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총지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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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총지종은 ‘불교의 생활화, 생활의 불교화’를 표방하고 자리이타의 대승불교 정신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생활불교 종단입니다.

우리사원 우리스승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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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64호 발행인 우승 발간일 2005-02-01 신문면수 12면 카테고리 사원탐방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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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5-18 06:09 조회 1,40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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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사원 우리스승님
대승적 아름다움이 물결치는 밀법도량

성일 아침 일찍 일어나 빌딩과 높은 건물들로 가득 찬 서울의 도심거리를 기차를 타고 벗어나 밀양에 도착 하니 근세기의 위대한 작곡가 박시춘의 아름다운 멜로디가 고요히 넘실대는 남천강의 물줄기를 타고 겨울의 살얼음을 지나 영남루에 다다르며 아랑의 순결함과 굳은 절개가 아련히 가슴속에 베어온다.

밀양은 총지종 종조 원정대성사께서 탄생하신 곳이며, 또한 사명대사가 중생구제를 일구었던 곳으로,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의 밀법을 전도하는 중심에 서있는 밀행사를 찾아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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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행사의 연혁

밀행사는 총기 2년 밀양읍 내이동에 대지를 매입하여 밀양선교부로 개설하였으며 총기4년 밀행사로 개칭하였다. 총기11년 6월 신축건물을 착공하여 총기12년 4월에 헌공불사를 하였다.

초창기에 시각화전수가 초대 주교로 부임하여 밀행사를 일구었으며, 하정정사, 법상원전수, 밀공정전수, 지공정사, 지회심전수가 교화를 하셨으며, 현재는 금강륜전수가 주교로 재임하며 중생을 교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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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가 윤회의 주인공

기독교에서는 예수가 죽은지 사흘만에 되살아나 승천 하였다고 하여 부활절이란 이름으로 성대한 행사를 거행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부활은 어느 특정한 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들의 생명의 실상이요, 모든 생명체들에게 평등하게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생 명체들의 삶은 딘지 한 시기의 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은 업에 따라 끊임없이 윤회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누에가 번데기로 변했다가 다시 나방이 되는 것처럼 삶의 겉모습이 변화를 계속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사윤회는 육신과 무명에 쌓인 업식의 생성과 소멸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이 가운데 그 육체적인 주인격인 무명에 가려 업식은 윤회의 근원을 끊어 해탈하지 않는 한 끊임없이 변화하는 과정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는 육도 윤회로써 불법에 의 하면 사람의 생은 시시각각 윤회 중에 있으며, 단지 빠르고 늦은 것의 차이가 있을 뿐, 늦은 변화를 생멸 혹은 변 이라고 하고 빠른 변화를 윤회라고 합니다. 중생은 삼업이 짓는 힘, 즉 업력에 의해서 시작과 끝이 없는 생명의 흐름이 형성되며 하늘이나 사람. 아귀. 축생 등 여섯 가지의 다양한 생명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을 육도윤회한다고 합니다. 육도윤회의 깊은 도리는 우매한 중생은 믿지 못하므로 옛 사람이 “경전이 아니고는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고 부처님이 아니면 이해할 수 없다”고 한탄하기도 했습니다.

윤회는 결코 신앙의 체계나 이론이 아니며 더욱이 인생 의 냉혹함을 피하기 위한 무정의 최후의 재판, 즉 죽음에 대한 심리적인 위안이 아닙니다. 윤회는 전생과 내생을 해 석하는 정밀하고 정확한 과학입니다. 그러므로 윤회를 분명하게 이해함으로써 윤회가 존재한다는 것을 믿어야지 무턱대고 믿어서는 안됩니다. 윤회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있을 때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인과와 윤회는 결코 절대적인 신에 의해서 조종받는 것이 아니며 하느님이 조물주라고 해서 지배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각자의 뒤바뀐 가지가지 무명의 업식을 불러일으키고, 그 업식이 천차만별로 생사고락의 과보가 나타나 게 합니다. 어느 여섯 살 난 신동의 수학적 재능을 대학교 수들조차 따라갈 수 없는 사례가 있는데 그의 천부적 재능은 결코 금생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과거 생부터 누적 되어 온 것입니다. 이를 두고 일반 사람들은 전생부터 닦아 온 지혜라고 하지만 사실은 윤회의 사슬입니다.

