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불 혹은 다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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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63호 발행인 우승 발간일 2005-01-01 신문면수 8면 카테고리 총지칼럼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필자명 김종인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 리라이터 -페이지 정보
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5-17 17:31 조회 2,115회본문
현 고려대학교 BK21 연구교수
서울대학교 철학과에서 불교 연구로 철학 석사
스토니부룩대학교 불교 연구로 철학 박사
하지만 오늘날 널리 행해지고 있는 염불은 이와는 많이 다르다. 염불은 마음 속에 그리는 행위가 아니라 밀교에서 행 하는 다라니의 염송과 같이 소리로 표현 하는 행위이다. 이것은 밀교의 다라니 염송이 가지고 있는 종교 의례에서의 기능을 염불행위가 차용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어쨌거나 염불과 염송은 내면지 향의 명상의 행위가 아니라 외면지향의 동적이고 적극적인 행위이다. 개인적인 행위가 아니라 집단적인 행위이다.
결국 오늘날 행해지고 있는 염불 혹은 염송의 적극적인 의미를 살리는 것 역시 바로 염송의 이러한 기본적인 성질에 대 한 이해를 토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염불이나 염송을 통해서 의례참가자들이 동적이고 적극적인 집단적인 신앙표현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염불이나 염송이 이러한 역할을 할 수 있기 위해서는 염불이나 염송이 소극적인 웅얼거림이 되어서는 안 된다. 염불 이나 염송의 효능은 거기에 사용되는 명호나 다라니의 언어적 의미나 그 의미와 연결된 신비적 힘에 의해서 창출되는 것이 아니므로, 다라니나 명호를 하나의 말로서 무미건조하게 되풀이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단지 글을 읽듯이, 혹은 녹음기 되풀이하듯이 다라니나 명호를 외는 것은 결코 제대로 된 염불과 염송이 아니다. 그런 염불과 염송은 새 떼의 지저귐과 다를 것이 없다.
염불은 입과 혀끝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라 몸과 마음의 심층부로부터 나오는 울림이 되어야 한다. 염불은 우리 몸과 마음 깊숙이 숨어 있는 원초의 맑은 기운과 탁한 기운을 함께 끄집어 낼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하여 하나의 명호, 하나의 다라니를 욀 때마다 내 몸 과 마음속의 하나의 맑은 기운, 하나의 탁한 기운이 명호와 함께어 다라니와 함께 울려 밖으로 나오도록 해야 한다.
또 염불과 염송은 개인적인 행위가 아니라 집단적인 행위인 만큼 통일된 울림이어야 한다. 이 절에서 하는 염불 과 염송의 고저와 박자와 리듬이 절에서 하는 것과 다르고, 오늘 하는 염불 과 염송의 음이 내일 하는 염불과 염송 의 음과 달라서는 안된다. 그러기 위해 서는 언제 어디서나 같은 고저와 장단과 같은 소리를 낼 수 있도록 염불과 염송에 통일된 음악적 질서가 부여되어야 한다.
염불과 염송은 장엄한 불법의 표현이 어야 한다. 염불과 염송을 통해 울리어 나오기 전에는 우리들 각자의 몸과 마음속에 있던 선하고 악한 기운이었지만 그 것이 명호와 다라니와 함께 허공중에 울려 퍼질 때는 우주의 통일된 힘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선과 악, 나와 타자가 구분되지 않는 법신의 울림이 장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요즈음 도심의 많은 절에서는 법회중에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찬불가를 부르고 있다. 그런데 그 찬불가라는 것을 들어 보면 대게는 그 음과 가사가 법회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다. 그 기본적인 이유는 안타깝게도 찬불가가 기독교의 찬송가 모방에서 벗어나지 못 했기 때문이다. 다른 이의 장점으로부터 배우려고 하는 것은 분명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 좋은 태도이다.
그러나 다른 이의 것을 모방하기 전에 반드시 그것이 자신에게도 적합할 것인 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아쉽게도 도심의 절에서 도입하고 있는 찬불가는 이러한 반성을 생략한 채 이루어지고 있다. 전체 법회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찬불가를 부를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오랜 세월 속에서 불교 의례와 융합되어 온 염불과 염송의 적극적인 의미를 잘 살려서 이를 활용하면 찬불가를 부르는 것보다 백배 천배의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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