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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화리의 천년 송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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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64호 발행인 우승 발간일 2005-02-01 신문면수 10면 카테고리 아제아제바라아제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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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김선미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인드라망 생명공동체 총무국장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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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5-18 05:39 조회 1,94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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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화리의 천년 송을 생각하며

이지리산 뱀사골 자락을 거칠게 내다리던 만수천 물길이 삼정산을 감아 돌아 엄천강으로 모습을 바꾸는 곳이 바로 남원시 산내면 삼화리다. 그 마을길을 소로를 비집고 산 쪽으로 뻗은 농로를 따라 이십 여분을 걷다보면 행인의 발길을 붙잡아두고 그로 하여금 감탄이나 경외심을 토해내도록 만드는 거대한 소나무를 만나게 된다.

자신의 현존만으로도 주변의 모든 생명체를 압도하고 있지만 결코 거칠게 소리 한번 지르지 않고 그저 미풍에 몸을 맡겨두고 있는 천년 노송. 장정 네 다섯 명이 양팔을 벌리고 둘러서야 그를 온전히 안아볼 수 있을 정도의 굵은 몸에 갑옷처 럼 단단해 보이는 껍질을 두르고 있는 그 노송 앞에 서면 그가 버텨온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두터운 생명의 심연을 느끼게 된다. 인간이기에 은연중에 자만해져있던 마음이 존경할만한 인내로 긴 시간을 버텨온 그 생명체 앞에서 잠시나마 소박한 경외심으로 바뀌는 것이다.

출근이 늦어진 월요일 아침이었다. 머쓱한 마음으로 사무실 문을 여니, 분주한 느낌이다. 컴퓨 터를 켜고 메일도 열어보기 전에 사무처장이 내게 말한다. ‘지율스님과 관련하여 지난 밤 긴급 논의를 하게 되었고 그 결과 오늘 범종교적으로 지율스님 관련 참회 단식기도’를 갖기로 하였단다. 그래서 도법스님과 문규현 신부님, 기독교환 경연대의 양재성 목사님이 현재 서울로 오고 계 시단다. ‘천성산 살리기의 지율스님께서 3차 단식을 시작하신지도 어언 90여일 가까이 되었고 최 근 연락까지 끊으셔서 많은 이들이 안타까움으로 어찌할 바를 모르던 터였다.

오후 3시! 스님, 신부님, 목사님, 원불교의 교무님 등 많은 분들이 조계사로 모여들었다. 그 분들은 이 참회 단식기도가 어떤 목적이나 의미를 갖는다기보다는 지율스님의 꺼져가는 생명이 너 무도 안타깝고 괴로운 나머지 오늘 한 자리에 모이신 것 같았다.

“오늘, 한 수행자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것에 대해 너와 나, 종단, 우리 사회 이 모두가 보이는 태도에 대해, 정말 이래도 되는지 깊이깊이 고민 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직, 구처적 계획은 마련치 못하였지만 도저히 그대로 있을 수 없어 이렇게 모이게 된 것입니다.”

몇 분께서 말씀을 이으셨는데 말씀하시면서도간간히 침묵하신다. 말씀을 잊지 못하시는 것이다. 그 분들의 떨리는 목소리는 나에게도 그대로 전달되어 내 눈가를 떨게 했다.

지율스님의 단식문제는 그동안 뜨거운 감자와 같은 일이었다. 천성산에 깃들어 살고 있는 뭇 생명들을 개발위험으로부터 지켜내기 위해 뜻을 같이했던 환경단체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둘씩 떠나갔고 그럴수록 지율스님이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은 극단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정부는 돌이키기에는 이미 너무 늦은 일이라 계획대로 공사를 진행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에서 공사강행의지를 공공연히 드러냈다. 패배가 불 보듯이 뻔한 싸움에서 스님은 오직 혼자가 되었다.

그리고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그로서는 마 지막 수단인 자신의 목숨을 걸었다. 이제 그분의 생명이 언제 꺼질지 모를 막바지에서 안타까운 마음에 뜻있는 종교인들이 더 이상 지켜볼 수만은 없다며 자리를 함께 했다.

사실 천성산 문제는 지율 스님 만의 문제가 아님을 양식 있는 사람 들은 모두 알고 있다. 어쩌면 그 문 제는 우리 인류문명의 근본적인 . 갈등구조에까지 그 뿌리가 내려가 있다. 

기술발전을 통한 문명의 진화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믿음과, 잘사는 나라를 만들자는 집단적인 자기설득과, 일의 효율성을 위해서는 희생은 필수적이라는 집단적인 자위심리가 자연과 그 속에 사는 뭇 생명들도 충분히 존중받아야한다는 우리 들의 순수한 마음을 덮고 있기에 결코 놓아버려 서는 안될 생명존중의 화두를 슬그머니 내려놓고도 둔감하게 일상을 지내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가슴 깊은 곳에는 여전히 감출 수 없는 생명에 대한 경외심이 있다. 천년을 살아온 노송 앞에 섰 을 때 무언가 강력한 파장을 느끼듯이 좀더 집약 적인 생명체로서 스스로의 역사에 대한 존경심이 있는 것이다.

한 생명이 한 지역의 뭇 생명들을 위해 스스로 꺼져가려고 하는 지금 사회적 기득권을 가진 사 람들의 현명한 결단을 기대해 본다. 그들도 마음이 편치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제대로 된 환경영 향평가 한번 해보고 그 결과에 따르자는 지율스님의 주장을 무시한 채로 그를 떠나보낼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러기에는 우리들의 마음이 아직 생명에 대한 순수한 경외심을 간직하고 있는 것 아닌가?

〈김선미/인드라망 생명공동체 총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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