다른 종교에서는 인간의 삶은 결코 신의 지배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고 하지만 불교에서는 그 삶을 지배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업력이라고 합니다. 모든 화나 복은 바로 우리 자신이 짓고 받는 것으로 윤회의 관점에서 보면 유정중생은 완전한 자유평등의 개체로써 스스로 즐겁고 행복한 인생을 창조하기도 하고 비참하고 불행한 인생으로 전락하기도 합니다. 신은 우리의 자유의지를 지배할 수도 없고, 우리의 죄업을 은폐시킬 수도 없으며, 이러한 인과란 윤회 앞에 투기라든지 요행이라는 말은 있을 수 없고 오로지 자기 자신만이 조물주가 될 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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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하는 나, 날마다 좋은 날

최근 많은 사람들의 생활이 힘들다고 합니다. 조그마한 일에도 쉽게 짜증을 내거나, 우울해 지기도 합니다. 왜 힘드냐고 물으면 경제적인 어려움부터 시작해서 생활에서 또는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갈등 을 제대로 풀지 못해서 등등 많은 이유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삶이 늘 불안하고, 불편하고, 불평하고, 만족하지 못한 채 살아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또한 현실이 매일 매일 혼란과 불안에 싸여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삶의 행복과 기쁨도 느끼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마음을 바로 보지 못하고 남과 비교하고 시기, 질투함으로써 발생한다는 것을 모르기 때 문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 두려움, 쾌락, 근심과 불안, 불행, 우울, 사랑, 고통, 슬픔, 그리고 죽음에 대한 긍정적인 두려움 이러한 것들이 바로 우리의 마음을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의 그런 마음은 또 세월을 한 해 한 해 보내면서 아주 둔해집니다. 점차로 마음을 제대로 보는 힘을 기르지 못한 채, 오히려 마음을 아는 것이 아닌, 마음 밖의 것을 알아야합니다.

옛날에 도닦는 선사들은 불입문자를 강조하였습니다. 그이유는 실제적인 기술, 지식을 획득하기 위해 책을 읽을 필요가 있으나 인생의 주체적인 나를 바로보기 위해서는 책이 아상만 높아가고, 도에 장애가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그곳에 중생의 근심, 불안, 외로움, 절망, 슬픔 그리고 고통이 모두 깃들어'있습니다.

사실 우리 자신의 행동은 물론이고 이 세상에서 일어나 고 있는 일들의 책임은 이 사회나 정치가, 또는 지식인에 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에게 있음을 깨달아 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너무나 아름답게 찬탄할 것도 많고 또한 인생살이에는 고통이 많다는 것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사회적 지위가 높든 낮든, 부유하든, 가난하든, 젊든 늙었든 간에 고통은 항상 존재합니다. 그것을 극복하는 길은 자기의 마음을 잘 살피고 닦는 일, 그리고 완전한 자비, 사랑 그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수많은 쾌락을 추구하기 위해 안타까운 노력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또한 돈이면 다 할 수 있다는 사고로 정신적인 안정과 욕구를 충족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채우려고 해도 채 워지지 않는 물질적인 안락만을 추구하다 보니 자신을 불행한 존재로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안정되고 고요하면서 따뜻함이 충만된 세계, 그 세계를 만들기 위해 조용히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고 내 마음속의 변화를 잘 관찰하는 생활이 필요할 것입니다.

행복은 아주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코 앞에 아니 이미 자기 옆에와 있는 지도 모릅니다. 단지 우리가 행복 이라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기 때문에 저멀리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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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밀행사 주교 금강륜 전수

▶언제부터 총지종과 인연을 맺게 되셨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어머님이 젊은 시절부터 불교와 인연을 맺게 되어 저를 비롯한 형제자매들이 어린 시절부터 자성학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부처님과 친근을 하게 되었고, 아버님 어머님이 총지종과 인연을 맺어 스승으로서 교화를 하시게 되자 저의 행동 하나 하나, 삶 자체가 부처님과 함께하는 인연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전수님께서 교화하고 계시면서 나름대로 교화방법 및 수행철학이 있으시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경험이 부족하여 교화방법이 서툴고 미숙하지만 따사로움이 감도는 서원당을 만들기 위해 보살님들과 함께 공부하고, 늘 가까이 하는 일상 생활을 하면서 생활 그 자체가 불법이고, 부처님과 같은 마음을 행하기 위  끊임없이 부딪히는 마음을 참회하고 육행실천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바로 수행자의 도리가 아닌가 합니다

▶ 스승의 최우선 목적은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중생을 제도하는 방편에 남다른 방편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간략하게 설명해주시기 바랍니다.

중생제도라는 것은 첫째도 자비요. 둘째, 셋째도 자비가 아닌가 합니다.

