수가 주교로 부임하여 중생제도를 위해 용맹정진하고 있다.


평등심은 불법의 핵심

평등심,이것은 불법의 핵심입니다. 평 등심을 이루면 불법을 증득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수행자는 언제나 평등심을 유지하며 살아야 합니다. 대중들과 함께 있을 때 뿐만이 아니라, 어디에 서든지 마음을 평등하게 가져야 합니다.

자경문을 보면 “만약 가깝고 멀리하는 것이 있 다면 마음이 평등하지 못하는 것이요. 만약 마음 가운데 미움도 사랑도 없고 취하고 버릴 것도 없다면 어찌 이 몸에 괴로움과 즐거움, 성하고 쇠함 이 있으리. 평등성중에는 이것과 저것이 없고 대원경위에는 가깝고 먼 것이 끊어 졌느니라. 삼악도의 고해에서 출몰함은 미움과 사랑에 얽혀 있기 때문이니라. 마음이 평등한 데에 계합하면 취하고 버릴 것이 본래 없나니, 만약 취하고 버릴 것이 없다면 생사가 어디 있겠는가?”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러한 평등심이 존재하는 불법의 세계로 들어 가는 문은 공문이며, 공문을 통과해야만 해탈도를 이룰 수 있습니다. 텅빈 공문 그 문은 텅 비어 있기 때문에 평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텅 비어 있는데 귀하고 천한 것이 어디 있겠으며 잘나고 못난 것, 옳고 그른 것, 생과사가 어디 있겠습 니까? 텅 빈 그곳에는 마음도 중생도 부처도 따로 없습니다. 우리가 만약 부처와 중생과 마음을 서로 다른 것으로 보고 있다면 아직 공한 상태에 이르지 못하였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부처님의 깨달음을 우리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고합니다,한문으로 번역하면 무상정등정각입니다. ‘그 이상 평등할 수 없는 바른 깨달음’이라는 뜻입니다. 태양이 모든 곳을 두루 비추듯이, 공기가 온 세상에 고루 퍼져 있듯 이 부처님의 깨달음은 치우침이 없습니다. 여기에서는 차별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완전한 평등만이 존재합니다. 이렇듯 완전한 평등을 이루어야 부처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어떤 가르침보다 평등을 중요시하셨습니다.

우리는 부처님의 제자입니다. 부처님의 이러한 평등사상을 마음 깊이 새겨서 평등한 마음을 회복 해 가져야 합니다. 이 평등한 마음을 회복해 가질 때 걸림없는 해탈의 삶은 전개되는 것입니다.



말을 많이 하지말고 몸을 가벼이 움직이지 말라

"말을 많이 하지 말고 몸을 가벼이 움직이지 말라”는 경구가 있습니다. 그것은 신.구.의 삼업과 관련이 있습니다. 몸과 입과 뜻으로 짓는 삼업 중 말은 생각과 행동 사이에 놓여 있습니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무수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이생각, 저생각, 전혀 하지 않아도 되는 번뇌망상들까지 끊임없이 일으키며 살아 갑니다. 수많은 생각들 중 대부분은 그냥 사라지지만, 일부는 말이라는 자기표현의 수단으로 표출됩니다. 그 표출된 말이 뜻하지 않게 비화되는 경우를 우리를 종종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별 생각없이 한 말일지라도 일단 내뱉고 나면 그 말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합니다. 책임을 지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고 마음은 평정을 잃게 됩니다. 곰 곰히 자신을 한번 되 돌아 보십시오. 내가 얼마나 불필요한 생각과 말을 많이 하면 서 살고 있는가를 생각이 많고 말이 많으면 실속이 없어 집니다. 번뇌가 꼬리를 물고 일어나서 마 음이 고요해질 날이 없습니다. 마음이 고요하지 못한데 어떻게 도와계합할 수 있겠습니까?

승찬대사의〈신심명)을 보면 “말이 많고 생각이 많으면 굴러서 진리와 상응하지 못하고 말을 끊고 생각을 끊으면 통하지 않는 곳이 없느니라.”는 경구에서 보듯이 말이라는 것은 겉껍질에 불과합니 다. 말은 결코 알맹이가 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도를 구하는 사람은 아무리 좋은 말이라 할지라도 많이 해서는 안됩니다.

