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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시대에 맞는 승직자와 재가자의 관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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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71호 발행인 우승 발간일 2005-10-01 신문면수 3면 카테고리 총지칼럼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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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5-25 05:18 조회 1,19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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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시대에 맞는 승직자와 재가자의 관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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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총지종 법장원 연구원

현 고려대학교 BK21 연구교수

서울대학교 철학과에서 불교 연구로 철학 석사

스토니부룩대학교 불교 연구로 철학 박사



민주주의란 말은 국민들이 직접 자신 들의 지도자를 뽑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정치 제도를 일컫는 말이다. 그러나 민주 주의는 정치제도에서 출발하지만 그 영향력은 정치적 영역에 머물지 않고 사회 전반에까지 미친다. 우리가 민주사회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총체적인 문화인 것이다.

이러한 총체적인 문화로서의 민주주의는 사회구성원들의 종교생활에도 직접적 인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 서구의 중세 봉건사회가 근대의 민주사회로 넘어 오면서 기독교가 종교 혁명을 겪게 된 것은 그 단적인 예이다. 과거에는 성경은 오직 승직자들만이 읽을 수 있도록 라틴어로 되어 있었지만, 종교혁명 후에는 유럽 각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일반 신도들도 성경을 읽고 스스로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교회의 운영에도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과거 신 도들은 교회에 세금만 바치고 그 운영에 는 일체 관여할 수 없었으나, 종교혁명 후에 새로이 생긴 교파의 교회들에서는 신도들이 세금 대신 헌금을 내고 점차 직접 교회 운영에 관여하게 되었다. 신도들 스스로가 교회를 세우고 목사를 고용하기까지 한다.

종교 영역에서의 이러한 민주주의 문 화의 확산은 또한 그 부작용도 낳았다. 교회 운영에서 신도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성직자들의 권위가 실 추되게 된 것이 가장 큰 부작용이다. 정 치적 힘과 결탁된 종교적 권위로 신도들 에게 군림하다카 부패하는 것이 과거 기독교 승직자들의 문제였다면, 신도들의 눈치를 보느라 신도들의 구미에 맞는 설교만 하게 되는 것이 종교혁명 이후의 기독교 승직자들이 점차 겪게 되는 문제이다. 더 이상 경건한 가르침을 펼 수가 없게 된 것이다.

한국의 불교계 역시 민주주의 사회에 서의 적응이 큰 과제로 다가오고 있는 데, 한국불교의 민주주의의 문화에의 적응에는 매우 특수한 면이 많다. 한국불 교는 과거에 정치권력과 결탁된 종교적 권위를 누리고 있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오랜 동안 정치적 박해 속에 서 기본적 권위를 실추당하고 있었다. 승려들은 신도들 위에 군림하기는커녕 천민 신분으로서의 온갖 사회적 수모를 당하며 살았다. 서구 사회에서의 기독교 와는 반대로 봉건사회라 할 수 있는 조 선조가 멸망하면서 한국사회가 근대사회 로 넘어오면서 오히려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찾을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과정 역시 쉽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오랜 세월 동안의 습속으로 인 하여 승려들이 종교인으로서의 자신들의 권위를 찾는데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일반인들의 의식 속에서 승려들은 존경 의 대상이 아니라 측은의 대상으로 비쳐 지고 있었으며, 승려들 역시 과거의 천민적 삶을 쉽게 버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불교가 한국사회에서 자신의 권위 를 회복하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한 사람 은 성철스님이다. 그는 안으로는 승가 사회를 개혁하고 밖으로는 승려와 신도간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승려들이 천민적 삶을 살면서 무당집처 럼 만들어 놓은 절간을 청소하고, 청정 한 계율을 정립하고, 철저한 수행 생활을 하였다. 이러한 행위는 승려들의 위상을 정립시켜 주었으며, 승려들로 하여 금 위엄과 권위를 가지고 신도들을 대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성철스님을 보려는 사람은 누구나 삼천배를 해야 했으며, 모든 승려들에 대한 삼배의 관행이 정착 되었다.

성철스님이 정착시킨 삼천 배와 삼배의 관행은 민주주의 사회의 문화와 조화 를 이루는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런 만큼 이러한 관행을 지속하는 것은 바람 직스럽지도 않을 뿐 아니라, 지속적으로 유지되리라고 기대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철스님이 승려 들의 위상을 정립하고 권위를 세운 것은 한국불교사에서 매우 큰 의미가 있는 것 이다. 한국의 승려들은 수백 년에 걸친 정치적 압박으로 실추된 사회적 귄위를 회복할 필요가 있었을 뿐 아니라, 민주 주의 사회에서도 정신적 귄위는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법적, 제도적 평등이 종교 인의 정신적 권위까지 부정해서는 안 된다. 정산적 귄위란 누군가를 억압하고 지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계발하고 향상시키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정신적 귄위는 민주주의 시대에 더욱 보호되고 인정되어야 한다. 오늘날의 민 주주의는 불행히도 자본주의와 함께 태 동하였는데, 그 때문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 오늘날의 민주주의는 사회 구성원들 간의 경제적 능력의 차이를 긍정하고 정신적 수준의 차이는 부정한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재력의 위세는 자연스럽 게 받아들이게 되고, 정신적 귄위는 인 정하려들지를 않게 되었다. 결국 화폐가치의 힘이 정신적 가치의 힘을 지배하게 되고, 가치 자체를 소멸시키고 있는 것 이 바로 오늘날의 민주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화적 현상이다. 오늘날의 민주사회는 부처님이 운영해 온사회의 문화와는 정반대의 사회문화를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부처님이 만든 승가의 전 통은 전 승가가 경제적으로 평등하면서 정신적으로는 엄격한 위계의 질서를 두는 것이 아니던가.

오늘날 우리들 모두는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종교인들도 예와는 아니다. 승직자들도 재가신자들도 모두 민주 주의의 문화 속에 살고 있다. 우리는 민주주의라 일컬어지는 문화적 환경 속에 서 종교생활을 해야 한다. 민주주의가 만들어내고 있는 문화적 환경의 장점은 최대한 살리되 그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승직자들은 봉건적 사회의 유풍인 외형적인 권위를 버리고 내적 인 자기 충실을 기해야 한다. 일반 교도들의 교단의 운영에도 일정 정도 참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반면에 일반 신행인 들은 승직자들의 정신적 권위를 인정해야 한다. 자본주의와 결합된 민주주의 문화에 오염되어 승직자들의 정신적 귄 위를 부정해 버린다면, 그것은 더 이상 신행자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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