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총지종

총지소식

불교총지종은 ‘불교의 생활화, 생활의 불교화’를 표방하고 자리이타의 대승불교 정신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생활불교 종단입니다.

상대방이 자신의 거울이다

페이지 정보

호수 77호 발행인 우승 발간일 2006-04-01 신문면수 6면 카테고리 생활속의 밀교 서브카테고리 -

페이지 정보

필자명 -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 리라이터 -

페이지 정보

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5-28 18:07 조회 1,930회

본문

상대방이 자신의 거울이다

▶ “자신을 알려거든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유심히 보라”는 말이 있다. 상대방이 자신의 거울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 까닭이다. 좋은 것은 좋은대로 받아들이고 나쁜 것은 그것이 왜 나쁜 것인가를 알게 되는 것으로 자신에게 유익함을 주게 된다. 먼지가 없는 깨끗한 거울은 자신의 모습을 환하게 보여주지만 먼지가 가득 낀 거울은 자신의 모습을 희뿌옇게 보여주는 이치와 같다. 그러므로 자신 또한 상대방의 거울인 까닭에 경거망동을 삼가하고 바른 몸과 마음을 지녀야 하겠다. 자신을 살피고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보다 더 아름답고 평온한 생활을 영위해 나갈 수 있다 왜냐하면 자신을 살피고 들여다보는 것으로 해서 자신의 옳고 그름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잘 못된 것이 있으면 고쳐서 바로 잡아야 하고 어긋난 것이 있으면 제 위치로 돌려 놓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야만 반듯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사람, 이렇듯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사람이 된다는 것 은 즐거운 일이다.

이 글은 김옥림의「아침이 행복 해지는 책」중에 나오는 내용 가운데 일부이다.

▶ 어떤 상황이나 현상을 통해 교훈을 얻는 것을 ‘타산지석’이라 한다. 남의 행동을 통해 내 행동을 반추하고 반성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겠다. 수행을 하는 우리로서는 하나의 공부거리고 수행방편이라 할 수 있다. 밀교에서는 비로자나부처님을 달리 ‘대일여래’라고도 하고 ‘법신불이라 부르기도 한다. 일체존재와 모든 진리가 곧 비로자나부처님이기 때문에 법신이다. 이 법신을 네 가지로 분류 하는데 자성법신, 수용법신, 변화법신,등류법신이다. 이 가운데 등류법신을 통해 우리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상대방을 거울로 삼아 경거망동을 삼가하고 자신을 살피고 돌아보아 바른 몸과 마음을 지녀야 할 것이다. 등 류법신이란 상대방을 통해 내게 가르침이 되어 법을 전하는 법신 다. 내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과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나의 등류법신이다. 상대를 통해 타산지석으로 삼게 하는 밀교의 교화신법이다.

종조님께서는 상대방을 통해 나의 수행의 거울로 삼는 교설로 “상대의 허물은 곧 내허물의 그림 자”라 하셨다. 남을 통해 내가 발 라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 경우 상대의 허물을 탓하기전에자기의 허물을 먼저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오히려 상대보다 내게 더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남을 탓 할 것만 못된다.

▶  우리는 매일 ‘타인’과 부대끼며 살아가고 있다. 사람과의 관계는 중요하다. 그 관계 중에서 반복되어 행해지는 것이 말’하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말을 한다는 것, 특히 남을 설득한 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서로간에 이견이 생겨 첨예하게 대립된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 상황은 대화나 의논이라기 보다는 싸움에 거의 가깝다. 감정의 불씨는 또다른 문제를 야기시킨다. 말함에 있어 지극히 조심해야 할 부분이다.

첫째, 말을 할때는 간결하게 해야 한다. 말이 길어지면 듣는 사람은 지루해지기 십상이다. 듣는데에 주의력이 떨어지고 요점을 잃게 된다.

둘째는, 내 말하기에만 급급해서는 안된다. 상대방에게도 말을 할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을 주어야 한다. 말이란 둘 이상의 사람이 주고 받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것이 대화다. 대는 ‘상대, 짝’이란 뜻이요 화는 ‘말, 이야기’ 를 의미한다. 대화란 나와 남이 함께 이야기 하는 것이다. 나의 일방적인 말은 대화가 아니다. 내가 얘기를 했으면 그다음에 는 상대에게도 얘기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 대화는 지속된다. 대개의 경우 사람들은 자기의 말만 하는 경우가 많다. 상대방이 말할 수 있는 시간을 주지 않고 일방적으로 자기 얘기만 해버린다. 설사 상대방이 말하는 순간에도 그 말에 귀기울 여듣지 않고 자기의 말과 생각에만 골몰하여 남의 말을 제대로 파 악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상대 의 말을 진지하게 듣지 않은 결과 이다. 상대의 말보다 내생각에만 온통 신경이가 있기 때문이다.

올바른 대화가 아니다. 듣는 자세가 잘못 된 것이다. 말은 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듣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말을 하기보다 듣는 것을 더 잘해야 한다. 우리가 말을 잘 못 해서 오는 화도 있지만 잘못 들었거나 제대로 듣지 못한 데서 오는 경우가 더 많다. 오해에서 오는 말의 화난은 깊고  래가게 마련이다.

셋째는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듣는 자세가 중요하다. 상대방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말을 가로 막고 끼어드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본인은 그런 사실 조차도 알지 못한다. 몇 번이고 단단히 일러 주어도 쉽게 고치지 못한다. 그것이 우리 중생들의 나쁜 버릇이다. 쉽게 고쳐지지 않는 습관성 고질병이다. 상대방의 말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줄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하루 일상은 말에서 시작되어 말로써 마감하게 된다. 하루 가운데 나는 어떻게 말하고 듣고 있는가. 스스로 점검해 보아야 할 것이다. 옴마니반메훔.

(법경/ 통리원 사무국장/ 법장원 연구원)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