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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성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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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69호 발행인 우승 발간일 2005-07-01 신문면수 9면 카테고리 아함경 이야기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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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 필자법명 화령 정사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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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5-23 18:54 조회 1,27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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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성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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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령정사

아마 자기는 남보다 진리에 대해서 더 안다고 생각해서 그러는 것인지 남들  하지 않는 수행을 했기 때문에 존 경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해서 그러는 지 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거만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수행이라도 좀 했으면 그나마 다행인데 수행은 제대로 하지 않고 대접받는 것만 부처님처럼 받고 싶어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어떤 스님은 앉아서 삼배 를 받으려고 하고 심지어는 삼배를 하라고 강권을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반말을 예사로 합니다. 나이 젊은 스님이 나이 든 신도에게 함부로 반말을 하기도 합니다. 불교신자가 아닌 사람에게까지 반말을 하다가 망신을 당하는 그런 스님들도 봤습니다. 수행자이기 이전에 예의 바른 한 사람의 성숙한 인격자로서 거듭 나야 하겠습니다. 수행자로서의 성숙하지 못한 자세로 인해서 비종교인이나 타종교인들의 멸 시를 받는 일이 있다는 것을 꼭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혹시 제가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저 사람 저거 삼보를 비방하 거 아니야하면서 따질 분들이 혹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지적하는 대상은 수행자의 모습은 갖추었으되 부처님을 팔아먹고 불교를 팔아먹는 엉터리 수행자들, 즉 부불법 지외도들의 무리를 가리키는 것이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널리 전하고 욕심을 억제하며 수행에 힘쓰는 검소하고 청정한 분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훌륭한 수행자는 우리가 지극히 공경하며 받들어 모셔야 합니다만 되지도 않은 수행자를 대상으로 삼아 복의 씨앗을 뿌리려는 헛된 노력을 삼가시라는 의미에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참된 바라문이란 죄악을 멀리하고 마음이 청정하며 자제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씀은 비단 불교뿐만 아니라 모든 수행자에게 해당되는 말씀일 것입니다. 부처님의 말씀은 이처럼 시대를 초월하고 대상을 초월 하여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니그로다 나무 아래에서 7일, 동안 삼매에 잠겨 해탈의 즐거움을 누리시다가 또 무찰린다라는 나무 아래에 가서 마찬가지로 삼매에 들어 해탈의 즐거움을 누리셨다고 합니다. 이 때에 폭풍우가 닥쳐서 용왕이 석가모니 부처님을 보호했다는 대목도 나옵니다. 이렇게 해서 또 7일이 자나갔을 때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게송을 읊으신 것이 있습니다.

진리를 듣고 보아 혼자서 만족함은 즐거움 이다. 생명을 해치지 않음도 즐거움이다. 애욕을 극복하여 세상사에 집착하지 않음도 즐거 움이다. 그러나 나라는 교만심을 누를 줄 아는 이것이 최상의 즐거움이다.

아마 혼자서 깨달음의 법열을 마음껏 누리  계셨던 것 같습니다. 붓다라는 말이 눈을 뜬 사람을 의미하는 것처럼 세상의 진리를 훤하게 알고 생노병사의 고뇌를 벗어버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조용히 그 기쁨을 즐기는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서도 부처님께서는 교만한 마음을 누를 줄 아는 것 이 최상의 즐거움이라고 스스로를 경계하고 계십니다. 그 누구도 몰랐던 최상의 진리를 깨치신 부처님께서도 이렇게 교만한 마음을 스스로 경계하고 계십니다. 아마 보통 사람들 같으면 좋아서 날뛰다가 미쳐버렸을 지도 모르지요. 수행하는 사람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교만한 마음입니다. 나는 남들보다 어려운 고행을 했는데, 혹은 나는 남들보다 더 깨쳤는데 하는 마음이 늘 앞서는 것이 수행자들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런 것을 경계하시고자 교만한 마음을 누를 줄 아는 것이 최상의 즐거움이라고 말씀하셨는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또 7일을 삼매에 계시다가 다시 또 라자야타나 나무 아래로 가서 삼매에 잠겨 해탈의 즐거움을 누리고 계셨다고 합니다. 이 때 에 타풋사와 발리카라는 두 상인이 그 곁을 지나다가 석가모니 부처님을 뵙고 보리죽과 꿀을 공양하고 부처님께 귀의했다고 합니다. 마하박가에서는 이들이 부처님께 보리죽과 꿀 을 바치고 이렇게 사뢰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과 세존의 가르침에 귀의 합니다. 세존께서는 저희들을 신자로 받아주십시오. 오늘부터 생명이 다할 때까지 귀의하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 두 상인들은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에 귀의한 최초의 신자가 되었지만 이 때에는 아직 승단이 만들어지기 전이었 으므로 삼보에 귀의한 것은 아닙니다. 삼보에 귀의한다는 것은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 그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전하는 승가의 셋에 귀의하는 것을 말합니다. 귀의라는 말은 몸과 마음을 바쳐 헌신하고 의지한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라자야타나 나무 아래에서 7 일 동안 해탈의 즐거움을 누리시던 부처님께 서는 다시 니그로다 나무로 자리를 옮기셔서 삼매에 들었다고 합니다. 아마 끊임없이 솟구치는 지혜의 즐거움을 누리시면서 당신이 발견하신 연기의 법칙에 의지하여 일체의 존채 와 현상이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을 재차 검토 하고 계셨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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