행동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가벼이 움직이지 말라.’ 고 하였는데 움직임이 무엇입니까? 변하는 것 입니다. 굴러서 변해가는 것입니다. 변하는 것. 그 것은 곧생사법입니다.

참되고 한결같은 마음자리를 볼 수 있는 진리법 이 아닙니다. 진리법은 동요하지 않는 마음자리를 찾고자 노력하고 몸을 정중히 가지며 선정을 이루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은 마치 밑이 동그란 항아리와 같습니다. 너무나 동그랗기 때문에 바람만 불어도 항아리는 움직입니다. 일렁일렁, 일렁일렁 대부분의 시간 동안 항아리는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항아리 속에는 구정물이 들어 있습니다. 번뇌망상이라는 구정물을 가라앉히기 위해서는 항아리가 움직이지 않아야 할텐데. 끊임없이 움직이니 구정물 찌꺼기가 언제나 부옇게 떠다닐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항아리, 바로 우리의 몸을 정진수행이라는 밧줄로 꽁꽁 묶어서 움직이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움직이지 않는 정력을 성취하면 찌꺼기는 저절 로 가라앉고 위쪽에는 맑은 물만 남게 됩니다. 이 맑은 물에는 모든 것이 그대로 비치게 되는 것이며, 이것이 지혜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수행자는 계 ·  정·  혜삼학을 이루고 해탈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해탈을 이루고자 하 는 이는 몸을 정중히 가지고 말을 적게 하여 울렁거리는 항아리, 동요하는 몸과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간섭하고, 쓸데없는 일에 개입하여 망상을 피운다면 계 ·  정·  혜삼학은 언제 나의 것이 되겠습니까?

'실상이언 진리비동(참된 바탕은 말을 여의었고 참된 이치는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이라는 말처럼 항상 마음자리를 찾고 진리를 구하는 수행자라면 언제나 말과 행동을 절제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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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덕화사 대원 정사, 전인화 전수

 ▶정사, 전수님께서는 총지종의 진리속에서 수행자로서 생활하시다가 교역자로서 중생제 도를 위해 불철주야로 수행정진하시고 계십니다. 총지종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가 있으시다 면 말씀해주십시오.

제가 총지종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부 처님과 인연에 의해 우연한 기회에 전수님과 함께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저희 집안은 엄격한 유교사상이 지배하고 있었지만 부모님들은 불교와 인연이 있어서 절에 다니셨습니다. 저도 또한 학교 다닐 때 절에서 10개월 동안 공부하면서 불교에 대한 교리공부와 선승들과 선문답을 하며 생활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인연에 의해 지금 교화의 길을 걷고 있지 않나 생각 해봅니다.

 

▶ 정사, 전수님께서는 교화방법과 수행철학이 확고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교도들이 덕화사로 모여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수행하시면서 가지고 계시는 수행 철학을 간략하게 말씀해주십시오.

불교는 삶의 길을 인도하며, 어떻게 사고하고, 산유하며 바른 생활을 가르쳐 주는 방편을 가르쳐 줍니다. 사고란 습관적인 수단으로 해결할 수 없는 사태해결의 수단을 찾는 정신적 작용이며, 사유는 경험사실을 비 교하여 관계를 정하고 미경험 부분에 미치는 정신적 작용을 말합니다.

불교는 자력신앙입니다. 저금통장에 돈은 저금하지 않고 통장에서 돈을 인출할 수 없이 자기자신이 선업을 짓고, 바른 인을 심을 때 공덕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또한 남이 나에게 무엇인가를 해주기를 바라지 말고, 내가 남에게 무엇인가를 해줄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는 것입니다. 요즈음 불교를 보면 너무 기복적인 경향이 많은 것 같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구걸보다는 평등심을 가지고, 청 정한 마음으로 탐.진.치 삼독을 없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께 ‘무엇을 해주십시오’라고 빌기보다는 먼저 자기수행이 앞서야 합니다. 자기의 마음속에는 욕심만 가득 차서 부처님께 빌면 절대 소원이 성취되지 않습니다. 항상 자기를 버리고 공한 마음으 로 수행정진할 때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것 입니다.

