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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총지종은 ‘불교의 생활화, 생활의 불교화’를 표방하고 자리이타의 대승불교 정신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생활불교 종단입니다.

'종조 원정 대성사의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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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62호 발행인 우승 발간일 2004-12-01 신문면수 5면 카테고리 총지논단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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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5-16 08:09 조회 1,42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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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조 원정 대성사의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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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조 원정 성사께서는 이 땅에 다시 밀교를 꽃 피우게 하셨습니다. 해 방 이후 한국밀교의 중흥과 함께 초창기 진각종의 기틀을 다지셨고, 이후에는 의궤와 수법을 정립한 정통밀교종인 총지종을 창종 하셨습니다. 종조님의 숨결과 생전의 가르침을 유고를 통해 다시 만나 보시기 바랍니다.

이 원고는 진각종 재직 당시 총인으로 계시면서 쓰신 내용이며, 곧 개관될「원정기념관」의 전시 유품 가운데 일부 원고입니다. 앞으로 원고를 계속 연재할 예정이므로 종조님께서 남기신 가르침을 통해 「원정기념관」 을 미리 둘러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편집자주〉


선지식

십주 십위 십회향의 삼현위를 설하여 가행방 편을 밝히노라. 초발심으로 이기적 개인 적인 소견과 좁은 욕심을 버리고 동포를 사랑하는 대비심을 말하는데서 중생은 범부지, 보통사람의 경계를 떠나서 보살의, 즉중생을 위하여서 사는 깨달은 자의 자리에 오르는 것이다.

대비심이 머리가 되고 직심과 심심, 즉 곧은 마음과 깊은 마음으로만 살아갈때에 우리 힘은 부처님의 힘과 같은 것이요, 곧은 마음이란 거짓 없고 속없는 마음이요 깊은 마음이란 언 제까지나 변함도 없고 다함도 없는 마음이란 말이오, 이 세가지 마음으로 하여서 우리는 여래종,즉 부처의 씨가 되는 것이오. 이리하여서 한번 여래종에 들면 육도 만행을 닦아서 필경에 무상정각을 얻어서 성불, 즉 내몸이 부처가 되는 것이니 이렇게 마음을 말할 때에 우리는 환희지라는 자리에 올라서 보살이 되는 것 오. 어찌하여 환희지일까? 보살이 환희지에 오르면 기쁨이 많고 믿음이 많고 깨끗함이 많고 즐거움이 많고 유함이 많고 참고 견딤이 많고 다투기를 즐겨 하 지 아니하고 늘 생각하는 것이 부처님이 부처님의 가르침이오 부처님의 높은 제자들이니 기쁘고 범부의 지저분한 경계를 벗어나서 지혜지에 가까우니 기쁘고 제 마음에 부처님의 경계가 나타나니 기쁘고 모든 보살의 수에 드니 기쁘고 살아가기 어렵다는 무서움, 천대 받는 무서움, 죽는 무서움, 악도에 떨어 지는 무서움, 대중을 두려워 하는 무서움을 모두 멀리 버릴 수가 있으니 기쁜 것이오.

