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속의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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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60호 발행인 우승 발간일 2004-10-01 신문면수 7면 카테고리 -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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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5-15 19:26 조회 2,129회본문
Buddhism across the Himalayas (히말리야 지역의 불교)
인터넷을 통해 세계속의 불교가 어떻게 성장, 발전하고 있는가를 알아본다〈편집자 주〉
코탄과 같은 중앙아시아 있는 다른 지역들이 기원전에 불교의 영향을 받았지만 티벳과 몽고는 몇 세기 후에도 불교의 영향을 받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두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는 티벳과 몽고는 인도와 중국 상인과 순례자들이 여행하는 주요한 여정항로이었고, 둘째는 유목민과 호전적인 성향인 티벳과 몽고인은 불교의 진리와 높은 수준의 문화에 무관심했기 때문이다.
티벳의 불교소개
그러나 7세기에 많은 부족단위로 분리되었던 티벳트인들은 스롱츠산감포에 의해 거대한 통일 국가를 이루었다. 티벳트를 통일로 이끈 그는 아시아지역에셔 새로운 세력으로 등장하였고 중국과 네팔의 공주와 결혼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
중국와 네팔의 공주는 오래전부터 불교신자였 며, 불교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스롱츠산감포는 대표단을 중국과 인도에 보내 불교를 연구하고 불교서적을 가져오게 했다. 이러한 대표단은 왕의 신앙심과 불교국가 를 만드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불교서 적을 티벳트어로 번역하였으며, 시민들이 불교수행을 하도록 격려하였고, 티벳트에 많은 사원을 신축하도록 하였다. 그는 티베트에서 최초의 불교 후원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의 통치기간동안 에 티벳트 승려는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티벳트인들은 불교를 외국 종교로 간주하게 되었다
티벳에서의 인도불교의 영향과 성장
8세기에 통치자들중의 한사람은 스롱츠산감포의 업적을 받들어 불교의 교리를 발전시켰다. 그는 유명한 불교학자인 산타락시타를 티벳트에 초 대하였다. 산타락시타는 인도에 있는 나란다 종 교대학의 수도원장이었다. ’그는 티벳트의 수도 라사를 여행하였고 몇 개월동안 불교의 교리를 가르쳤다.
그러나 티벳트 궁전에는 불교를 반대하는 권력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그들은 왕에게 산타 락시타를 추방하도록 압력을 행사하였다. 왕은 산타락시타와 그 문제점을 논의하고 잠시동안 네팔에 머물도록 하였다. 산타락시타는 왕에게 유 명한 명상가인 패드마삼하바를 인도에서 초청하도록 권유하였다. 티벳트의 왕에 의해 초청받아 티벳트에서 활동한 패드마삼하바는 불교를 반대 한 인물들을 교화시켜 산타락시타는 다시 티벳트로 돌아왔다.
패드마삼하바와 산타락시 타는 티벳트에 대승불 교와 밀교의 교리를 정착시키는데 도움을 주었고, 그들은 그 당시에 인도에서 가장 유명한 불교학자이며 명상가로 명성아 대단하였다.
또한 티벳트인들에게 지대한 영향력을 주어 패드마삼하바는 오랫동안 티베트에 머물지 않았지 만 티벳트인들은 그가 아니었으면 티벳트에 불교를 전파하지 못했을지 모른다고 생각할 정도로 신성한 성인으로 추앙하였다. 산타락시타는 티벳 트에서 불교를 가르치며 죽음을 맞이하였다.
두 성인이 불교를 전파하는 동안 많은 사원이 건축되었으며 처음으로 티벳트인들중에서 스님이 탄생되었다. 티베트 스님들은 튀어난 명상적인 힘을 발휘하였다. 그 후 50년 동안 많은 불교 서 적들이 번역되었으며, 초기의 번역본들에 대한 대대적인 수정작업이 이루어졌다.
불교서적을 번역할 항목들이 항상 준비되었으 며 인도와 티벳트 승려들은 공동으로 이러한 작업들을 완성하였다. 지금까지 인도는 티벳트인들 에게 불교문화의 성지순례지가 되고 있다.
