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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최의 설법(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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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71호 발행인 우승 발간일 2005-10-01 신문면수 9면 카테고리 아함경 이야기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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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 필자법명 화령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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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5-25 06:30 조회 1,81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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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최의 설법(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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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령 정사

나는 이 연기라는 법에 의해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 법이야말로 내가 존경하고 귀중히 여기며 스승으로 섬겨야 할 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시면서 차라리 입멸해 버릴까하는 생각도 가지셨다고 합니다. 이 어려운 진리를 알아들을 사람도 없으니 헛된 수고로움을 피하고 그대로 생을 마감해 버릴까 하는 생각도 하신 것입니다. 이 순간은 정말 중요한 순간이었습니다. 만약 부처님께서 당신 이 깨달으신 진리를 혼자만 가슴에 담고 그대로  세상을 뜨셨다면 불교라는 것은 존재하지 도 않았을 뿐더러 우리들도 여전히 무명 속에서 끝없는 괴로움을 겪으며 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이 순간에 사함파티라는 범천이 부처님의 마음속을 알고는 이렇게 탄식했다고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깊고도 미묘한 법을 깨달으시고도 설법하지 않으시려고 하는구나. 애 세상은 멸망하는구나. 여래 응공 정등각자께서 법을 설하지 않으신다면 세상은 소멸하고 말겠구나.

범천이라는 것은 원래는 브라만의 신으로서인도 전통의창조신인데 불교에서는 불법을 보호하고 전하는 데에 도움을 주는 신으로 등장 합니다. 경전에서는 가끔은 부처님의 마음 속 변화를 묘사하기 위하여 등장하기도 합니다. 이 경우에도 범천은 부처님 마음 속의 어떤 결심을 나타내기 위하여 등장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부처님께서 ‘이렇게 어렵게 도달한 진리를 지금 결코 드러낼 수가 없다. 탐착과 분노에 물든 자들은 이 법을 원만히 깨달을 수 없다. 윤회를 초월하여 지극히 깊고 미묘한 법을 무명 에 가리고 탐착에 물든 자들이 어찌 알겠는가?’ 라고 하시면서 설법하는 것을 포기하시려 하자 범천이 이렇게 탄식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힘센 사람이 굽혔던 팔을 펴고 폈던 팔을 구부리는 것처럼 얼른 부처님 앞에 나타나 오른쪽 무릎을 꿇고 간청했다고 합니다.


세존이시여, 원하오니 적당한 때를 보아 설 법하십시오. 지금 중생들은 번뇌가 적고 제근이 예리하며 공경심이 있어 교화하기 쉽습니다. 그리고 후세에 구제 받을 수 없는 죄에 대해 두려워하므로 그들을. 교화하신다면 악법을 멸하고 선도를 생겨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마하박가>에는 간단하게 이렇게도 되어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법을 설하십시오. 선서께서는 법‘ 을 설하십시오. 이 세상에는 눈이 먼지로 가려 져 있지 않은 중생도 있습니다. 그들이 법을 듣 는다면 깨달을 수 있을 것이나 법을 설하지 않 으신다면 그들조차 타락해 버릴 것입니다.

말하자면 이 세상에는 그래도 순수하고 얼 마간은 지혜로운 사람이 있을 터이니 그런 사람들에게 설법한다면 진리에 눈을 뜰 것이 아니겠느냐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조차도 바 른 법을 듣지 못한다면 타락해 버릴 것이기 때문에 이들을 위해서 설법을 해달라는 범천의 간청입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렇다. 그대의 말이 옳다. 나는 홀로 고요한 곳에 앉아 ‘내가 얻은 법은 지극히 깊고 미묘하여 중생들에게 설해 준들 그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번거로움만 더할 것이니 차라리 설법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나는 무수한 아승기겁 이래게 으르지 않고 부지런히 힘써 위없는 수행법을 닦은 뒤에야이 얻기 어려운 깨달음을 얻었다. 그 러니 탐진치에 사로잡힌 중생들에게 설하여도 받들어 행하지 않을 것이다. 부질없이 나만 힘들게 될 것이다. 내가 깨달은 이 진리는 미묘하여 세상일과는 반대되는 것이니 욕심에 물들고 어리석은 중생들은 믿고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범천이여,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설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그러나 범천왕은 거듭하여 간청을 합니다. 범천의 거듭되는 간청에 부처님께서 세상을 둘러보니 중생들의 근기가 다 달랐습니다. 경 전에서는 이러한 중생들의 모습을 연꽃에 비 유하여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연못에는 붉은 연꽃, 흰 연꽃 등 여러 가지의 연꽃이 피는데, 어떤 연꽃은 진흙에서 갓 나와 아직 물 위로 올라오지 못한 것도 있고, 어떤 것은 봉오리가 수면 위로 갓 올라온 것도 있으며, 또 어떤 것은 수면위로 올라왔지만 아직 활짝 피지 못한 것도 있지만 모두 다 물에 젖지 않고 쉽게 피어날 수 있는 것처럼 중생들도 제 각기 다른 근기를 가지고 있지만 부처님이 설하시는 진리를 들으면 이해하고 믿을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아시고 마침내 설법하실 것을 결심하십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범천권청’의 설화입니 다. 깊고 미묘한 진리를 설할 것인가 말것인가 에 대한 부처님의 마음속의 갈등과 결심을 범천을 등장시켜 신화적으로 묘사한 것입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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