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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66호 발행인 우승 발간일 2005-04-01 신문면수 10면 카테고리 아제아제 바라아제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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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5-18 11:43 조회 1,95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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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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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광동 서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하는 파주 보광사행 33번 버스는 광탄면의 한가한 농촌마을을 오가는 유일한 노선버스입니다. 45분에 한 번씩 운행하는 이 버스는 자가운전을 하지 못하는 노인들과 이 지역의 소규모 공장에서 일하는 외국인노동자들, 그리고 휴가를 받아 들고 나온 군인들이 주로 이용 합니다.

오랜 동안 이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이면 대개 서로 낮이 익습니다.

저도 서울 살림을 접고 이곳 한가한 교외로 이사한지 3년이나 되다보니 어느 정거장에, 어느 마을에 사시는 어르신인지 알아보고 인사를 나누는 분들이 몇 분 생겼습니다.

그래도 가장 자주 손님들을 대하는 사람은 버스기사입니다. 이 버스를 운행하는 운전기사는 모두 다섯명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기사 한 두 명은 버스노선에 정을 들이지 못 하고 곧잘 바뀌곤 합니다만 듬직하게 정을 붙이고 즐겁게 운행하는 붙박이 기사들도 있습니다.

이용 승객들이 주로 노인축에 끼는 분들 이라서 버스를 내리고 탈 때에 느긋하게 기다려 주고, 버스시간을 맞추지 못해서 정류장으로 급히 걸어가는 분들이 있으면 도중에 차를 세워서 태워주기도 해야 합니다.

아주 가끔이지만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 어느 정류장의 구멍가게에 들러 맡겨놓은 물건을 찾아 다시 타기도 하고, 우리말을 잘못 알아듣는 초보 외국인노동자들에게는 힘들게 목적지가 어디인지 그리고 그곳까지 버스요금이 얼마인지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33번 버스 운전대를 처음 잡은 기사들은 처음에는 매우 낯설어 합니다. 그리고 승객들의 이런저런 주문에 짜증을 내기도 합니다. 그렇게 한 달 정도쯤 지나면 기사들의 성격 에 따라 둘로 갈라집니다. 승객들과 즐겁게 인사를 나누고 이런 저런 세상사는 얘기를 해가면서 편안하게 운행하는 기사와 묵언하 듯 말문을 닫고 운전하는 일에만 충실한 기사로 말입니다.

여러 운전기사들 중에서 무척 친절하고 명랑한 두 명의 기사가 있습니다. 이분들은 벌써 비슷비슷하게 생긴 동남아시아 출신의 외국인노동자들도 금방 알아보고 어디까지 가 는 지 압니다. 그 나라 말로 인사도 하고, 농담도 주고받 습니다.

아침 출근 시간에 시내 로 통학하는 어린이들이 병아리처럼 재잘대면서 차에 오를 때도 늘 즐거운 인사를 합니다. 어떤 녀석들이 1천원 지폐를 내고 4백원 버스비를 제한 6백원을 돌려받으 려고 하면,  '다음부터 잔돈으로 내지 않으면 거스름돈 안 줘’ 하면서 으름장을 놓기도 합니다. 어떤 초보 손님들은 1만 원권 밖에 없어서 다른 손님들이 탈 때 내는 돈이 걷히기 까지 기다렸다가 거스름돈을 받기도 합니다. 이 모든 일들은 농촌마을을 지날 때에만 가능한 일입니다.

친절한 기사가 운전하는 버스를 만나면 하 루 종일 기분이 좋습니다. 도시 시내버스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도시는 모두가 서로에게 낯선 사람들이 대부분이어서 더욱 그럴 것입니다. 언제 어느 곳에서나 한결같이 친절하고, 한결같이 자비스런 미소를 짓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절감하게 됩니다. 불교에서 이상으로 삼는 ‘보살’의 모습은 ‘한결같음’이 기본일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기분 좋게 친절한 버스기사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고 생각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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