보살은 ‘나다. 내것이다’하는 생각을 떠난 것이니 세상에 탐낼 것이 무엇이며 무서워 할 것이 무엇이냐. 나라는 생각을 멀리 떠났으면 죽음은 다 무엇인고. 설사 이 몸이 죽는다 하더라도 나라는 상을 끊었으니 태어나는 곳마다 제불보살과 함께 할 것이며 죽는 것이 무슨 걱정이랴. 또 보살의 대원에 가장 높은 원이거니 세상에 누구를 무서 워하랴. 천하에 내어놓아도 나의 원같이 높고 바른 원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중생을 얽매는 것이 아 상이라. ‘나다’ ‘내 것이다’하는 생각이 우리를 얽어매어서 날마다 시각 마다 생노병사 모든 괴로움 을 되풀이 하는 것이다. 한번 우리가 아 상을 떠나서 중생을 동포를 사랑하는 마음을 발할 때에 우리는 벌써 삼계에 거칠 것이 없는 보살이 되는 것이다. 이런 경계를 일러서 환희지라 하고 여래종이라 하는 것이다. 이때부터는 내 가 하는 모든 일이 육도만행의 보살행이라. 나를 위하여서 하는 일이 아니라 중생을 위하여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거기는 벌써 걱정 . 근심 . 두려움 무서움이 없고 죽는 것도 없는 것이라. 이런 것을 일러서 일체무애인 일도출 생사라 하는 것이다. 제행 무상이라, 시생멸법이니 생멸멸이하면 적멸위락이란 것도 이를 두고 이른 말이다. 적멸이란 저를 위한 모든 욕심 이 쓰러져서 다시 아니 일어나는 것을 이른 것이다. 이렇게 되고서야 비로소 충도 하고, 효도 하고, 부부도 되고, 붕우도 되고, 용사도 되는 것이라. 나라는 생각이 있는 충효가 어디 있으며, 신의도 어디 있으리. 그러므로 불법이 흥하면 나라가 흥하고, 불법이 쇠하면 나라가 망한다 할 것이다. 원래 불법의 진면목 은 아상, 즉 나라고 하는 것을 버리는데 있는 것이오. ‘나’란 무엇인가? 그것은 늙을 몸이오, 병들 몸이오, 죽을 몸이오, 썩어 없어질 몸이오. 이것을 아무리 비 단으로 싸고 진미로 가꾸더라도 이 몸은 조만간 쓰러질 몸이오. 그뿐인가. 이 몸 의 오욕으로 인하여 나를 괴롭게 하고 중생을 괴롭게 하는 온갖 죄를 지어서는 무량겁에 지옥 우 아귀 축생의 보를 받는 것이다. 

그러면 이 몸을 무엇에다 쓸 것인가.

나라에 충성하는 데, 부모에 효순하는 더에, 불쌍한 중생을 돕는 데에 쓸 것이 란 말이다. 마치 기름으로 불을 켜서 어두운 세상을 밝히기에 쓰는 것과 같은 것이다. 나 한 몸의 복을 얻기 위하여서 불도를 행하느냐? 그러한 불도가 있을 리가 없는 것이다. 서방정토 극락 세계에 왕생하기를 바라는 것이 만일 저 한 몸의 안락을 위하는 것이라 하면 그 것은 사도요, 불도가 아니다. '나 한 몸의 안락을 바라는 자가 돌 아갈 곳이 있으니 그것은 곧 삼악도이니라. 

선지식은 법과 같이 설하고 설한 바와 같이 행하는 사람을 말함이니 자기가 먼 저 살생하지 아니하고 남을 가르쳐서 살생하지 않게 하며, 자기가 먼저 정견을 행하고 남에게 정견을 행케해야 참으로 선지식이요, 자기가 먼저 보리를 닦고 능히 다른 이에게 보리를 닦게 해야 비로소 선지식이요, 자기가 먼저 믿고 계행을 지키며 희사를 하며 널리 법을 들으며 지혜를 닦아 행하며, 또한 능히 다른 이에게 믿고 계행을 지키게 하고, 희사를 하게 하고, 널리 법을 듣게 하고, 지혜를 닦아 행하게 하여야 비로소 선지식이니라. 선지식 은 착한 법을 가진 이라. 자기가 하는 일에 스스로 낙을 구하지 아니하고, 항상 중생을 위하여 낙을 구하며 남의 허물을 보지 아니하고, 얘기를 하되 그 의 잘못을 흠 잡지 아니하며 입에 항상 좋고 착한 것만 말하나니 이를 선지식이라 하느니라.

자기의 마음을 스승으로 하는 사람은 진정한 지혜의 법을 얻으며, 이익과 안락을 얻어서 모든 번뇌를 끊으며 능히 악한 데 가는 것을 그치지게 하며, 자기가 지혜있는 참스승이 되어서 원만하고 청정한 도를 속히 증득하게 되느니라.

〈자료정리 : 종학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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