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묘법대로 닦으면 대도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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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63호 발행인 우승 발간일 2005-01-01 신문면수 8면 카테고리 이달의 설법문안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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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5-17 17:34 조회 2,101회본문
애석하게도 부처님 가신 후의 말세에 태어난 우리들이지만 우리에게는 아직 희망이 있습니다. 바로 부처님께서 남기신 묘법이 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이 일러주신 묘법대로 닦아 나아간다면 누구나 생사의 업 바다에서 벗어나 대도를 이룰 수 있습니다.
그 방법은 이렇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반성하라. 둘째는 애욕을 버려라, 셋째 티끌세상을 벗어나는 지름길을 밟아 번뇌가 없는 무루의 묘법을 배워라
그렇다면 무엇을 반성하라는 것인가? 우리는 마음자리를대 팽개친 채 돈과 명예와 색을 탐하며 살아왔습니다. 그와 같은 탐욕 때문에 몸과 말과 생각으로 지은 죄가 어찌 적다고 하겠습니까? 공 연히 드러누워 있다가 단지 싫다는 감정 때문에 그 어떤 사람이 죽었으면 하는 생각을 일으키기도 하고, 무심코 내뱉는 말 한마디로 상대방의 가슴 에 못을 박는 일도 있습니다. 이렇게 중생은 수많 은 죄업을 알게 모르게 지으며 한평생을 보내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이제까지 살아온 길을 돌아보고 지은바 죄업을 녹여 없애는 참회를 해야 합니다. 오직 스스로 지극한 마음으로 참회한다면 모든 업장은 구름 걷히듯 사라지게 됩니다. 이것이 반성입니다. 이렇게 반성한 다음, 티끌세상을 벗어나는 무루의 법을 배워야 합니다.
무루의 ‘루’는 번뇌를 뜻합니다. 밖으로 새어나간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하나로 모이 지 못하면 번뇌망상을 좇아 밖으로 새어나가게 되 고, 끊임없이 타락의 길로 흘러 내려가게 됩니다. 이것이 유루의 법이요 세속의 법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마음을 하나로 모아 삼매를 이루게 되면 저절로 무루가 되고 깨달음의 문이 열리 게 됩니다. 곧 모든-집착과 분별심, 아상으로 가득 찬 마음속의 번 뇌망상을 던져버 리고 해탈의 경 지에 이르러자 비를 베풀고 선정을 하여 보시 행을 실천하는 것이 무루의 묘 법인 것입니다.
무루의 묘법을 배운다면 용이 물을 얻음과 같고 범이 산에 있는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범은 산 에 있어아 마음대로 뛰어다니고 소리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용맹스런 호랑이라도 동물원의 철장 속에 갇혀 있으면 구경거리밖에 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막대기를 톡톡 때려도 으르렁 거리기만 하지 힘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호랑이가 있어야 할 곳은 역시 산인 것입니다. 또한 용도 물을 얻어야 마음대로 조화를 부릴 수 있습니다.
산에 있는 호랑이의 자재로움과 물을 얻은 용의 묘한 조화가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듯이, 무루의 묘법을 닦으면 가히 말로써 표현할 수 없는 미묘한 법과 수승한 이치를 이루게 됩니다. 어떤 것이 미묘하고 수승한 법인가? 하면 있으면서도 없고 없으면서도 있는 것. 이것이 묘한 법입니다.
이것을 바람에 비유해 보면. 바람은 안보이니까 어디에도 없는 듯합니다. 그러나 부채로 부치면 없 던 바람이 일어나 우리를 시원하게 만들어 줍니다.
눈에 보이지 않아 없는 듯한 바람이 어디에나 있어서, 불러일으키면 시원한 바람을 언제나 선사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자리도 이와 같습니다. 있다고 하자니 보이지가 않고, 없다고 하자니 이것이 작용하여 사람을 좋게도 만들고 나쁘게도 합니다. 얼마나 묘한 일입니까? 그래서 이 마음의 조화를 진공묘라는 단어로 표현합니 다. “참으로 공한 가운데 묘한게 있다.” 시작과 끝이 있는 세속의 법은 모두가 무상하고 허전한 뒷 맛을 남깁니다. 시작이 있는 것은 반드시 다함이 있습니다. 큰 굿 잔치를 할 때는 재미가 좋지만 다 보고 나면 허전해 집니다. 그러나 진공묘유의 법은 써도 써도 비어 있어서 허망하지 않습니다. 이 무루의 묘법은 결코 새어나가는 일이 없기 때 문에 언제나 든든하고 가득하고 원만합니다. 그렇 기 때문에 언제나 기쁨과 즐거움이 충만되어 있고, 그 것을 달리 선열락 이라 합니다. 선의 기쁨, 삼매의 즐거움, 그 수승하고 묘한 도리는 도저 히 말로써 표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선열락을 이룰 그때까지 좌절하지 않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진공묘유의 마음자리, 무루의 묘법을 증득해야 합니다. 결코 자신의 무능이나 환경을 탓하며 물러서서는 안됩니다.
경전에 “사람에게는 예와 지금이 있으나 법에는 멀고 가까움이 없으며, 사람에게는 어리석음과 지 혜로움이 있으나 도에는 성하고 쇠함이 없다. 비록 부처님 당시에 태어났다 할지라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다면 무슨 이익이 있으며, 아 무리 말세를 만났다 할지라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행한다면 무엇이 해로우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불후말세, 불전불후’를 핑계삼고 시대를 탓하는 것은 정법이 아닙니다. 사 람에게는 옛 사람과 지금 사람이 있지만 법에는 먼 법과 가까운 법이 없습니다. 사람중에는 어리석 은 이도 있고, 지혜로운 이도 있지만 부처님의 진 리는 성함과 쇠함이 따로 있을 수 없습니다. 고금 과 성쇠가 있다면 그것은 이미 진리가 아닙니다.
세상의 쾌락은 오래가지 않고 바른 법은 듣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중생은 부처님의 법을 들으려 하지 않고 무시하며, 현세의 이익과 안락만을 추구하고, 탐욕과 어리석음에 사로잡혀 모든 것을 세속법으로 판단하려 합니다. 이러한 분별심으로 가득찬 마음을 가진 채 정진은 하지 않은 채 성불 되지 않는다고 불평을 합니다. 어찌 시대와 흥망 성쇠를 핑계삼아 도닦기를 주저할 것입니까? 부 처님의 법과 인연이 주어진 이때 힘써 닦으면, 닦기 어려운 행이라도 닦아 익힌 힘이 있기 때문에 차츰 어렵지 않게 됩니다. 부처님을 비롯하여 옛날 도를 이룬 분들 중, 처음에 범부 아니었던 이가 어디 있습니까?
오직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행하면 좋은 날'은 반드시 돌아옵니다. 아니, 수행하는 그날 그날 이 모두 좋은 날입니다. 모든 것은 나에게 달려있 습니다. 부디 용기를 잃지 말고 정진합시다. 시대와 환경을 탓할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어둡고 밝음을 살펴서 적합한 수행법을 택하십시오. 그리 하여 마음자리를 밝혀갈 뿐, 비겁하거나 나약해져 서는 안됩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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