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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전통문화에 대한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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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61호 발행인 우승 발간일 2004-11-01 신문면수 3면 카테고리 총지칼럼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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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김종인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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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5-16 05:44 조회 1,53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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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전통문화에 대한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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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현 고려대학교 BK21 연구교수

서울대학교 철학과에서 불교 연구로 철학 석사

스토니부룩대학교 불교 연구로 철학 박사



여타 종교와 달리 초월적 진리의 깨달음을 통한 구원을 추구하는 불교는 방편을 매우 중시한다. 방편은 특히 대중의 구원을 추구하는 대승불교에서 특히 중시된다. 많은 대승 불교 교파들이 방편 을 통하지 않고서는 구원을 이룰수 없다고 본다.

불교 경전들은 다양한 방편들을 소개 하고 있는데, 이 방편이란 말과 불가분 의 관계에 있는 말이 있는데 바로 “근기”라는 말이다. 깨달음의 진리는 영원 한 것이지만 그 구체적 실현은 다양한 방편을 통해 이루어지며, 어떠한 방편이 구사되어야 하는가는 중생의 근기에 의해 결정된다.

근기란 오늘날의 용어로 말하자면 문화적 교양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대중 의 문화적 교양을 결정짓는 것은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문화적 환경이다.

중생의 근기에 맞게 설법한다는 것은 대중의 문화적 환경에 맞게 설법한다 는 것이다. 대중들이 속해 있는 문화적 환경을 올바로 이해하기 않고서는 불법을 올바르게 전달할 수 없다는 말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문화가 변하고 있는 곳이다. 지 금의 한국인들은 인류 역 사상의 그 어떤 사회 집단 보다도 빠른 문화적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불과 30 년 전만 해도 삼베 적삼에 짚신을 신고 함지박을 이고 간고등어를 사러 진흙벌 오일장엘 가는 것이 대다수의 우리 사회 아낙들의 모습이었건만, 이제는 관능적인 몸매를 드러내는 외출복을 입고 승용차를 몰고 백화점에 가서 밝은 조명이 비치는 화려한 대리석을 밟으며 구매를 즐 기는 것이 많은 여성들의 현실이자 꿈이 되었다.

30년 전만 해도 교사는 존경의 대상이요 권위의 소지자였지만, 이제는 그저 안정된 직장을 가진 노동자일 따름이다. 한국 사회는 물질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다.

그런데 이런 문화적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변치 않고 구래의 문화적 관습 에 안주하고 있는 곳이 바로 불교계이 다. 불교계가 사회의 문화적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일반론에 대해서는 누구나 아는 사실이며, 또 불교인들 가운데는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도 있으므로 새삼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문제는 많은 불교인들이 사회의 문화적 변화를 따라잡아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러기 위해서는 불교의 어떤 점들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을 모른다는 점이다. 불교인들이 이처럼 변화의 방향에 대해서 쉽게 갈피 를 못 잡는 데는 다양한 요인이 있을 것 이다. 선불교의 고립적인 산중생활, 현대 교육의 부재, 반불교적인 사고방식을 가 지고 있는 사회 지배 세력에 대한 피해 의식, 교단의 지도력 부재 등등이 모두 그 요인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대중 교화를 위한 수단으로서  방편과 관련하여 한 가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은 불교의 전통 문화에 대한 불교인들의 오해이다. 사회의 문 화는 급변하고 있으며, 불교는 새로운 문화적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데 불교와 관련된 전통 문화에 대한 오해로 불 교와 전통 문화를 동일시하는 불교인들의 사고방식이 그러한 적응을 방해하고 있다.

불교는 오랜 동안 이 땅의 전통 종교로서의 역할을 해오면서 자연스럽게 문화 전통과 하나가 되었다. 사찰에서 행해지는 각종 의례, 승려와 신도들의 의복, 사찰의 건물 양식, 음식에 이르기까지 기존의 문화 전통과 융합을 이루고 있지 않은 것이 없다. 그 결과 그러한 문화 양식들이 원래 불교 교리와 관련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불교와는 상관 없이 존재하는 문화 전통일 따름인데 불교 역시 이를 받아들인 것인지 구분이 잘 안되는 경우도 많다. 불교 교리 및 사상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고 민족 내부에 있어 온 문화적 현상들조차 불교적인 것 으로 오해되기도 한다.

불교가 민족의 전통 문화와 잘 조화를 이루어 온 것은 매우 다행한 일이며, 또 이러한 조화는 불교가 한반도에서 융성 할 수 있었던 핵심적인 한 요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러한 문화적 현상 가운데는 이제는 더 이상 사회의 일반적 문 화현상과 융합되기 어려운 것도 있다. 그런만치 당연히 고쳐져야 함에도 불구 하고 불교 고유의 것이라고 여겨 고치려고 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불교인들은 전통적으로 그래 왔다는 이유로 모든 경을 한자로 읽고 왼다. (반야심경)이든 (천수경)이든지 모두 한자로 읽고 왼다. 대부분의 신도들은 의미도 모른채 그것을 따라 왼다. 한글세대가 사회의 핵심 구성원이 된지가 오래 됐지만 사찰에서는 의례에 사용되는 모든 경을 한문경을 사용하고 있다. 기껏한다는 것이 한자 및에 한글음을 단 의례집을 나누어 주고 있는 실정이다.

또 모든 법당은 입식이 아니라 좌식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한국인들의 생활양식은 이제 모두 입식으로 되어 있다. 가정에서의 생활도 그렇고, 학교에서의 생활도 그렇고, 회사에서 의 생활도 그렇다. 다만 일부 가정에서만 안방에서만 양반다리를 하고 있을 뿐 이다.

그 외에는 어디에서도 사찰의 법당에서 처럼 양반다리를 하고 있는 곳이 없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양반다리를 해 보지 않은 젊은 사람들은 법당에 앉아 있는 것조차 고통스럽다. 다리의 고통 때문에라도 젊은 사람들은 사찰에서 이루어지는 불교 의례에 동참하기 힘든 것이다.

승려와 신도와의 관계 또한 현대사회 의 기본적인 인간관계인 인격적 평등의 법칙과 크게 다르다. 대통령과 국민, 회사 사장과 근로자, 나아가서는 교사와 학생들과의 관계조차 인격적 평등을 기초로 설정되고 있지만, 불교 승려와 신 도와의 관계는 인격적 불평등을 기초로 하고 있다.

많은 승려들이 신도들에게 삼배를 받 는 등 전근대적 허위의식을 가지고 신도들을 대하고 있다. 승려들이 신도들의 정신적 스승인 것은 분명하지만 인격적 지배자는 아니다.

그런데 불교와 결합되어 있는 이러한 전통적인 요소들을 사실은 불교 교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다만 우리의 문화의 전통적 요소일 뿐이다. 게다가 오늘날 사회 일반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불교계에만 남아 있는 문화적 요소일 뿐이다. 불교계 내부에는 이처럼 더 이상 사회 일반에서는 사라진 많은 문화적 요소들을 지니고 있다.

불교를 개혁하여 새로운 시대의 대중 들에게 전파하기 위한 방편을 찾기 위해서는 오늘날의 사회문화 현상에 대한 적확한 인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아무리 전통적으로 해오던 것들이라도 불교의 기본 교리와 관련이 없는 것들은 과감히 버리고 오늘날의 사회 일반의 문화 양식 에 맞는 문화들을 창출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곧 대승불교의 방편의 정신을 살리는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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