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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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78호 발행인 우인(최명현) 발간일 2023-01-01 신문면수 3면 카테고리 종합 서브카테고리 지혜의 눈페이지 정보
필자명 김태원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칼럼리스트 필자정보 - 리라이터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3-01-11 13:38 조회 1,652회본문
현대 철학의 내용은 현대 물리학의 기반에 형성
리좀(rhizome), 화엄의 인드라망 우주관과 비슷
불교를 공부한 사람들이 현대 사상, 특히 난해하기로 이름난 프랑스 사상을 접하게 되면 상대적으로 빨리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현대 사상은 불교와 비슷한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서양 철학이 이 세상을 구성하는 불변의 최소단위를 추구했다면, 그 대표적인 형태가 플라톤의 이데아라고 합니다.
현실에서 그리는 원은 원이라는 이데아의 그림자에 불과하고 이데아만이 영원하고 불변한다는 관점이죠. 중세는 그 이데아의 자리에 신을 놓았다면 근대로 이행하면서 인간의 ‘자아’가 그 자리를 차지합니다. 그래서 서양 철학에서는 현대로 넘어오면서 불변적 존재로서 인간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로 바라보는 관점이 주류를 이루게 됩니다.
불변적인 것으로서 이데아와 신, 자아가 비판하면서 현대 사상은 대신 과정, 유동(流動), 생성(生成)의 관점으로 세계를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들뢰즈가 철학 용어로 처음 사용한 아장스망(Agencement)은 배치로 번역되는데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 창조와 생성이라는 의미부터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창조는 신에 의해 일회적으로 이루어졌다면 생성은 이 세상에서 무수히 많은 것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이루어집니다. 기존의 사물이 끊임없는 조합에 의해서 이 세계가 형성되는데 조합이란 사물의 배치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이러한 배치를 통해서 ‘생성’이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배치를 통해 끊임없이 생성되는 세계는 불교 용어로는 무상(無常)이고 연기(緣起)로 대비할 수 있습니다. 낯선 배치를 통한 생성은 깨달음과 비슷합니다. 날마다 새로워진다는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이나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이란 화두가 말하는 의미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삶도 ‘배치’의 연속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성장하면서 그 배치의 방법을 습득하는데 그것이 세계관이고 가치관입니다. 익숙한 것, 또는 무의식에 저장된 배치에 만족하면 새로운 국면을 만날 수 없습니다.
프랑스 현대 철학은 물리학의 연구성과에 기대고 있습니다. 입자와 파동이라는 양립할 수 없는 빛의 이중성에 직면한 물리학자들은 그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직접 관찰하면 파동처럼 움직이던 빛이 입자처럼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고전 물리학에서 말하던 객관적 실재라는 주장이 한편에서 무너지고 주관이 그 틈을 메꾸게 됩니다.
한편으로 들뢰즈는 리좀(rhizome)이란 용어를 사용합니다. 리좀은 원래 생물학에서 대나무처럼 수평으로 뻗어나가는 뿌리줄기를 지칭하는 말인데, 들뢰즈와 가타리가 <천의 고원>이라는 책에서 사용하면서 철학적 사유어로 통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위계나 이원론을 따르지 않고 자유롭게 퍼져 나가면서 새로운 지식을 탄생시키는 사고방식을 뜻하는 용어입니다. 위계나 이원론은 세계를 중심과 주변으로 나누어 바라보는 근대까지의 인식틀입니다. 중심은 주변보다발전되고 성숙한 곳이고 따라서 중심은 주변을 개화, 근대화, 교화시키는 것을 정당화 합니다. 이것은 세계를 是와 非로 선과 악으로 나누고 중심이 주변을 개조, 문명화시키는 과정에서의 폭력을 정당화합니다. 중심이 서구이고 주변이 비서구 지역입니다. 리좀을 통해서 서로 연결되어 중심이 없는 또는 모든 것이 중심이 되는 관점이 대두됩니
다. 화엄의 인드라망과 비슷한 우주관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러한 현대 철학의 내용은 현대 물리학의 기반위에 서있기 때문에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꼭 습득해야할 내용입니다.
다행히 불교의 교리와 닮아있기 때문에 이해하는데 비불교인들보다 용이합니다. 한편으로 불교라는 종교의 위상이 의도하지 않은 외부 학문의 도움으로 유지되는 측면이 있다는 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불교인들의 공업(共業)이산처럼 무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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