인도로부터 불교의 후기 전파
9세기에 티벳트에서는 불교에 압박이 있었다. 많은 티벳트인들은 인도로부터 전래된 불교의 불교교리의 순수성이 상실되어 가고 있다고 느꼈다. 이러한 현상을 수정하기 위해 많은 티벳트인들은 불교를 공부하기 위해 다시 인도를 방문하고 인도의 학자들을 초청하였다.
11세기에는 티벳트와 인도사이에 관계를 증진 시켰고, 불교활동을 활성화시켰다. 티벳트에서 불교의 부활에 공헌한 많은 사람들 중에서 인도 학자인 아티사와 위대한 티벳트 명상가이며 시인인 밀라레파는 그 유명세가 대단하다. 아티사는 인도에서 왔으며, 인도 종교대학의 수도원장이 되기전에는 남동아시아의 유명한 불교센터 중의 하나인 스빌자야에서 10년동 안 보냈다. 그는 11세기 후반에 티벳트에 왔고, 그후 13년동안 생활 하다가 티벳트에서 죽음을 맞이하 였다. 또한 티벳트 불교발전에 위대한 공헌을 하였고, 그의 불교 교리의 많은 부분은 티벳트에서 다양한 불교전통을 확립하였다.
11세기에 살았으며 풍족한 가족배경을 가진 밀라레파는 인도에서 유학하고 돌아 온 유명한. 번역가인 선생님을 모시고 열심히 공부하였다
그는 곧 모든 사물의 현상을 통찰하는 신비한 힘을 가지는 위대한 명상가로 인정받게 되었으며, 명상적인 경험을 놀라운 아름다움과 심오한 지혜를 내포하고 있는 음악으로 현상화시켰다.
그후 몇 세기동안 많은 인도의 유명한 성인들 이 티벳트를 방문하고, 많은 티벳트인들은 인도에 있는 불교교리를 공부하기 위해 힘든 히말리야 산맥을 넘어 여행하였다.
그들은 인도의 불교철학뿐만 아니라 음악, 의학, 논리학, 예술 등을 가지고 돌아왔다. 짧은 기간이지만 티벳트 사회는 원초적인 국가에서 배움과 지혜의 나라로 변화되었다.
인도에 있는 불교문학의 모든 서적들은 티벳트어로 번역되었고 수많은 수도원이 건축되었고 티 벳불교에 대한 많은 서적들이 출판되었다. 13세기 불교가 인도에서는 쇠퇴하고 있는 동안 티벳트는 불교를 보존할 뿐만 아니라 이웃 나라에 불교를 전파하였다.
티벳트 불교의 후기 발전
14세기에 티벳트 북동에서 태어나고, 사원의 행자교육체계를 세우고, 많은 서적을 편찬한 것으로 유명한 쫑카파는 위대한 스님이었다.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은 많았으며, 그가 죽은 후에도 몇 년 동안에 교세가 확장되어 그 교단은 티벳트에서 점차적으로 큰 교세로써 위상을 확립 하였다.
14세기 이후 티벳트에서 불교는 계속적으로 성 장하여 현재까지 성장하고 있다. 학식이 풍부한 학자들이 경전을 가르치고 비평서를 출간하고 불교에 대한 근본교리에 대한 서적을 집필하였다. 스님들과 그들의 추종자들은 쉬지않고 신비한 명상의 체험을 달성하였다.
20세기 중반에 티벳트는 중국의 통치권에 편입 되어 불교는 압박을 받아 많은 티벳트인들은 인도와 서양으로 이동하여 불교를 보존하고 있다. 세계 도처에 있는 티벳트 피난민들은 티벳트 불교를 전파하였다. 오늘날 세계도처에는 불교의 교리를 가르치는 티벳불교 센터가 존재하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의 종교완화 정책에 의해 티벳트에서는 불교의 활동이 허락되어 부활을 도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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