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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바세계는 인연과 감인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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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68호 발행인 우승 발간일 2005-06-01 신문면수 3면 카테고리 이달의 설법문안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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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5-23 07:26 조회 1,45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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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바세계는 인연과 감인의 세계

인생을 살아가면서 고통과 불행을 당하기를 바라 는 사람은 아마도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을 것입 니다. 혹시 자신에게 고통과 불행이 올까봐 전전긍 긍하면서 한 해가 시작되는 정월이 오면 토정비결을 보내! 신수를 보내! 삼재풀이를 하는 등 별별 액막이를 하느라 부산한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심지어 부처님의 도량에까지 와서 일년 신수를 보아 달라고 하는가 하면..길흉화복을 묻고, 혹여 그런 것은 정법이 아니라고 설명하면 오히려 그런것도 볼 줄 모르는 무능력한 사람으로 치유해버리 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만큼 인생에 있어 안락과 행복은 중요한 것이며 고통과 불행은 멀리 여의고 싶은 것이 우리의 현실인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사바세계입니다. 사바세계는 상대적인 가치로 얽히고설켜 있는 회잡의 세계요, 참지 않고서는 살아 갈 수 없는 감인의 세계입니다.

따라서 일생동안 갖가지 고난과 고통을 겪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며 고난들은 극복하고 참으며 살 아야 되는 것이 사바 중생들의 숙명인 것입니다. 업연으로 이 세상에 태어난 중생들은 자기 의지대 로 태어난 것이 아니고 업보에 의해 이끌려 나왔기 때문에 마치 갖가지 잡된 인연의 그물에 갇혀 있는 것과 같아서 마음대로, 뜻대로 자유롭게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중생이란 모두 창살없는 감옥에 갇혀 있는 것과 같으며, 윤회의 그물에 걸려 있는 고기와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바세계는 고통과 불행이 언제 닥쳐올지 예측할 수 없는 불안하고 불확실한 세상인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일찍이 이 사바세계를 고해 라고 하시고 중생계에 태어난 모두는 피하려고 몸 부림쳐도 결코 피할 수 없는 여덟 가지 근본고통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우선 살아있는 모든 것에는 태어남, 늙음, 병듦, 죽음과 같은 큰 괴로움이 있으며 그밖에 사랑하는 것들과 헤어지지 않으면 안 돠는 고통이 있고, 미워하고 원한을 품은 것들과 만나이하는 고통이 있습니다.

그러나 중생들의 괴로움이 어찌 이 네가지, 여덟 가지만 되겠습니까?

중생의 번뇌가 팔만사천이라면 괴로움도 팔만사 천가지이며 팔만사천이라는 숫자의 상징적인 의미는 한량없이 많다는 뜻입니다.

아무튼 이러한 고통으로부 터 자유로운 중생은 아무도 없습니다. 뿐만아니라 세상살 이에는 뜻하지 않은 재난 또 한 많습니다. 흔히 팔난이라 일컫는 배고픔, 목마름, 추위, 더위, 화재, 수해, 태풍, 전쟁이 쉴사이 없이 침노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중생들은 이러한 고난자체를 싫어합니다. 나에게만은 고난이 닥쳐오지 않기를 간절하게 바랍니다. 가능하다면 피해 가기를 바라게 되는 것입니 다. 사실 이러한 재난이 닥쳐왰을 때 우리들은 경악하고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져 비탄에 젖어 있거 나, 세상을 원망하게 되는데 이럴 때일수록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고난과 시련이 닥쳐왔을 때 그 고난과 시련을 피 하겠다고 달아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닙니다. 우선 사바세계에서 사는 한 고난을 친구처럼 받아들 여야 합니다. 싫어하고 피할수록 고난과 시련은 더욱 기승을 부릴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누구에게나 시련과 고통이 올 수 있음을 먼저 인정 해야 합니다.

땅에 넘어진 사람은 땅을 의지해서 일어날 수밖 에는 없듯이 시련과 고난을 의지처로 삼거나 디딤돌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어둠이 깊을수록 빛은 찬 란하듯이 시련과 고난을 이겨낸 영광과 승리는 더욱 값지고 빛나는 것입니다.

