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방생 문화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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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66호 발행인 우승 발간일 2005-04-01 신문면수 3면 카테고리 총지칼럼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필자명 김종인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 리라이터 -페이지 정보
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5-18 10:02 조회 1,939회본문
현 고려대학교 BK21 연구교수
서울대학교 철학과에서 불교 연구로 철학 석사
스토니부룩대학교 불교 연구로 철학 박사
방생은 인간이 행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성스러우며, 넓은 사랑의 의미를 지닌 종교적 실천행위이다. 방생에는 모든 생명체는 나와 같이 느끼고 생각하며, 나의 생명이 소중한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생명체의 생명이 소중한 것이라는 보편적 인 사랑의 정신이 들어 있다. 한 마리 들 짐승도, 한 마리 새도, 한 마리 물고기라도 결코 “일용할 공양”으로, 포식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유일무이한 소중한 생명체로 보아야 한 다는 것이다.
모든 사찰에서 해마다 몇 차례의 방생법회를 여는 것은 방생에 담겨 있는 이러한 정신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방생법회를 주관하는 승려들이나 참가하는 신도들이나 모두 적어도 머리로는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불교인들이 행하고 있는 방생의 실상을 보면 어이가 없을 따름 이다. 방생의 전형적인 모습을 그려보면 이렇다. 우선 방생 장소로는 유명 관광지 인근을 설정한. 다음, 방생법회 신청자를 모으고 그들로부터 동참금을 받는다. 그런 다음 여행사에 연락하여 관광버스를 빌린다. 이렇게 관광 여행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한 다음, 방생 법회 당일이 되면 방생용 물고기를 전문적으로 보급하는 가게에 연락하여 미꾸라지나 자라를 단 체로 구매한다. 먼 여행길을 견디자면 생 명력이 강한 물고기여야 하기 때문에 늘 미꾸라지 아니면 자라다. 붕어나 잉어로 했다가는 여행 도중에 모두 죽어 버릴터이니 안 된다. 방생에도 적자생존의 법칙이 작용하는 셈이다. 그렇다고 미꾸라지나 자라가 운이 좋은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들 역시 놀부의 욕심에 다리가 부러진 제비처지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더욱더 어이가 없는 일은 방생법회가 열리고 모진 여행길을 견딘 미꾸라지나 자라를 물에 놓아 준 다음 벌어진다. 이렇게 놀부 제비다리 치료하기식 방생을 한 다음, 이제부터는 완전히 관광 여행이 다. 손뼉치고 노래하고 왁자지껄 놀이판 이다. 어디 그뿐인가. 떡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심지어는 점심으로 생선회를 시켜서 맛나게 먹기까지 한다. 그나마 추어탕이나 자라탕을 먹지 않는 것이 다행스러울 정도이다.
이런 식의 방생은 아무런 복과 덕을 쌓는 일도 아니요, 마음을 정화하는 일도 아니다. 한갓 유희에 불과하다. 그런데 방생이 이렇게 관광여행으로 변질 된 것은 신도들의 신심이 부족한 탓도 있지만, 일차적인 원인은 방생의 의미를 변화된 문화 환경에 맞게 재해석해 내지 못한 불 교 지도자들 탓이다. 산업화된 도시 문화 속에사는 현대인들은 자연으로부터 분 리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자연 속에 살아가는 생명체에 대해서도 사실상 무관심할 수밖에 없다. 산짐승과 들짐승의 애처로운 울음소리를 들어보지도 못 했으며, 집짐승이 정성스레 새끼를 키우는 모습을 보지도 못했다. 정육점의 닭이나, 돼지고기, 혹은 쇠고기는 그저 고깃덩이 일 따름이지, 그것이 비명을 지르며 피를 쏟고 죽은 생명체의 시신이란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한다. 횟집 수족관의 물고기를 보아도 결코 방생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회의 운영 원리상 그렇게 할 수도 없다.
아무런 의미도 찾을 수 없는 놀부 제비다리 치료하기식의 방생을 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각도에서 방생에 대해 접근해 볼 필요가 있다. 방 생을 오늘날 인류 사회가 해결해야 할 가 장 시급한 환경 문제의 해결과 연결시켜 보는 것은 방생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방생을 좁은 의미에서 사로잡힌 동물을 놓아주거나 구해주는 것으로만 보지 말고 모든 생명체가 잘 살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는 넓은 의미 에서 보자는 것이다.
오늘날 자연환경의 오염은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에 대한 심각한 위협 이 되고 있다. 자유롭게 숨 쉴 수 있는 공기, 마음놓고 마실 수 있는 물, 편안히 쉴 수 있는 숲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러한 자연 환경의 오염은 동물들에게 더욱 치명적이다. 산짐승들은 산림의 남벌과 개발로 서식지를 잃고 있으며, 물고기들은 강과 바다에서 떼죽음을 당하고 있다. 그나마 살아남은 짐승들은 또 밀렵 꾼들의 사냥감이 되고 있으며, 물고기들은 촘촘한 그물질에 씨가 마른다. 바로 이들의 서식지를 보호하고, 죽음을 방지 하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필요한 방생이 다. 자연보호운동이야말로 오늘날 불교인들이 해야 할 참된 방생활동이라 할 수 있다.
천만 불자들이 방생의 날을 정하여 한 꺼번에 산에 올라가서 짐승을 잡기 위한 올가미를 치우고, 강과 바다의 불법 그물 들을 걷고, 쓰레기를 치우고, 오염물질을 수거한다면 천만 불자의 몇 십 배나 되는 숫자의 생명들이 삶을 보존할 수 있을 것 이다. 이것이야 말로 도시화 산업화의 그 물에 갇힌 생명들을 놓아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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