교화는 남을 교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교화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를 교화시키지 않고 어떻게 남을 교화시킬 수 있겠습니까? 항상 웃는 얼굴과 남을 배려하 는 마음, 부처님의 진리를 실천하는 행을 하  교화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흑 아니면 백이라는 극단적인 판단은 버리고 중도의 사고를 가지며 모든 사람들이 수행자 라는 마음가짐으로 신행생활을 할 때 남도 교화할 수 있습니다.

 

▶저희종단은 재가종단으로써 모든 사원들 이 도심속에 위치하고, 스승들은 세속에서 가정을 유지하며 생활하고 있는 생활불교를 기치로 내걸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불 교라 지칭하면 출가승과 불상, 목탁을 연상하 게 되어 처음 총지종에 입교한 사람들은 의구심을 가지게 됩니다. 이러한 일반 시민들에게 총지종을 포교할 수 있는 방안이 있으시다면 말씀해주십시오

물론 총지종 스승님들이 교화하시는데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러나 포교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나 자신감과 긍지를 가지고 교화를 하느나에 달려 있습니다. 그 러한 자신감을 가지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교리공부와 수행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부처님의 은혜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은 항상 공부를 해야 합니다. 현대의 삭막한 현실속에서 교도들이 잠시나마 정신적인 위안을 받고, 행복을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은 법당밖에 없습니다. 이들에게 부처님의 정법을 가르쳐 주고 행복과 가정 해탈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 스승의 사명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항상 부처님의 정법을 알리기 위해서는 꾸준히 공부를 하고, 언행이 일치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스승의 최우선 목적은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한명의 중생을 제도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정사님, 전수님께서는 많은 중생들을 교화하여 해탈의 길로 인도 하셨습니다. 이렇게 중생을제도하는 방편에 남다른 방편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간략하게 설명해주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을 보면 겉과 속이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겉으로는 남에게 아부하고,아첨하지만 속으로는 “언젠가는 너를 넘어뜨릴 때 가 있겠지”하는 사악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남이 볼 때는 인자한 척 열심히 일한 척 하지만 남이 보지 않으면 열심히 일 하지 않고 나태한 행동을 하는 속과 겉이 다른 행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희들은 교화하면서 있는 그대로를 보살 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나도 허물이 있을 수 있고, 나도 잘못 판단 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나의 모든 것을 남에게 보여줄 때 남이 나를 신뢰하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내가 남보다 잘났고 위에 있다.’라는 아상 을 버리고 보살들과 똑같은 인간으로 남에게 마음과 행동이 일치된 생활을 하고, 가식없는 생활을 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 사원에서 중생들을 교화하시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교화하시면서 어려운 일이 많았으리라 생각합니다. 그중에서 가장 어렵고 힘든 일이 있으시다면 말씀해주 십시오

저희 종단은 불단과 수행방법에 있어 현교 와 다르기 때문에 보살들이 친구를 절에 데리고 와서 그 다음날 보살이 하는 말 “혹시 사이비 종교가 아닌가?”하고 말하며 “두 번 다시 절에 가기 싫다.”라고 말했을 때 가장 힘들었습니다.

물론 총지종에서 오랫동안 수행한 사람들은 불상과 불단에 상관없이 용맹정진하여 가정해탈을 이룩한 사람들도 많지만 처음 오는 사람은 첫 느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기 때문에 우리 절에 대해 생소하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유 덕화사는 총지종에서 타 사원과 비교하여 교화가 활성화된 사원으로 많은 보살님들 이 수행정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덕화사가 교화가 활성화 될 수 있었던 것은 덕화사만의 남모르는 비결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비결을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최근에 교도들의 수가 배로 증가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것은 이곳에서 교화하셨던 전임 스승님들께서 보살들에게 정법을 가르치고 올바른 수행법을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무엇보다도 교도들께서 돈독한 신앙심과 교도들간에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자비 정신과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한 분도 빠지  않고 도와주는 협동심과 상부상조로 생활 하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 마지막으로 총지종 교도 및 덕화사 교도 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으시면 말씀해주십시오. 

모든 보살님들이 부처님의 참 진리와 깨 달음의 이치를 바로 알아 탐.진.치 삼독을 버리고 가식없는 바른생활로 해탈을 이루시길 기원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덕화사 교도들에게는 항상 서로의 아픔을 감싸 안으며 가족같은 분위기로 자비행을 실천하고 인욕하며 용맹정진하여 주심에 감사하는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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