창 밖의 푸른 잎들은 지난 겨울동안 춥고 어두웠 던 고통과 시련을 이겨낸 결과로 저토록 빛나고 아름다운 자태로 우리 앞에 서있는 것입니다. 성공한 많은 사람들 뒤에는 언제나 시련과 고난의 시간과 역사를 말없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영광뒤에 있는 고난을 볼 줄 알아야 합니 다. 시련과 고난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영광과 성공을 위해 참고 기다릴 줄 아는 인내와 땀 흘릴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가을의 풍성한 수확 을 위해 농부들은 한여름 땡볕 아래에서 땀 흘리고 수고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고통을 감내하지 않고 이루어지는 성공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땀 흘리지 않고, 수고하지 않고 얻는다면 그것이야말로 도둑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과 시련은 그것을 이기 고 성공한 사람에게는 도전의 기회이자 영광의 디 딤돌인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도 국왕의 지위를 버리고, 나라를 버리고, 사랑하는 처자를 버리고, 모든 부귀영화를 버리고 인간으로써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난행과 고행을 수행하신 후에 부처님이 되신 것입니다.

고난과 시련이 닥쳐왔을 때 우리는 ‘나’라고 하는 소아에 집착하기 전에 세상 이치를 관조해야 합 니다. 그리고 원인이 무엇 때문인 지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인지를 살펴보는 지 혜를 평소에 훈련해야 합니다.

훈련은 다름 아닌 수행입니다. 수행에는 여러 방법이 있지만 우선 자기 삶을 되돌아보는 참회가있어야 합니다. 보편적으로 재난이 닥치면 자신의 허물을 살피기에 앞서 세상을 원망하거나 남 때문 이라는 생각을 가지거나 , 재수를 탓하고, 팔자타령 이나 신세 한탄을 하기가 쉽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사실상 문제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우선 존재의 실상을 바로 보아야 합니다. 사실 괴롭다, 고통스럽다, 행복하다, 안락하다 등등. 그밖에 많은 개념들이 있지만 이러한 모든 개념들은 ‘나’ 라고 하는 주체가 있음을 전제로 하여 일어난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우리가 흔히 나, 나 자신이라고 하는 나는 사실상 없다‘는 것입 니다 이렇게 말하면 당장 무슨 말을 하느냐. 이렇게 멀쩡하게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내가 없기는! 무슨 소리냐고 항의하시겠지만 시실 고정 불변하는 나라는 실체는 없습니다.

모든 존재는 무상하기 때문에. 한번도 같은 존재 란 없으며, 또한 존재는 스스로 존재하지 못하고 서로의 상관관계에 의해 존재하기 때문에 고정불변 하는 나는 없는 것입니다.

모든 존재는 흘러가고 있을 뿐입니다. 사대로 이루어진 몸뚱이는 아무리 튼튼하다고 해도 생로병사 에 의해 마침내 사라지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나의 정신 또한 한 생각이 일어나서는 잠시 머물다가 바 뀌어 사라져 버리는 생주이멸의 흐름이 반복되고 있는것입니다. ’

그러므로 ‘나’를 구성하는 육체와 정신 모두 끊 없이 변하다 사라지는 허망한 존재에 불과하므로 부처님께서는 무아라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나라는 주체가 본래 없는데 그밖에 개념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정말 봄날의 아지랑이 와 같이 허망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참으로 무상과 무아를 통해 존재의 실상을 바로 보는 도인이라면. 행복이니 불행이니 권력이니 명예니 고통이니 괴로 움이니 하는 말 따위가 그대로 잠꼬대인 것입니다.

문제는 존재의 실상을 바로보지 못하기 때문에 세상의 온갖 시비와 병통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성 철스님께서는 “자신을 바로 보라”고 했습니다. 세 상의 어떤 것도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어떻게 마음가짐을 할 것인가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고난을 행복으로 시련을 성공으로 바꾸는 것도 마음가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겸허해져야 합니다. 삶의 진실은 멀리에 있지 않습니다. 바로 눈앞에 있거나 발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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