제가 어릴 때부터 어머님이 보살님들과 고통과 아픔을 같이 하시고 어려운 병고를 해탈시키기 위해 동고동락을 하시면서 자비로서 어루만져 주시는 모습은 제 마음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었고, 성인이 되어서는 작고 하신 청신화 스승님의 항상 자비하신 마음으로 한조각의 콩이라도 베풀고 교화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어느틈에 제 자신도 모르게 몸에 베어 저의 삶에 교훈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항상 자비로서 베풀고 보시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거짓과 가식적인 행위, 분별심, 시기와 질투로 얼룩지며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불자로서 올바르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지를 말씀해 주십시오

몇 년전에 모 종교단체에서 “내 탓이요!” 하면서 모든 것이 나로부터 시작하고, 나를 낮춤으로서 상대방을 존경하고 높임으로서 내 자신이 대우받는 결과를 가져오는 사회운동을 한 적이 있습니다. 비록 종교는 다르지만 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마음이요, 세계가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봅 니다. 갈수록 사회가 복잡해지고 또한 중생들의 마음이 삼독심(탐,진,치)에 물들어 혼탁해지고 있습니다. 이럴수록 우리 불자들은 부처님의 불법 에 인연을 맺어 금생의 업이 지중할지라도 내 자신의 거울, 진정한 내 마음을 들여다 볼-수 있는 마음을 깨쳐서 나를 한껏 성숙하게 하고, 나를 낮추면 상대가 살아나듯 삼독심을 버리고 청정한 마음으로 보리심을 행한다면 부처님의 세계가 펼쳐지리라 생각합니다

▶ 사원에서 중생들을 교화하시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교화하시면서 어려운 일이 많았으리라 생각합니다. 그중에서 가장 어렵고 힘든 일이 있으시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짧은 수행기간 혼자서 교화를 하다 보니 모든 것이 미숙하고 힘들지만 보살님들의 자비하신 마음으로 너그럽게 봐주신 덕분으로 좋은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인” 지어서 “과” 받는 과보 속에서 위험한 신호가 오는 것도 모르고 질주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노란 신호등 이 경고신호를 해줄 때에 자신의 모습을 찾아보고, 옆도 보고, 뒤돌아 보면서 내자신의 인연의 업을 찾아 순응하여, 한번 쉬어가면서 나를 삼독 심에 물들게 한 원인을 찾아서 마음을 비우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는 데도 불구하고 모두들 바쁜 생활속에 쉬어가는 모습을 찾기가 어려워 빨간 위험신호등이 켜진 것도 모르고 달려가서 나쁜 결과를 받은 “과” 그 것을 보면 너무나 안타깝고 또 그것을 비우기 위해 참회하는 모습을 볼 때에는 제자신이 너무나 힘들고 어렵습니다

▶ 일선사원에서 교화하시면서 보람된 일은 무엇인지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고통의 비가 내려도, 미움과 원망심으로 업을 짓는 것보다 착한 마음으로 복을 짓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을 깨우쳐 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하고, 보살님들과 내 자신의 업을 찾아 나를 바로 보고, 하심하고, 참회하고, 원하는 일이 이루어질 때 보람을 느낍니다

그리고 보살님들이 지은 복덕으로 자녀들이 서원당을 찾아오고 부처님과 생활을 같이 하겠다고 할 때 더더욱 보람이 커지는 것 같습니다

▶ 마지막으로 총지종 교도 및 밀행사 교도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으시면 말씀해주십시오

부처님의 법은 내 마음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 같습니다.

내 마음을 바르게 사용하면 나와 주위 모두를 부처님의 세계로 인도 할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고통의 나락에서 벗어나지를 못 할 것입니다. 부처님의 법을 만나 우리 개개인에게 일어나는 법을 깨쳐서 상대방 원망 보다 나 자신을 찾는 공부를 통해 진리에 순응하며 살아간다면 나 또한 부처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또한 우리 총지종의 법은 생활법 그자체입니다. 그 누구에게라도 갖추 어져 있는 것이 부처님의 법입니다. 갈수록 사회가 각박해지고 이기심으 로 물들어가는 이 현실에 자기도 이롭게 하고 상대방도 이롭게 하는 법신 비로자나 부처님의 세계에 우리의 이웃, 또는 우리의 자녀들을 한분이 라도 제도하여 가정마다 부처님의 자비와 지혜를 누리게 하고 은혜로써 복덕을 누리도록 서원하겠습니다.

옴마니반메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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